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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후유증', 뒤늦게 벌금내지 않으려면

김명희 입력 2021. 11. 2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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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사회불평등을 강화했고, 사회불평등은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어린이들이 수십 년 후 건강 상실이라는 뒤늦은 벌금을 안 내게 하려면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
아동기에 경험한 사회경제적 역경은 아동기 건강불평등은 물론 성인기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위는 서울 영등포의 쪽방촌 모습. ⓒ시사IN 이명익

밤늦은 퇴근길, 사무실을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는 중에 거나하게 취한 행인을 여럿 만났다.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풍경이다. 다음 날 새벽 출근길에는 취객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토사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불유쾌한 잔해는 예전과 달리 난데없는 상념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 과연, 코로나19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인가!

사람들이 다시 일터로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고, 식당과 공연장이 분주히 손님을 맞고 있다. 아마도 그토록 기대해왔던 ‘포스트 코로나’의 모습일 것이다.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모두에게 가능할까? 지난 2년이 누군가에게는 해외여행을 못 가서 속상한 시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못 먹고 즐거운 공연을 관람할 수 없어서 아쉬운 시간, 혼잡한 대중교통 출퇴근을 피할 수 있어 편안한 시간이었다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원래의 상처가 더욱 깊어지고 새로운 상흔이 보태진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돌아가야 할 아름다운 과거는 대체 어느 평행우주에 존재할까?

■ 코로나19 이후 뉴질랜드 ‘신규’ 빈곤아동 1만8000명

지난해 말 유엔개발계획(UNDP)은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며 2억명 넘는 인구가 새롭게 극단적 빈곤에 빠져들 것이라고 추정했다. 원래 형편이 안 좋았던 저소득 국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6월 뉴질랜드의 아동빈곤행동그룹(Child Poverty Action Group)은 2020년 한 해에만 새롭게 빈곤층이 된 뉴질랜드 어린이가 1만8000여 명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시작된 주거비 상승 문제는 고려하지도 않은 수치였다.

사실 아동빈곤 퇴치는 저신다 아던 총리가 2018년부터 야심차게 추진해온 역점 과제였고, 코로나19 대응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강도 높은 봉쇄조치로 인해 빈곤 가정 어린이들이 심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하고, 아동수당 25달러(주당)를 추가로 지급했으며,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근로 세액공제 조건도 완화했다. 봉쇄 때문에 일자리에 타격을 받은 이들에게 임금 보전으로 130억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임금 지원금은 평소 구직수당의 두 배에 달했고 빈곤화를 막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적극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오래전부터 주거와 소득 불안정에 시달려왔던 이들의 타격을 완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빈곤아동의 숫자는 늘어나고, 이는 대부분 선주민 가정에 집중되었다. 평소 강력한 아동빈곤 정책을 추진해왔고, 팬데믹 시기 재정투자에도 적극적이었던 뉴질랜드의 이러한 결과를 보면 국내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월 한국은행의 연구보고서 ‘코로나19가 가구소득 불평등에 미친 영향’에 따르면 2020년 2~4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의 전년 대비 소득 감소율은 17.1%나 되었다. 소득 상위 20%의 감소 폭 1.5%의 열 배가 넘는 수치이다. 하위 소득군 중에서도 특히 대면 서비스 일자리에 종사하고 미성년 자녀가 있는 여성 가구의 소득 감소율은 23.1%에 달했다.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재난을 인류가 함께 겪었다지만, 사회계급의 거대한 피라미드 중 어디에 서 있는지에 따라 사람들이 경험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달랐다.

2020년 3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단체 주최로 시민들이 코로나19 예방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 사회불평등이 몸에 남기는 ‘상흔’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전설 속 ‘고난 극복의 유전자’를 타고났다는 K-민족 아닌가? 어떻게든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삶을 이어가고자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투에는 대가가 따른다. 몸에, 문자 그대로 상흔이 새겨진다.

인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외부의 위협과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기전을 진화시켜왔다. 위험하고 긴장되는 상황에 처하면 손에 땀이 나고 혈압이 상승하며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몸에 비축해놓은 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해 혈당 수치도 높아진다. 이러한 과정을 이항상성(allostasis)이라 부른다. 변화하는 외부 조건에 적응하기 위한 필수적 조절 기전이다. 이항상성을 진화시키지 못했다면 인류는 가혹한 생태계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곰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몸에 쌓아두었던 에너지를 빨리 동원하고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여 산소와 에너지를 근육에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없었다면? 결말은 독자의 상상에 맡겨두겠다.

위기 상황이 종료되면 생리적 반응은 평상시로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위협적인 스트레스 상황이 너무 자주 반복되거나 지속되면, 우리 몸에는 ‘부하(load)’가 걸리고 ‘닳아 해지게’ 된다. 혈압, 혈당, 스트레스 호르몬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염증 반응물질이 증가하면, 뒤이어 동맥경화증·당뇨병·대사증후군·심장병 발병 빈도가 높아진다.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 술과 담배, 고열량 식품에 빠져드는 것 또한 건강에 부정적 결과를 낳는 이항상성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고질적인 생계 근심, 불안정한 일자리, 가정불화, 일터의 스트레스, 열악한 주거환경…. 곰이나 사자에게 쫓기는 스트레스는 사라졌지만 오늘날 계층 피라미드의 아래쪽에 위치한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이런 위협에 직면한다. 영국의 유명한 화이트홀 연구에서는 공무원들의 직급이 낮을수록 심장병 발병률이 높았는데, 그간의 스트레스 수준을 반영하는 이항상성 부하 지표들이 관련 있었다.

더욱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러한 이항상성 부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축적되어 장년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아동기에 경험한 사회경제적 역경은 아동기 건강불평등은 물론 성인기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영국의 1958년 출생 코호트 연구에서는 출생 시기 사회경제적 지위를 반영하는 엄마의 학력 수준이 아동·청소년기의 물질적 박탈, 20대 초반의 비만 위험과 관련이 있었고, 44세에 측정한 이항상성 부하 척도와도 관련이 있었다. 미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어린 시절 어려운 사회경제적 환경에 놓였던 이들일수록 스트레스 반응 매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의 편도체(amygdala)가 외부 자극에 과잉 활성화된다는 점을 확인하기도 했다. 아동학대를 경험했던 이들이 성인기에 비만·당뇨·심장질환·정신질환 위험이 높아지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2020년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이동 검사소에서 한 아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 ⓒAP Photo

■ 네덜란드 기근 연구의 교훈

1980~1990년대 영국의 역학자 데이비드 바커는 서구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관상동맥질환·고혈압·당뇨병 등이 늘어났는데, 과거에 가난했던 지역일수록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태아의 장기가 발달하는 ‘결정적 시기’에 영양부족에 노출되면 이에 적응하기 위해 에너지를 축적하도록 태아의 몸이 ‘프로그래밍’되고(이를 ‘절약 표현형 가설·thrifty phenotype hypothesis’이라 한다), 나중에 영양이 풍족해졌을 때는 이러한 형질이 부적응적인 것이 되어 중장년기 대사성질환의 위험을 높인다고 추론했다.

이러한 가설은 비극적인 자연실험을 통해 점차 사실로 입증되었다. 네덜란드 기근 연구이다. 1944년 말, 나치가 네덜란드 서부 지역을 봉쇄하고 이후 한파로 물자 이동까지 가로막히면서 이듬해 봄까지 최악의 기근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시기 하루 섭취 열량은 겨우 400~800㎉에 불과했다고 한다. 임산부들도 똑같이 굶주림을 겪었다. 다행히 머지않아 전쟁은 끝났다. 네덜란드는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풍족한 식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태아 초기 엄마 뱃속에서 기근을 경험했던 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전쟁 전후에 태어난 다른 형제들보다 비만율이 높았다. 심혈관질환과 대사성질환, 정서장애 유병률도 높았다. 심지어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그 자녀 세대에서도 건강 문제가 확인되었다. 기근이라는 사회적 경험이 어떻게 생물학적으로 유전될 수 있을까?

유전체 분석기법이 발달하면서 그 비밀도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임신 초기 엄마 뱃속에서 기근을 경험한 이들은 그렇지 않은 형제들과 비교했을 때, 대사조절에 관여하는 DNA 부위의 메틸화에 변화가 관찰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동물실험 연구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역학적 연구들에서 속속 확인된다. 이를테면 감비아 지역의 연구에서도 식량 사정이 좋지 않은 우기에 임신된 아이들이 건기에 임신되어 태어난 아이들에 비해 대사조절에 관여하는 DNA 부위에 메틸화 변화가 관찰되었다.

DNA의 염기서열 자체는 변화가 없지만 외부 스트레스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기전에 변화를 일으켜 표현형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후성유전적(epigenetic) 변화라고 한다. 오래전 배운 대로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틀렸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이들에게 충격이겠지만, 후성유전적 변화가 후손에게 계승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동물과 인간 연구에서 속속 확인되었다.

태아 시기의 영양결핍만 후성유전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임신 중 엄마의 우울증은 자녀의 출생 3개월 시점에 측정한 스트레스 호르몬 수용체의 메틸화에 변화를 일으켰다. 아동기의 학대 경험은 뇌의 해마 부위에 있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용체, 우울증 관련 신경전달물질 수용체 부위의 메틸화에도 변화를 유도했다.

‘건강정치노트’ 지면에 이항상성 부하, 후성유전학이라니 뜬금없는 것 같지만 건강불평등 문제의 발생 기전과 개입이라는 측면에서 이는 상당히 중요한 개념들이다. 이항상성 부하는 사회심리적 고통이 어떻게 우리 몸에 상흔을 남기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후성유전학의 발전은 ‘자연 대 양육(nature vs. nurture)’이라는 오래된 이분법을 폐기하고, 유전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한 설명을 다시 써내려가는 중이다. 이러한 발견은 사회불평등이 어떻게 우리 몸으로 들어와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지는지, 특히 생애 초기의 돌봄과 보호가 평생에 걸쳐 건강에 어떤 장기적 영향을 미치는지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2013년 7월 서울시는 자살 예방에 도움이 될 만한 문구를 마포대교 난간에 새겼다. ⓒ시사IN 신선영

■ 당연한 건강불평등은 없다

건강불평등에 대한 강의를 하다 보면 “좋은 이야기인 건 알겠는데, 그럼 어떤 정책을 써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좀 알려달라” 하는 요청을 종종 받는다. 하지만 건강불평등 기전에서 알 수 있듯, 세상에 아주 혁신적이고 특별한 건강불평등 정책이란 없다. 이미 계층 피라미드의 상층에서 향유하고 있는 기본적인 건강 보호 자원에서 우리는 답을 찾을 수 있다. 화려한 대저택일 필요는 없지만 안정적이고 쾌적한 주거, 아이들에게 좋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시설과 부모의 시간 여유, 적당량의 균형 잡힌 식사, 당장 내일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기본적인 소득보장 같은 것들 말이다. 아동기 환경이 중요하다고 해서 아동수당이나 보육시설 확충, 무상 예방접종처럼 아동에게 특화된 정책에만 한정할 필요도 없다. 예컨대 최저임금제도를 아동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1999년 영국이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아동빈곤율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1997~1998년 외환위기 시절 우리 사회는 자살률 급등을 경험했다.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던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두드러졌다. 한국 사회는 이를 ‘사회적 타살’이라고 명명하면서 당연한 결과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비슷한 위기에서 다른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소련의 주요 교역국이던 핀란드는 1990년대 초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경험했다. 한국처럼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핀란드에서 자살률 급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과 함께 금융위기를 경험한 일본에서도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중장년 남성의 자살률만 폭등했지, 여성이나 노인들의 자살률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한국에서만 남녀 모두, 중장년과 노인 모두에게서 자살률이 급증했다. 경제위기가 자살률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 것이다. 사회가 어떤 완충장치를 가지고 있느냐,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백신에 이어 치료제 개발 소식까지 들리는 것을 보니 코로나19 팬데믹도 조만간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잦아들 확률이 높아졌다. 하지만 대규모 유행이 사그라진다고 해서 그동안 겪었던 고통까지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팬데믹의 후폭풍 속에서 더욱 고군분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당장 눈에 띄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역경과 사회심리적 고통은 우리 몸에 흔적을,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상처를 남길 것이다. 몇 년 뒤 우리 몸이 그 대가를 치르지 않도록 하려면, 특히 지금의 어린이들이 수십 년 후 건강 상실이라는 뒤늦은 벌금을 내게 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개입해야 한다. 시의적절한 정책, 효과적 정책을 만들어낼 정치가 절실하다. 다가오는 정치의 계절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초래될 건강불평등 문제에 우리 사회가 정면으로 맞서는 정치적 기회의 창이 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터무니없는 기대일까?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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