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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집보다 더 집같은 쉼터였는데, 곧 나가야 합니다"

신지수 입력 2021. 11. 27. 09:01 수정 2021. 11. 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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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A 군은 지난달 가족과의 불화로 집을 나왔습니다. 친구 집에 며칠 묵다 더 있을 수 없어 거리로 나섰습니다. 무작정 걷다가 앞에 보이는 빌라에 들어가, 계단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강남구청소년쉼터'에 왔습니다.

"춥고 배고팠다"는 A 군은 "마지막으로 생각난 게 청소년쉼터였다"고 말했습니다. 3년 전 부모의 폭력을 피해 왔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A 군에게 쉼터는 집보다 더 '집' 같은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등을 물어봐 주는 어른이 있어서입니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자퇴 후 생각하지 않았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A 군은 "쉼터 선생님들이 검정고시 이야기를 해주셔서 한 번 해보려고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 강남구청소년쉼터, '이전 장소' 찾지 못해 폐쇄?

강남구청소년쉼터는 A 씨처럼 가정 학대, 가정불화 등으로 집을 나온 남성 가정 밖 청소년들이 최소 1주일부터 최대 9개월까지 거주 가능한 '단기 쉼터'입니다.

가정 밖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 쉼터는 일시-단기-중장기로 나뉩니다. 일시는 최장 일주일, 단기는 일주일~최장 9개월, 중장기는 3년까지 있을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쉼터로 또 나뉘다 보니, 서울에는 남자 청소년들이 갈 수 있는 '단기 쉼터'가 강남, 신림, 강서 총 3곳에 불과합니다. 3곳의 수용 가능 인원은 총 43명 정도인데, 강남 쉼터가 폐쇄되면 수용 가능 인원이 28명으로 줄게 됩니다.

그런데 이 쉼터가 올해를 끝으로 사라질 위기입니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이전 장소를 찾지 못해, 폐쇄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겁니다.


이 쉼터는 1998년 구청이 세워,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위탁 운영 법인의 공간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를 끝으로 이 법인이 위탁을 종료하기로 하면서 이전 장소를 찾아야 했습니다. 구청은 전세비용으로 9억 원을 예산으로 산정하고, 장소를 물색했지만 찾지 못했고 폐쇄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구청의 폐쇄 결정이 나오자 현재 쉼터를 위탁 운영 중인 법인은 지난달 '위탁 종료'에서 '재위탁'으로 입장을 바꿨습니다. 쉼터 폐쇄를 일단 막아보고자 현재 쉼터가 사용하고 있는 공간을 무상으로 사용하면서, 추후 이전 장소를 찾기로 한 겁니다. 쉼터와 구청 입장에선 '이전 문제'라는 발등의 불은 꺼진 겁니다.


그런데도 강남구청은 폐쇄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당 법인이 재위탁 의사를 밝힌 건 사실이나 그건 법인의 입장일 뿐, 상황이 달라진 게 없다"라며 "폐쇄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쉼터 측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쉼터 관계자는 "원래는 법인이 위탁을 종료하게 되면서 현재 쓰고 있는 장소를 나가야 했던 것"이라며 "법인이 재위탁하기로 결정하면서, 현재 장소도 계속 쓸 수 있게 상황이 변한 건데도, 쉼터를 폐쇄한다는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상 장소 문제가 폐쇄하려던 근본적 이유가 아니었던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강남구청 "쉼터에 강남구민 적고, 이용 인원 적다"

그렇다면 '장소 문제'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요.

지난 8월, 강남구의회 의원이 '청소년 쉼터' 진행 상황을 묻자, 강남구청 관계자가 밝힌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쉼터 이용자) 3년치 현황분석을 해보니까 월평균 7~8명만 입소돼 있고 거기에 선생님들은 7~8명이 되고 강남구 아동은 3년 동안 10% 미만인 22명만 입소를 했었고 보호기간도 한 1개월 미만, 주로 본인 입소가 절반 이상이 됐고 부모와의 갈등 이런 부분이라서 오래 있지는 않았고 나머지 10% 미만 한 90%이상이 서울시 자치구나 타 시도에서 온 청소년들이었습니다.

이런 현황을 분석해 보고를 드렸고, 서울시 내에도 청소년 쉼터가 구립으로 운영하는 곳은 강남구와 은평구 2곳이었고 서울시에 쉼터가 15개와 두 곳 해서 한 17곳이 있고 저희 구에도 시립병원에, 금천청소년쉼터는 금천으로 이전할 예정이긴 하지만, 그 근처에 또 일시보호 쉼터가 있어서 사업을 접도록 하겠습니다."

쉼터에 입소하는 청소년 중 '강남구 청소년'이 적고 입소하는 인원에 비해 쉼터 직원이 많은 점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강남구의회 관계자도 비슷한 이유를 들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입소 인원이 2명이었는데, 쉼터 직원은 7~8명이라고 하더라"라며 "구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효율성 등을 고려해 사업을 접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가정 밖 청소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인식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가정 밖 청소년의 특성상,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 수밖에 없는 데다 청소년들의 상황에 따라 일주일을 거주할 수도, 9개월 동안 있을 수 있습니다. 쉼터 입소 인원의 변동이 큽니다. 이들을 24시간 돌보기 위해서는 그만한 인력도 필요합니다.

정익중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쉼터의 특성상, 무조건 오래 머무는게 좋은 게 아니다. 가정이든 쉼터든 이들이 더욱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다 보니 인원 변동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아동,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사업을 해야 하는 거지, 한 지역의 아동 청소년들만을 보호하기 위해 쉼터를 운영한다는 사고는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습니다.

■ 구청이 결정 바꾸지 않으면...이달 말 폐업신고 해야

최근 2년간 입소 인원이 예전보다 준 건 사실입니다. 코로나19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이 쉼터에 입소할 때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고,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쉼터가 입소 청소년들의 외출이나 아르바이트 등을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정 밖 청소년들의 숫자에 비해 쉼터가 부족한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추산 가정 밖 청소년 규모는 11만 명이 넘습니다. 반면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은 3만여 명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거리에 방치되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쉼터 관계자도 "강남의 특성상, 교통이 편리하다 보니 가정 밖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이라며 "이런 지역에 쉼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집' 같은 쉼터를 떠나야 한다는 소식에 A 씨는 속상하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쉼터가 없었으면 노숙하다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며 "저에게 집 같은 공간인 쉼터가 사라지는 게 억울하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속상하다"고 했습니다.

강남구청이 결정을 바꾸지 않으면, 쉼터는 이달 말 폐업신고를 하고 다음 달 운영을 종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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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수 기자 (j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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