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증상도 알코올중독이었다, 10초면 아는 자가진단법 [뉴스원샷]

전수진 2021. 11. 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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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웬수, 라지만... AP=연합뉴스

“내가 술을 또 마시면 인간이 아니다.”
이런 생각 안 해보신 분 (설마) 계신가요. 다짐이 무색하게도, 곧 또 마신 뒤 ‘인간이 아닌 자신’을 질책한 적도 많으실 겁니다. 인간이라면 말이죠.
하지만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급작스럽지만 질문 4가지를 소개합니다.

1. 술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2. 음주와 관련해 다른 사람에게서 잔소리나 비난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3. 음주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까.
4. 술을 마신 다음 날 아침에 숙취 때문에 해장술을 마신 적이 있습니까.

4개 항목에 모두 ‘그렇다’고 답해야 알코올 중독일 것 같지만, 아닙니다. 두 개 이상만 돼도 알코올 중독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알코올 중독 극복기인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반비)에 소개된 자가진단법에 따르면 말이죠. 세 개 이상에 ‘예스’를 하셨다면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는군요.

이 술도, 웬수. [중앙포토]


‘어느 알코올 중독자의 회복을 향한 지적 여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이달 초 나왔습니다. 1983년 여성이자 엄마인 저자가 자신의 알코올 중독을 직시하고 치료를 해나가는 과정을 솔직히 그려냅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써도 괜찮을까 저자 걱정까지 하게 될 정도죠. 저는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저자인 박미소 씨와 같은 명함을 썼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힘들어했는데도 내가 몰랐구나, 라는 미안함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습니다. 열혈 여성 기자에서 중독을 다스린 멋진 작가가 된 그의 글 일부를 옮깁니다.

“술, 술이 필요했다. 취하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생각이 멈출 거고, 기분이 좀 나아지며 슬픔도 아픔도 사라지겠지.”(21쪽) “그나마 다행인 건 술에 집착하는 와중에도 일상생활을 나름대로 유지했다는 점이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간식과 저녁을 챙겨준다. (중략) 아이가 잠들면 다시 또 혼자만의 술판을 벌였다.”(20쪽)
솔직한 고백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겠으나, 치료를 결심하고 스스로 병원을 찾은 미소 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치료의 첫걸음은 인정이니까요. 생각해보면 치료뿐 아니라 인생의 많은 것들이 먼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미소 씨에게 물었습니다. 책을 내는 게 두렵지는 않았는지. 담담한 어조로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부끄러울 수도 있죠. 하지만 뭐 어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애주가라면 다들 있는 문제이고, 제 경험이 특별하긴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니까요.”

중독의 문제는 비단 알코올에만 있지 않습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지만 인생은 쉽지 않고, 악플은 끊임없이 달리고, 일은 내맘대로 안 되고 마지막일 줄 알았던 사랑이 마지막이 되기 마련이니까요. 술은 사는 게 버거운 이들에게 가장 손쉬운 위로 중 하나일 뿐이죠. 알코올 중독도 괜찮다고 말하려는 건 물론, 절대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손쉽기에 더 위험하고, 몸은 물론 영혼까지 갉아먹기에 위험하고도 위험합니다. 그 늪에 빠지긴 너무도 쉬운 데 벗어나긴 너무도 어렵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늪의 가장 끔찍한 점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다른 이들까지 빠지게 한다는 거겠죠.

알코올 중독에 대한 또다른 명저, 캐럴라인 냅의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도 떠오릅니다. 한국엔 『명랑한 은둔자』 에세이도 유명하죠. 냅 역시 여성이자 기자였고 명문대 졸업생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변기 뒤에 술병을 숨기며 마시고, 남의 집에 놀러가서 찬장에 있는 술을 몰래 꺼내 마셨다고 합니다. 본인이 직접 쓴 내용이죠. 다음은 그 일부입니다.

“나는 술 마시는 느낌을 사랑했고, 세상을 일그러뜨리는 그 특별한 힘을 사랑했고, 정신의 초점을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의식에서 덜 고통스러운 어떤 것들로 옮겨놓는 그 능력을 사랑했다. 나는 술이 내는 소리도 사랑했다. 와인 병에서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술을 따를 때 찰랑거리는 소리, 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술 마시는 분위기도 좋아했다. 술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우정과 온기, 편안하게 한데 녹아드는 기분, 마음에 솟아나는 용기.”(19쪽)
“미친 짓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인걸. 이번 한 번은 스카치를 가져가야겠어. 이번 주는 정말 스트레스가 많았으니까. 스카치라도 마시면서 나를 달래고 싶어. 어때? 별일 아니잖아. 저녁 먹기 전에 내 방에서 작은 잔으로 한 잔 마시는 건데 뭐. 그러면 부엌에 몰래 들어가서 거기 있는 술을 훔쳐 마시지 않아도 되잖아. 내 술을 준비해서 아버지의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건데, 그게 별문젠가?”(24쪽)

캐럴라인 냅 저자 소개. 그의 또다른 저서『명랑한 은둔자』의 날개. 전수진 기자


냅은 가까스로 중독을 인정하고 극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냅이 했던 말로 알코올 중독자들과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술을 끊으면 우리는 이제 기다리지 않게 된다.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서 내가 할 성장의 노역을 대신해줄 거라는 끈질기고도 인간적인 소망을 버린다.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미소 씨가 저에게 건넨 인사로 이번 주 뉴스원샷을 마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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