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F-15K · 경항모에 눈 감은 방사청..'옥상옥' 설치엔 열심

김태훈 기자 입력 2021. 11. 2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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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방위에서 강은호 방사청장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지난 16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방위력 개선비가 대폭 삭감된 것을 두고 방사청의 참사라고 부릅니다. 방위력 개선비는 국방비 중 방사청이 주관하는 순수 전력증강 예산인데 방사청 개청 이래 최대인 6,529억 원 깎였으니 "안보는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 입장에서 참사가 맞습니다.

불요불급한 예산이 감액되기도 했지만 꼭 필요한 전력의 증강 계획도 여럿 위기를 맞았습니다. 제 역할 못한 방사청은 반성해야 할 것 같은데 별다른 의사 표명이 없습니다. 삭감 한파 와중에 '방사청용 예산'은 알뜰하게 증액시켰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예산으로는 아예 상정조차 안 된 F-15K 성능 개량이 꼽힙니다. 공군은 F-15K 성능 저하로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방사청은 눈 감았습니다. 소해헬기와 기동헬기 도입, 전차 개량 등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사업타당성조사, 연구용역을 마친 경항모 예산 삭감에 해군 참모총장은 공개 반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형 항모가 항진하는 상상도

반면 방사청과 출연 기관을 위한 예산은 제법 증액됐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증액은 방위산업 기술보호 전담 센터 설치 예산입니다. 유사 기관과 조직 위에 옥상옥(屋上屋)을 짓는다는 지적입니다. 군을 보조하는 기관인 방사청이 군을 위한 전력증강 예산들은 수두룩 놓치면서 방사청 주변의 예산은 전심(全心)으로 지킨 꼴입니다.

'F-15K 굴욕 동영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 공군 주력기 F-15K의 사정이 많이 안 좋습니다. 멀리는 2005년부터, 가까이는 2012년까지 도입된 기종으로 기계식 레이더 등 항공전자장비의 노후화가 심합니다. 특히 재밍(jamming·전파방해)에 취약합니다. 공군이 성능개량 소요를 제기했고, 합참이 소요를 확정했습니다.

작년 한국국방연구원 KIDA가 성능 개량 필요성에 대한 선행연구를 했는데 "성능 개량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KIDA의 선행연구 과정에서 러시아 전투기가 동해 방공식별구역 카디즈 주변에서 F-15K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동영상이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러시아 공군이 우리 F-15K를 재밍했고, 이로 인해 F-15K는 러시아 전투기 몇 대를 놓쳐 후미를 내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습니다.

이렇게 F-15K의 성능 개량이 시급하니 군은 이를 요구했고, 선행연구가 끝났으면 방사청은 사업추진기본전략을 세운 뒤 예산 받아 성능 개량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행연구에서 딱 멈췄습니다. 군의 한 소식통은 "방사청의 해당 팀은 사업추진기본전략 수립 준비를 끝냈는데 방사청 지휘부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심을 안 하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업추진기본전략 통과가 안 되니 내년 예산은 올리지도 못했습니다. 공군은 벙어리 냉가슴입니다.

공군 주력 전투기 F-15K. 성능개량이 시급하지만 선행연구에서 절차가 중단됐다.

보다 못한 해군 총장의 외침

F-15K보다 그나마 사정이 나아 예산은 올렸는데 국회 국방위에서 삭감된 사업이 41건입니다. 해상작전헬기는 기본설계와 예산편성지침에 부합하지 않아서, 소해헬기는 사업타당성조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서 각각 예산이 대폭 깎였습니다. 상륙공격헬기에는 실현 불가능한 의견이 붙었습니다. 대형 기동헬기, 화생방 보호의, 특수 침투정, 대형 수송기는 사업타당성조사나 선행연구가 끝나지 않은 상태라서 예산이 감액됐습니다.

방사청이 용의주도하게 일을 했다면 추진할 수 있는 사업들이 많습니다. 경항모도 예산 68억 원이 삭감됐는데 여당의 한 보좌관은 "의욕적으로 경항모 예산을 따내려는 방사청의 노력이 안 보였다", "주면 받고, 안 주면 안 받겠다는 자세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육해공군을 망라해 41건 6,529억 원 삭감에 육해공군 책임자들은 한마디씩 따져야 정상입니다. 아버지 기일은 못 지켜도 전력화 시기는 지켜야 한다는 군인데 이제 무더기로 전력화 시기가 늦춰졌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어제(25일) 부석종 해군 참모총장이 유일하게 나서 해군 페이스북에 경항모 반대론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국민적 공감대를 이뤄 반드시 추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제 목소리를 냈습니다. 공군과 육군은 방사청과 더불어 고요합니다.

순수 증액 봤더니 '청부 입법' 예산이 50억

방위력 개선비 중 국회 국방위를 거치며 순수 증액된 항목은 15건입니다. 3~4건 빼고 인건비, 운용비, 관리비 인상이 대부분입니다. 방사청 출연기관인 국방기술품질원의 인건비 30억 원, 품질경영비 15억 원, 운영비 5억 원 등 3건 총 50억 원 증액은 이른바 청부(請負) 입법 예산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방사청이 국회를 시켜 법안을 발의하게 하고 이를 기화로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는 데 드는 돈을 확보한 것입니다.

방사청이 50억 원을 챙겨 세우려는 기관은 방위산업 기술보호 전담 센터입니다. 방산업체 대상 해킹이 늘어나니까 이에 대비해 전담 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이미 방사청 안에는 기술보호국이 있습니다. 국방부에는 사이버사령부와 안보지원사령부가 있습니다. 모두 해킹 막는 데 특화된 기구들입니다. 국정원도 방산업체의 보안을 관리감독합니다.

야당의 한 보좌관은 "관련 기구와 기관이 없어서 해킹을 못 막은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일을 안 해서 못 막은 것이다", "3중, 4중의 옥상옥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야당의 다른 보좌관은 "국방기술품질원 산하에 별도 센터를 두면 해킹 사건이 벌어져도 방사청 기술보호국이 책임을 면하니까 청부 입법을 해서라도 예산을 확보하는 것 같다"고 촌평했습니다.

방사청은 각 군이 제기한 소요를 받아 적법 절차를 거쳐 무기를 도입하는 곳입니다. 방사청 고유 임무를 위한 예산은 사상 최대로 삭감시켜 놓고, 효과 불분명한 기관 설립용 예산 타내는 데는 열심이니 방사청에 믿음이 안 갑니다. 그래도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드문 것을 보면 참 이상합니다. 국방부에 있으면 "방사청장은 이번 정권의 안보 실세다", "국방장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장관급 청장이다"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되는데 농담이 아닌가 봅니다.        

김태훈 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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