[안인득 사건 1000일]④ 코로나 쓰나미에 사지 내몰린 조현병 환자들

최효정 기자 2021. 11. 25.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병상포화에 응급입원 거부당하는 조현병 환자들
외래진료율·입원율 모두 코로나 이전보다 낮아져
지속적인 투약 못하면 상태 악화 가능성 높아
전문가들 "비대면 진료체계 구축해야"

[편집자 주] 2019년 4월 17일 안인득이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와 흉기난동으로 5명을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지 100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안인득은 조현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고, 안인득 사건 이후 ‘조현병 포비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공포심이 커졌다. 하지만 안인득은 살인자 이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된 환자였다. 전문가들은 안인득이 제대로 된 관리와 치료를 받았다면 이런 끔찍한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로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부른 지 10년이 됐다. 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 병명을 바꿨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조현병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적절히 관리하지도 못하고 있다.

‘14번.’

지난해 1년 동안 조현병 환자가 하루 평균 병원들로부터 입원을 거부당한 횟수다. 지난해 전체를 통틀어 14번이 아니라 매일 14번씩 조현병 환자의 입원이 거부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의료기관들은 조현병 환자의 응급인원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코로나 PCR 검사가 필요하다” “병동이 포화됐다” 등의 이유로 조현병 환자의 구조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꾸준한 치료와 약 복용이 절실한 조현병 환자들은 치료와 입원의 기회를 잃은 채 더 어두운 그늘로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쓰나미는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부터 할퀴었다. 코로나19 환자로 병동이 포화되자 병원들은 이윤이 나지 않는 정신병동부터 운영을 중단했고, 의료 인력도 현저히 부족한 상태다. 거리두기 등으로 조현병 환자의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자, 외래 진료율과 입원률이 모두 코로나 이전보다 악화됐다.

13일 오전 경기북부의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인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코로나 중증 병동 병동./연합뉴스

25일 박재호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이 요청한 조현병 환자 응급입원이 거부된 비율은 7%에 달했다. 총 5431건의 응급입원 요청 중 382건이 거부됐다. 전년인 2019년에는 전체 7591건 중 거부가 214건으로 거부 비율이 2.8%에 불과했지만, 1년 만에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올해 상반기는 3992건 중 316건이 거부돼 거부율은 7.9%로 더 높아졌다.

그래픽=이은현

응급입원 거부율이 급증한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병상이 포화상태인데다 의료 인력도 코로나 대응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기존에 야간 응급진료를 도맡았던 병원들이 당직 의료진과 병상을 코로나19 선별 진료에 활용하면서 일반 정신질환자를 받지 않는 상황이다. 일부 수도권 병원들은 코로나19 선별검사를 시작한 뒤 응급병상을 아예 폐쇄하거나 축소해 운영하고 있다.

2019~2021년 정신질환자 응급입원 신청 및 반려건수./박재호 의원실 제공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런 흐름은 계속됐다고 설명한다. 정신병동은 이윤이 크게 남지 않기 때문에 병원들이 호시탐탐 운영 축소를 시도했고,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돈이 되지 않는’ 정신병동을 우선적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상급종합병원의 정신과 폐쇄병동은 2011년 1021개에서 2020년 859개로 15% 가량 감소했다. 조현병 환자는 신체질환이나 정신질환의 복합적 치료가 필요해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지금 추세로는 입원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달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는 한 조현병 환자가 입원할 병동을 찾지 못해서 병원을 14곳이나 찾았다가 거부당한 일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현행 정신건강법 50조3항을 보면 정신의료기관은 지체 없이 정신과 전문의에게 응급 입원한 사람의 증상을 진단해야 하는데, 전문의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한 환우는 14번이나 거부를 당했다”고 지적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용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병원을 12, 13군데 돌아다니는 환자들이 엄청 많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라면서 “입원시킬 병실이 없어서다. 병원에서는 정신과 병동을 운영하면 예산이 안 맞는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3년 사이에 500병동이 없어졌다”고 답변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사회적 고립’은 조현병 환자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 조현병 치료의 핵심인 정기적인 투약과 진료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완 전남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지난해 4~7월간 국내 조현병 환자 1340명과 일반인구 2000명을 비교한 연구 결과, 지난 1년간 월별 조현병 환자의 입원은 예상 대비 최대 8%, 외래는 최대 5% 감소했다. 조현병 환자에 대한 정기적인 투약과 진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코로나19 사망률도 일반인보다 조현병 환자가 3배 높았다. 조현병 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공적 영역에서도 인프라가 열악한 건 마찬가지다. 국내 유일 범법 정신질환자 입원 치료시설인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의 경우 정신과 전문의 정원이 15명이지만 현재 8명만 일하고 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이 규정하는 정신과 병원 의사 1명당 적정 환자수는 60명인데 이곳은 의사 1인당 담당 피치료감호인원이 118명으로 적정 규모의 두배에 달한다. ‘강서구 PC방 살인’ 김성수, 22명의 사상자를 낸 안인득의 정신 감정도 이곳에서 맡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오랫동안 곪아오던 문제가 터졌다고 지적한다. 조현병 환자의 상태 악화에 따른 강력 범죄를 막기 위해선 상시적인 치료와 이를 뒷받침할 전문인력과 인프라 확충이 필수지만 그 어느것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병상 조율 체계 미흡, 진료 인력 부족 등의 그간 쌓인 문제가 코로나19 유행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서구 선진국처럼 조현병 환자의 재활과 일상생활을 돕는 지역사회 ‘낮병원’이나 찾아가는 서비스, 정신재활서비스 등 복합적인 지원이 아니라 ‘장기입원’만을 우선하는 국내 조현병 환자 복지 체계도 이같은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켰다는 평가다.

실제 정부가 안인득 사건 이후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집과 병원을 오가며 맞춤형 재활 치료를 받는 ‘낮병원’의 경우 전국 50곳이 선정돼 조현병 환자 관리에 매우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코로나 영향으로 경남 2곳 등은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인구 10만명당 정신건강 전문요원도 17.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역 일선에서는 “전문 인력 부족으로 제도가 도입되도 막상 실행에 어려움이 크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래픽=이은현

애초에 정부나 지자체가 정신보건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시도별 인구 1인당 정신보건 예산은 평균 5389원이었다. 1년에 정신보건 예산에 투입되는 돈이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의 커피 한 잔 값보다 조금 많은 셈이다. 그나마 세종시는 2909원, 경남은 3135원, 인천은 3371원, 대구는 3939원으로 실제로 커피 값보다도 돈을 안 쓰는 지역도 많았다. 아메리카 지역의 평균이 약 1만4490원, 유럽 지역 평균이 약 2만6647원인 것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조현병 환자들의 의료기관 이용률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질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애플리케이션 등을 활용한 비대면 관리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김성완 교수는 “조현병 환자는 꾸준한 약물치료가 필요한데 의료기관 이용률이 낮아졌다는 것은 재발률이 증가하고 질환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면서 “비대면 방식을 포함한 연속적인 정신건강 서비스와 응급대응체계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지역사회의 비대면 서비스 중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청년 조현병 환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유튜브에 조현병이나 백신 접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일부 만들어진 상태”라면서 “지역사회 센터 뿐 아니라 의료기관에서 직접적으로 사례관리를 했을 때 외래 누락 후 재방문율이 75%까지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부도 관련 제도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빈 병상을 실시간으로 조율해 정신질환자 응급입원을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을 찾아주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체질환 증상을 보이는 정신질환자도 24시간 진료할 수 있는 병상과 의료진을 갖춘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를 내년 8곳 지정한 뒤 2025년까지 14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