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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냉혹한 현실 봤다"에도 '반도체 지원' 발목 잡는 국회

심재현 기자 입력 2021. 11. 25. 16:13 수정 2021. 11. 2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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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오른쪽)과 김태주 세제실장이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정치권이 정말 전략산업을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반도체 등 국가핵심전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법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논의를 두고 반도체업계 한 인사는 25일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산업 특성에 대한 이해가 반영되지 않은 채 겉핥기식 지원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백신 등을 포함하는 국가핵심전략산업 특별조치법은 인·허가와 기반시설, 자금 등을 패키지 형태로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다. 반도체업계에서는 특히 특별법의 부대법안으로 시설투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확대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 대한 기대가 높다. 반도체산업 자체가 대규모 설비·장치 산업인 만큼 시설투자에 대한 세제혜택이 절실한 까닭이다.

이를테면 삼성전자가 최첨단 미세공정에 도입하는 EUV(극자외선) 노광장비의 경우 1대 가격이 2000억원을 넘는다. 이런 장비를 수십대에서 수백대 구축해야 하는 곳이 반도체 공장이다.

문제는 국회 논의가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간과한 채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생산공정은 나노미터(㎚,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단위의 미세오차나 먼지 한톨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24시간 가동된다. 한번 생산라인을 멈췄다가 재가동하려면 오차를 잡아내는 데만 수주가 걸린다.

올초 한파에 따른 전력공급 중단으로 가동을 멈췄던 삼성전자의 미국 오스틴 공장이 두달 이상 정상가동하지 못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특성 때문에 반도체 생산라인은 가동을 이어가기 위해 일반적으로 여러가지 제품이 혼용돼서 제작된다.

하지만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채 최첨단 전략기술 전용시설에 대해서만 세제혜택을 주고 여러 제품을 혼용해서 생산하는 겸용시설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이대로 통과되면 사실상 세제혜택의 범위가 극도로 제한돼 사실상 '이름뿐인 지원법'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개정안대로라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업체가 1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에서는 최첨단 전략기술 공정과 비전략기술 공정이 혼용된 겸용라인의 경우 생산비중을 고려해 세제혜택을 적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첨단 공정 생산이 40%, 나머지 생산이 60%라면 40%에 대해서라도 세제혜택을 지원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최첨단 전략기술 공정으로는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D램 15나노미터 이하 공정과 낸드플래시 170단 이상 공정이 세제혜택 대상으로 지정된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7나노미터 이하의 SOC(시스템 온 칩)이나 최첨단 전력반도체가 최첨단 전략기술 공정으로 지정된 상태다.

정부는 겸용라인까지 혜택을 확대할 경우 구분이 어렵고 기업에서 납세 회피 등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개정안이 대기업 특혜라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업계에서는 불가능하거나 현장 이해도가 낮은 우려라고 반박한다. 반도체 생산은 전산시스템으로 철저하게 통제·관리되기 때문에 최첨단 공정 제품의 비중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데다 수치를 조작해 납세 회피 등으로 악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애초에 정부가 국가핵심전략산업 지원에 초점을 맞춰 추진한 방안인 만큼 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업계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올초부터 글로벌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를 경험하면서 반도체산업에 막대한 지원자금을 투입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산업에 520억달러(약 62조원)를 지원하는 법안을 발의, 상원을 통과한 상태다.

삼성전자가 전날 발표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20조원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2공장 신설 계획을 두고도 지방정부 등에서 받는 세제혜택이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이상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은 반도체산업을 경제적 사안을 넘어 국가안보와 글로벌 패권전략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열흘 동안의 북미 출장을 마치고 전날 귀국하면서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 되니까 마음이 무겁다"라고 밝힌 것도 글로벌 시장의 치열한 경쟁과 국내외 여건을 염두에 둔 언급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투자·유치 전쟁이 시작되는 상황에서 지금 투자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는 5년 뒤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질 것"이라며 "대기업 특혜 논리에 함몰될 게 아니라 기업에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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