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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빈소 조화와 '5.18 피해자' 이광영 빈소 조화

김동규 입력 2021. 11. 25. 16:36 수정 2021. 11. 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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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 구호전장례식장에 빈소 마련돼.. 26일 오전 발인, 5.18민주묘지 안장

[김동규 기자]

 고 이광영씨의 영정사진
ⓒ 이지현
23일 오전 전두환씨가 사망했다. 지난 1995년 당시 반란수괴 및 내란목적살인,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씨는 이날 자택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5·18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정확히 같은 날, 5·18 당시 총상을 입었던 전두환 재판의 증인 이광영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이씨는 "작은 서운함들은 다 묻고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는 23일 오전, 전두환씨 사망 직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전두환씨의 빈소는 신촌세브란스 병원 특1호실에 마련되었다. 빈소에는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 노태우씨 부인 김옥숙 여사, 전 대통령 이명박·박근혜씨가 보낸 조화가 놓였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보낸 조화도 눈에 띄었다. 

이광영씨의 빈소는 광주 북구 구호전장례식장에 마련되었다. 이씨의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 이용섭 광주광역시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보낸 조화가 놓였다. 

이날 이광영씨의 빈소를 찾은 이지현 전 5·18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은 길었던 이씨와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광주 중심사 소속 암자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이광영씨는 1980년 5월, 부처님오신날 준비를 위해 광주에 갔다. 5월 19일 계엄군의 폭력을 마주한 이씨는 항쟁 참여자가 되었다. 부상자들을 후송하는 일을 했던 이씨는 5월 21일 총상을 입고 하반신 마비를 얻게 되었다.

"제가 고인과 굉장히 인연이 깊습니다. 제 결혼식 때 사회를 맡아주셨던 분이에요. 고인께서는 1980년에 장애를 입으신 이후에 더 열심히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셨어요. 그 결과 만들어진 게 1982년 '광주의거부상자회'입니다. 엄혹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5·18 당시 부상을 입으신 분들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전남대병원에서, 이광영씨가 기독병원에 입원 중이던 부상자분들을 찾아다녔습니다. 5·18 이후 2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당시에도 많은 분들이 입퇴원을 반복하고 계셨거든요."

이광영씨는 1982년 8월 1일 광주 무진교회에서 창립된 광주의거부상자회에서 초대 총무를 맡아 활동했다. 창립 당시에는 광주의 여러 병원에서 인연을 맺은 18명의 5·18 부상자가 함께했다. 이후 광주의거부상자회는 우여곡절을 거쳐 사단법인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로 거듭난다.
 
 광주 북구 구호전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광영씨의 빈소
ⓒ 이지현
 
이광영씨의 활약은 투쟁의 현장에서도 빛났다. 1985년 5·18 5주기 위령제를 전두환 정부가 막아섰다. 이씨는 장주인, 김용대, 김요한, 김아무개씨와 함께 경찰 포위망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의 활약으로 포위망을 돌파할 수 있었던 시민들은 5·18 위령제를 지낸 후 3천여 명의 참배객과 함께 고속도로를 행진했다. 이후 이씨는 '휠체어 5인방'으로 불리게 되었다.

"'휠체어 5인방'으로 불렸던 이들 중 넷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남은 분은 5·18 당시 만 5세의 나이로 총상을 입고 휠체어에 타게 된 김아무개님이신데, 이분이 이제 40대 중반이 되셨습니다. 김아무개님이 부모님과 함께 트럭을 타고 광주교도소 옆 진입로를 통과하던 중,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았습니다. 총상을 입은 어머니는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광영씨는 1989년 2월 23일 국회 5공청문회에 출석해 5·18 당시의 기억을 진술했다. 특히 광주공원에 출현한 헬리콥터가 기총소사를 해, 아스팔트에 불똥이 튀었다는 구체적인 진술을 하기도 했다.

2019년 5월 13일, 이씨는 다시 한 번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전두환이 고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비하해 열리게 된 '전두환 회고록' 사자명예훼손 사건 재판이었다. 이씨의 증언은 구체적인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증거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전두환은 사자명예훼손 재판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2021년 11월 23일, 계속되는 5·18 트라우마와 부상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던 이광영씨는 전남 강진의 한 저수지에서 길었던 68년 인생을 마감했다.

"이광영 선생, 얼마 전 당신을 만났을 때,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된장국에 밥 한 그릇 대접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이 마음에 남습니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군요. 당신마저 오월영령들 곁으로 떠나보내야 함이 슬픕니다. 우리 오월가족들이 더 이상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기도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불자 출신이라 광주학살의 천인공노할 죄인들을 용서할지 모르나, 우리 국민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그들을 단죄할 것입니다. 이 선생, 아니 이 동지. 편히 쉬세요. 근심도 휠체어도 진통제도 억울함도 모두 던져버리고 훨훨... 날아가세요."(이지현)

고 이광영씨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진행된다. 이씨의 발인은 오는 26일 이뤄지며,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다. 전두환씨의 발인은 오는 27일로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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