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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무엇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데스크 입력 2021. 11. 2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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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이 기사(칼럼)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지옥’이 세계적 화제다. 공개 1일 만에 넷플릭스 세계 1위에 올랐다가 바로 다음날 2위로 내려앉았지만, 그 뒤 다시 1위를 탈환했다. 지난 1주일간의 시청시간으로 봐도 ‘지옥’이 총 4348만 시간으로 비영어권 1위에 올랐는데, 영어권 1위인 ‘아케인’의 시청시간은 3842만 시간으로 ‘지옥’에 훨씬 못 미친다. 즉 ‘지옥’이 지난 1주일 통산 넷플릭스 세계 1위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번 ‘오징어 게임’ 때와 비슷하다. 당시 공개 직후 국내에선 악평이 나왔지만 해외에서 반응이 터졌었다. 이번 ‘지옥’도 국내 평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해외에서 호의적이다. 미국 CNN방송은 “올해 한국 드라마들이 끝내준다”며 “지옥은 새로운 ‘오징어게임’”이라고 했다. 영화 전문 매체 인디와이어는 “‘지옥’은 여러분의 영혼을 겨냥하는 최신 한국 블록버스터 시리즈” “이 작품의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은 집단적인 무력감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대중의 감정을 포착해낸 것”이라고 했다.


‘지옥’이 그리는 이야기가 한국보단 해외에서 더 공감할 여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종교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종교 문제는 그리 절실한 이슈가 아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부처, 관세음보살, 미륵, 산신령, 옥황상제, 용왕, 도깨비 등을 믿고 살았는데 이런 믿음 때문에 심각한 변란이 터지진 않았다.


반면에 서구권에선 종교전쟁, 마녀사냥 등 심각한 이슈가 많았다.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의 대립역사도 유구하다. 오랫동안 종교지도자가 세속 정치권력을 압도하기도 했다. 이러니 한국보다 해외에서 종교 문제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옥’은 어떤 괴상한 존재가 사람 앞에 갑자기 나타나 언제 죽어서 지옥에 갈 거라고 주장하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그러더니 실제로 그 시간에 괴물들이 나타나 사람을 괴롭히다 불태워 죽인다. 이때 신흥종교 집단이 대두해 이 사태의 배경과 의도를 설명한다.


그 존재들이 신의 사자라는 것이다. 죄인을 직접 벌하고 지옥에 보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사람들을 각성시키려는 것이 신의 의도라고 신흥종교 집단은 주장한다. 이젠 죄를 짓지 않고 신 앞에 순종하는 것만이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을 길이 된다. 신의 분노를 잦아들게 하기 위해서 인간의 죄를 줄이도록 서로 감시하고 처벌해야 한다.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신비하고 압도적인 괴물의 폭력 앞에서 인간은 그저 신의 의도를 몰라 전전긍긍할 뿐이다. 이때 신흥종교 집단이 그 의도를 명쾌하게 밝혔고, 그것이 인간의 마음에 들었다. 죄만 안 짓고 신에게 순종하면 지옥에 안 간다는 논리 말이다. 이런 논리가 상당히 상식에 부합하기 때문에 많은 인간들이 그대로 믿게 되고, 그런 신의 의도를 밝혀주는 신흥종교 집단의 권력이 강해진다. 사람들이 신에게 순종하는 것은 결국 신흥종교 집단에 순종하는 것이 된다.


신흥종교 집단은 공포로 인간을 선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지만, 광신도들의 폭주로 공포가 만연한 현실을 만들었을 뿐이다. 극중 인물은 그런 현실이 지옥과 뭐가 다르냐고 질타한다.


이런 게 주로 서구권 역사에서 종교가 보여줬던 모습이다. 신의 의도를 해석하는 집단이 지옥의 공포를 이야기하며 인간의 정신을 장악했다. 그러자 광신자들이 나타나 온갖 폭력사태가 생겨났다. 유럽에선 신의 이름으로 감자를 악마의 식물이라 규정하는 등 신의 의도를 앞세운 부조리들이 나타났다. 심지어 지구가 돈다고 주장했던 학자가 신의 이름으로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오늘날에도 신의 의도를 내세운 기괴한 일들이 벌어진다.


역사 속에서 나타난 그러한 종교 관련 문제를 ‘지옥’이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한 상업 드라마 속에 녹여낸 것이다. 이러니 해외에서 더 큰 반향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도 남 이야기만은 아니다. 종교적 믿음 자체가 어떤 불가해하고 불가항력적인 사태에 대해 그 원인 배경 의도 등을 상상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는데, 이런 과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어디에서나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도 ‘지옥’의 설정에 공감할 수 있다.


‘지옥’은 그런 맹신에 의한 폭력의 역사와 결별하고 합리적인 인간의 질서를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웅변하는 듯하다. 이밖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논의할 지점이 많은 작품이다. 이런 내용을 담으면서 상업적인 재미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주목 받는다. 잘 만든 한국 상업물들이 이렇게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은 것이, 한류열풍이 세계적으로 거세지는 이유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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