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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강산 전두환 빈소는 또 다른 5공 독재다 [정기수 칼럼]

데스크 입력 2021. 11. 2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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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절하면 인민재판' 공포가 전직 대통령 조문 틀어막아
넘어져 죽은 90 노인에 저주 보내는 걸 자랑 삼는 지도자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한 조문객이 전투모를 꺼내쓰고 경계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1979년 10월 27일 아침, 라디오에서는 전날 밤 일어난 박정희 대통령 유고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당시 대학 2년생이던 필자는 이불 속에서 이 뉴스를 듣고 만세를 불렀다.


“박정희 죽었다!”


방문을 열고 맞은편 방에 있던 하숙생들에게 그 쾌보를 소리 질러 알렸다. 그 순간 부엌을 오가던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가 지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필자는 지난 42년 동안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때는 경북 봉화 출신의 그 아주머니가 왜 그런 얼굴을 했는지 잘 몰랐지만, 몇 해 후부터는 어렴풋이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안보를 튼튼하게 한 지도자가 졸지에 서거하는 사태에 정신이 없는 마당에 철모르는 대학생이 저리 좋아하니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영욕의 세월을 마감한 전 대통령 전두환의 빈소가 텅 빈 모습을 보면서 박정희 유고의 그날, 20세였던 필자의 객기(客氣, 객쩍게 부리는 혈기나 용기)를 생각해본다.


한 나라의 전 대통령이 수명을 다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기에 앞서 이승에 남은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는 자리가 너무나 고요하다. 위 20대 필자와 같은 마음인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고 업보(業報)라고도 말하고 싶을 것이다.


전두환에 관한 사실관계, 역사의 평가는 현재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진실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지금까지 밝혀지고 주장 되어온 진실이나 사실은 또 다시 뒤집힐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고, 어느 편에서 그때 그 사건들을 보느냐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필이면 정치적 양극화가 만연해 있는 문재인 정부시기에 죽었다. 그래서 더 그렇게 쓸쓸한 최후를 맞고 있다. 목소리가 큰 쪽은 그를 광주 유혈 진압의 원흉으로 보는 진영이다. 한 친정부 신문은 그가 숨진 것과 관련한 사설에 ‘학살자 죽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전두환은 공과(功過)를 논할 때 그의 친구이자 후계자인 6공 대통령 노태우에 비해 ‘업적’이 절대 못 미치지 아니함에도 죽은 뒤 대접은 천지차가 되었다. 노태우는 5.18 과오에 대해 사과를 했고, 천문학적인 뇌물 추징금을 다 뱉어냈기 때문이다.


반면 전두환은 사과를 하지 않았으며 국가가 내놓으라고 한 돈도 자기 지갑에 29만원밖에 없다고 하면서 버텨 국민의 공분을 샀다. 아마 이것은 어떤 항의의 표시였을 것이다. 그의 편에서 보면, 직선으로 당선된 2인자 노태우는 사과할 수 있어도 쿠데타 주역인 1인자가 사과하면 5공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보았을 수 있다.


사단장 시절 군(軍) 내부 고질적 비리를 척결하고 소탈했으며 구보할 때는 언제나 선두에서 장병들과 함께 뛰는 리더십을 보인 장군이었다라든가 유머 감각 풍부한 대통령이었다고 그를 가까이서 겪어본 사람들은 전두환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돈이 있는데도 없다고 거짓말할 사나이가 아니다. 이것 역시 먼 훗날 역사가 진실을 적게 될 것이다.


그가 정말 살인마였는지 아니었는지는 현재로서는 답을 내기 어렵다. 다만, 무장한 시민들과 대치하는 ‘전시(戰時)’ 상황에서 그 진압이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사태에 대한 책임은 당시 최고 실권자였던 그가 져야 한다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이 책임과 사태 초기 과잉 진압, 그로 인한 비극 발생의 책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이후 7년간 대한민국을 이끈 대통령이었다. 물가 안정과 경제를 발전시키고 단임 약속을 지켰다. 학생들과 야당 지도자들의 항거에 굴복, 개헌을 통해 직선제도 실시한, 세계 현대사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들 중 유례가 없는, 제 발로 대통령 궁을 걸어 나간 기록을 남긴 사람이다.


그런데……. 빈소가 적막강산(寂寞江山, 아주 적적하고 쓸쓸한 풍경을 이르는 말)이다. 이건 경제선진국 나라 위상에도 맞지 않고 보기에도 결코 아름답지 않은 모습이다. 대통령 문재인을 비롯해 집권여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 등 저쪽 진영 사람들은 조문 안 가고 조화조차 안 보내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 씁쓸한 객기다.


조문 가고 조화 한 송이 보내면 ‘살인마’를 용서하고 존경이라도 하는 뜻이란 말인가? 참으로 옹졸하기 짝이 없다. 어쩌다 대한민국 지도자들의 소갈머리가 이렇게 밴댕이 속 만도 못하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화장실에서 넘어져 그대로 숨을 거둔 90 노인에게 분노의 저주를 보내는 경쟁을 벌이는 군상들 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못해 서글프다.


그나마 강남좌파의 원조라 할 서울대 명예교수 백낙청(83)이 한 말이 나라의 체통을 지켜준 셈이 되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선인의 죽음이든 악인의 죽음이든 죽음 앞에서는 우리가 삼가는 게 있어야 한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윤석열은 처음에 기자들 질문을 받고 “전 대통령이니까 조문을 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답이었다.


그러다 2시간 뒤 안 가는 것으로 말을 바꿨다. 참모들이 말린 것이다. 상식적인 정답을 그가 오답으로 정정한 까닭은 불문가지다. 불필요하고 소모적이고, 무엇보다 득표에 도움이 안 되는 논란과 비난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다. 전두환 빈소에 가려고 해도 인민재판이 두려워 못 가는 사람들이 많은 2020년대는, 찬바람 무섭게 불던 그때 5공 독재의 또 다른 모습이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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