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빈소, 온다던 사람 안 오고 카메라 앞엔 '옛 사람들'

이은기 기자 입력 2021. 11. 2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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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두환 빈소를 찾는 정치인은 많지 않았다. 조문 온 정치인들도 말을 아꼈다. 대신 과거 5공화국 인사들과 하나회 관계자들이 모여들었다. 몸싸움 등 작은 소동도 있었다.
11월25일 육사 총동창회 회원들이 전두환씨 영정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한 시대가 끝났다. 어둡고 아픈 역사는 다 떠나보내고 모두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전두환씨의 죽음을 두고, 전두환 정권 때 청와대 정무·법률비서관을 지낸 박철언 전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책임과 시민 학살에 관한 질문에는 답을 회피한 채였다.

11월23일 오전 8시45분경 전두환씨가 90세를 일기로 서울시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이날 오후 2시51분 들것에 실려 자택을 나온 전씨의 시신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으로 이송됐다.

조문 첫날 빈소가 마련된 특실1호에는 정치인도, 시민 조문객도 발걸음이 뜸했다. 여야 당대표와 대선후보를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은 일찍이 전씨의 빈소를 방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만 입장을 번복했다. 전씨 사망 당일 윤 후보는 경선 주자들과 오찬 회동 전 기자들과 만나 “전직 대통령이시니까 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가, 3시간 뒤 수석 대변인을 통해 “조문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알렸다.

윤 후보는 지난 10월19일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틀 후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했지만, 같은 날 밤 윤 후보의 반려견 인스타그램 계정에 ‘개 사과’ 사진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결국 윤 후보는 대선후보 경선 뒤인 11월10일에야 광주 5·18 민주묘역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조문 첫날 빈소를 찾은 현역 국회의원은 전두환씨의 전 사위인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유일했다. 전씨의 지인을 제외하고는 시민들도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빈소 관계자는 빈소가 차려진 첫날 밤 10시까지 조문객 300여 명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정치인·시민들이 찾지 않는 빈소엔 5공화국 인사들과 하나회(전두환 등이 만든 육사 출신 정치군인 사조직) 관계자들이 집결했다. 조문객을 받기 시작한 오후 5시 전부터 하나회 출신 고명승 전 3군사령관, 전씨가 민주정의당(국민의힘 전신·민정당) 총재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이영일 전 의원, 유경현 전 의원(제10~12대 국회) 등이 빈소에 들어섰다.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안기부) 부장, 1988년 전씨가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에 칩거하던 시절 당시 주지였던 도후 스님도 빈소를 찾았다.

전두환씨의 유족과 측근들은 5·18 관련 기자들의 질의에 묵묵부답이었다. 12·12 쿠데타에 가담했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물어봐야 난 아무것도 모른다”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전씨를 옹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빈소를 찾은 이석채 전 KT 회장은 “과오 없는 사람은 없다. 모든 대통령들이 다 과오가 있다. 그러나 공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짧게 말했다. 안영화 전 민정당 의원도 “이 어른(전씨)은 통이 크고 나라를 위해 진심으로 일했다”라고 말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허위라고 판단한 ‘5·18 북한군 침투설’도 다시 등장했다. 정진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5·18민주화운동은) 북한군이 300여 명이나 남하해서 일으킨 사건 아니냐. 그걸 수습하지 못했다면 대한민국 역사가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를 칭송하는 ‘그때 그 시절’ 사람들

조문객이 찾지 않아 썰렁했던 첫날과 달리 장례 이틀째가 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몇몇 5공화국 인사들은 전씨 관련 증언을 하겠다며 기자들 앞에 섰다. 이들은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전씨를 칭송하며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5공화국 마지막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김용갑 전 의원은 1987년 전씨가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를 설득해 ‘6·29 선언’을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수석으로서 ‘전두환 대통령(김용갑 전 의원의 표현)’을 존경한다. 역사의 증인으로 이건 국민에게 알려야겠다 싶어서 이야기한다”라고 말했다. 박철언 전 장관은 “집권 과정에 엄청난 어려움과 과오도 있었지만 재임 기간 물가안정과 경제성장, 88 서울올림픽 유치 등을 해냈다”라고 말했다.

11월24일 전두환씨 빈소를 찾은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시간이 지날수록 빈소 앞에서 전두환씨를 옹호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낮 12시경 제11공수특전여단 마크가 달린 군복을 입고 나타난 신동국씨는 “5·18 당시 광주에 있었다. 5·18은 제2의 6·25다. ‘전두환 전 대통령 서거(신동국씨의 표현)’를 기점으로, 북한군이 100% 왔다는 것과 금남로 전투에서 이들을 궤멸해 공산화를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오후 2시엔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를 시작으로 우리공화당 당원 100여 명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조 대표는 “5·18은 아직 진행 중인 역사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는 역사의 평가가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조 대표에 이어 빈소를 찾은 우리공화당 당원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우리공화당 당원들의 표현)’을 존경하는 국민들이 많다” “‘전두환 전 대통령(우리공화당 당원들의 표현)’은 5·18에 책임이 없다”라고 호응했다.

다른 목소리가 있었지만, 빈소 내부까지 닿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경호실 특별보좌관이었던 정재규씨는 11월24일 ‘살인마 전두환! 사죄는 하고 가야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장례식장 앞에 섰다. 정씨는 “육사 생도 시절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서약을 했다. 전두환은 그 반대로 양민을 학살한 사람이다. 비록 사죄 한마디 없이 죽었지만, 저항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만 제2의, 제3의 전두환이 안 나온다”라고 말했다. 유튜버와 전씨 지지자들은 정씨에게 몰려와 “빨갱이 XX야”라고 소리치며 그를 위협했다.

같은 날 오후 3시50분경 한 시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여동생 박근령씨가 조문을 끝내고 나오자 “전두환은 역사 앞에 사죄하라”고 외쳤다. 유튜버와 전씨 지지자들이 해당 시민에게 달려들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11월24일 빈소를 찾은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고인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할 일이고 돌아가셨으니 명복을 빌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모든 걸 다 떠나서 조문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전씨 빈소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고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씨,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씨,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김홍업 전 의원 등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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