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SBS

[사실은] '발포 명령' 팩트체크, 내년 5월에도 해야 할까요?

이경원 기자 입력 2021. 11. 26. 10:27 수정 2021. 11. 26. 10:45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전두환 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반성이나 사죄의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던 발포 명령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전두환 씨 측 민정기 비서관은 전 씨의 사망 당일, 발포 명령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 지난 23일, 서울 연희동 전두환 씨 자택 앞에서 전 씨의 사망을 공식 발표하는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
 
"발포 명령이라는 거는 있지도 않았다는 게 재판 결과에서 다 나왔어요. 발포 명령이라는 것은 없어요. …… 그 당시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도 아니고 계엄사령관도 아니고 지휘 계통에 있지도 않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언제 어떻게 그 당시에 공수부대를 지휘했고 발포 명령을 했느냐 하는 걸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지, 무조건 막연하게 사죄하라, 그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

전두환 씨도 2017년 낸 자서전에서 "무장시위대의 조직적이고 반복적인 공격 행위는 전형적인 특공작전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포 명령 여부를 논한다는 것은 군사작전의 기초 상식만 있어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썼습니다.


사실 새로울 것 없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수년 전부터, 수많은 언론에서 많은 팩트체크를 했지만, 전두환 씨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또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전두환 씨는 왜 계속 이런 주장을 반복했던 걸까요. 오늘의 팩트체크는 발포 명령 팩트체크가 반복되고 있는 '쳇바퀴'의 이유를 짚어보려고 합니다.


전두환 씨의 일관된 주장은 첫째, "발포 명령은 없었다", 둘째, "있더라도 나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셋째, "더군다나 나는 의사결정권자가 아니었다"입니다. 왜 이런 주장을 계속했던 걸까요.

먼저,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의 판결문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내란 목적 살인죄 등 9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 ​1997년 4월,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노태우, 전두환 씨

당시 대법원은 발포 명령이 있었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시위대에 대한 사격을 전제하지 아니하고는 수행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그 실시 명령에는 그 작전의 범위 내에서는 사람을 살해하여도 좋다는 발포 명령이 들어 있었음이 분명하며……"
-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쉽게 말해, 명령 없이 발포가 이루어졌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법원은 발포 명령이 누구에게서 시작됐는지 입증하지는 못했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명령을 내렸는지 그 증거가 부족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내란 목적 살인죄를 인정하며 '포괄적인' 책임을 명시했습니다.
 
(원심은) 반란집단을 구성한 사람들 각자가 반란 행위를 포괄적으로 인식, 용인하고 있는 한 직접 관여하지 아니한 개별적인 반란 행위에 대하여도 반란죄의 책임을 진다고 (판단했는데) ……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 인정과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달리 말하면, 군 수뇌부로서 전 씨에 대한 발포 책임을 인정했지만, "발포를 명령한 것은 전두환"이라는 문장이 없었던 겁니다.


발포 명령과 관련한 답답한 논란은 그때가 시작이었습니다. 전두환 씨는 "법원도 내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자기 식대로 해석해 왔고, 전 씨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측근의 입을 통해 같은 주장을 반복한 셈입니다.

누군가는 판결문 해석의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시 군 실권을 쥐고 있던 전 씨가 학살의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미 법리적으로 전 씨의 책임임은 '확정된 사실'이며, 그 발포 명령에 얼마나 개입했는가, 그 적극성과 관련한 '디테일'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결국, 직접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 언론이 힘을 모아 전 씨의 책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발포 명령과 관련된 주요 증거가 인멸됐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증거 인멸의 '증거'인 셈입니다.

▲ ​2017년 7월,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
 
몇몇 핵심 자료들은 찾을 수 없었다. 첫째, 육군본부에서 작성한 총장 지시사항 자료철에는 5·18과 관련해 중요한 시기인 '5. 3.~6. 29.'까지의 기록이 빠져 있다. 이 같은 누락은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의 80년 정기 군사 보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곧 이 자료의 '총장 순시' 항목에도 '4. 24.~6. 22.'까지의 기간 동안의 기록이 없다. …… 5·17을 준비하며 신군부가 작성하였던 시국 수습방안을 찾을 수 없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12·12, 5·17, 5·18사건 조사결과보고서>, 2007년 7월 24일, 18~19쪽.

이 증거들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왜 인멸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시민단체의 증거 찾기는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결실을 봤습니다. 발포 명령과 관련된 직접 증거들이 하나둘 발굴되기 시작합니다.

2017년 8월에는 발포 명령 하달을 명기한 공식 문건이 확인됐습니다. 1980년 5월 21일 광주에 주둔했던 505보안부대가 작성한 것으로, 그날은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가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문건에는 '전교사 및 전남대 주둔 병력에게 실탄 장전 및 유사시 발포 명령 하달(1인당 20발)'이라고 써있습니다. "발포 명령이 없었다"는 전두환 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는 공식 문건이었습니다.


이듬해 10월에는 전두환 씨가 5·18민주화운동 초기부터, 군 수뇌부 회의에 지속적으로 참석해 계엄군 작전을 주도적으로 논의했다는 문건이 나왔습니다. 당시 신군부가 펴낸 비밀 문서인 <5공 전사(前史)>였습니다.

문서에는 전남도청 집단 발포가 있었던 역시 1980년 5월 21일의 상황이 담겨있습니다. 당시 국방부장관실에서 발포 명령이 '자위권 발동'을 결정하는 회의가 열렸는데, 당시 합수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이었던 전 씨도 참석했으며, "계엄군의 자위권 행사 문제는 그 회의에서 자동적으로 결정됐다"고 써있습니다. 전두환 씨는 계엄군 작전회의 참석을 줄곧 부인해왔습니다. "발포 명령 의사결정 과정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였습니다.

5·18 진상 규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문서는 계속 발굴되고 있고, 역사의 조각들이 하나 둘 맞춰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신군부 당사자의 명확한 증언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노태우 정권 당시, 백담사로 들어갔던 전두환 씨 내외

최근 SBS 8뉴스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최근 5·18진상조사위원회는 신군부 핵심이었던 황영시 당시 육군참모차장,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에 대해 방문 조사를 했으며, 조만간 마지막 1차 조사 대상자인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에 대한 대면 조사도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정호용 씨는 5·18과 관련해 자신에게 과도한 책임이 지워졌다며 사실관계를 정확히 밝히고 싶다는 입장을 조사위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송선태 5·18진상조사위원장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누가 지시를 하고 어떤 지휘라인을 통해서 왔다는 것이 거의 다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그런 부분에 대해 자연스럽게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SBS 사실은팀은 최근 몇 년간 5월 18일만 되면 5·18과 관련한 허위 정보를 팩트체크했습니다. 하지만, 매년 5월만 되면 허위 정보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며 퍼져나갔고, 다시 팩트체크를 하는 쳇바퀴가 이어졌습니다.

전두환 씨의 죽음 이후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게시판에서도 5·18 북한군 개입설, 무장 폭동설 등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습니다. 전 씨의 빈소에는 유튜버가 몰려와 기자들의 질문을 방해하는 등 소란도 있었습니다. 전 씨를 비호하는 유튜버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여러 언론에서 민 전 비서관의 발언에 대한 팩트체크 기사를 내놓고 있지만,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팩트가 아닐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위 정보와 팩트체크의 쳇바퀴를 끊을 수 있는 건 역시 '팩트' 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수많은 유언비어가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증거의 힘을 믿어 주셨고, 나아가 상식에 걸맞게 판단해주셨습니다. 시민 사회와 정치권, 나아가 언론도 힘을 모아 증거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진실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왔던 여러 반작용들은 어쩌면 역사적 진실에 다다르기 위한 성장통일지도 모릅니다.

전두환 씨의 사죄는 듣지 못했지만, 조만간 적어도 당사자의 증언이 나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적어도, 2022년 5월 18일에는 5·18 허위 정보와 관련해 팩트체크를 반복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에서 SBS 사실은 치시면 팩트체크 검증 의뢰하실수 있습니다. 요청해주시면 힘닿는 데까지 팩트체크하겠습니다.


(인턴 : 권민선, 송해연)

이경원 기자leekw@sbs.co.kr

저작권자 SBS & SBS Digital News Lab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