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로 가는길

2021. 11. 2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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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릴레이 기고] 2021 한국기본소득포럼 후기

[한인정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대표]
최근 몇 년 사이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높아졌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위기를 맞이하며 실시된 전 국민 재난지원금 및 재난 기본소득은 국민 전반이 보편적, 무조건적 지급이라는 기본소득의 특성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기본소득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기본소득의 현실성, 방향성을 둘러싼 논쟁을 발발시켰다. 혹자는 묻는다. 과연 기본소득이 생태적·사회적 위기의 변곡점이 될 수 있을 것이냐고 말이다.

이러한 논쟁에 응답하듯, 지난 8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1년 반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쳐 "한국 사회 전환: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을 발표했다. 2023년 월30만원의 기본소득으로 출발해 2023년 중위소득50%(2021년 기준, 월 91만원) 수준의 기본소득이 우리 모두를 제대로 된 삶으로 이끄는 ‘기본’이 될 것이라는, 간명한 원칙과 목표를 제시한 셈이다. 특히 이 로드맵은 기본소득의 정당성과 효과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기존 복지제도의 재편방안 및 기본소득 재원 마련 계획까지 포함했다. 이 로드맵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박종철출판사(2021)로 출판되었다.

다만 이제 막 출발한 기본소득로드맵은 ‘가안’에 불과하다. 집필진들이 스스로를 ‘리얼리스트’라고 자평한 까닭은 향후 기본소득 정책이 연구자의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 탄생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기존의 정책, 수많은 아이디어와의 경합 속에서 해체, 결합, 재탄생의 과정을 겪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복기하고, 기본소득과 여타의 복지정책 및 사회운동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철학을 공유하는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해야만, 일각에서 우려하는 복지축소의 대안이 아닌 ‘우리 모두를 해방의 저 너머’로 이끄는 변혁적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사)기본소득연구소, 한국연구재단 일반공동 ‘리얼유토피아를 위한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 연구팀은 2021년 한국기본소득포럼을 공동주최하며,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를 골자로 학계와 현장의 전문가, 시민들을 초청했다. 11월 25, 26일 양일간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에서 진행된 포럼에서는 기본소득의 △정당성(철학): 토지배당, 생태배당 △현실성(세력) 복지국가·사회운동과의 관계설정 △구체성(정책): 경기도 기본소득 사례를 중심으로(의의, 증세와의 관계)등이 치열하게 논의됐다. 향후 한국사회의 전환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논의가 진행되었기에, 본지를 통해 내용을 세세히 적고 공유하는 것이 향후 기본소득 방향성 설정에 도움이 될 듯여 본 후기를 공유하였다. 이보다 자세한 내용을 읽고 싶은 독자들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누리집 내 포럼 자료집을 참고하시면 된다.

1.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자연적 공유부로서의 토지·생태배당

1) 부동산 불평등, 90%가 넘는 국민에게 이익되는 ‘토지세’가 해법

‘기본소득의 정당성과 원천으로서의 공유부’ 토론회의 포문을 연 발표자는 남기업(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이었다. 남 소장은 토지 소유가 극도로 불평등(지니계수, 0.811)하다며, 이는 해방 직후 지주계급이 있던 시기인 1945년(0.73)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더군다나 이는 끊임없는 부동산소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심지어 그 규모는 2019년 기준 445.5조원으로, GDP대비 연평균 16.8% 수준이다.

남 소장은 특히 이러한 경제가 ‘비생산적’이라고 지적했다. 거래과정에서 발생하는 ‘토지가치(지대)’가 토지소유자의 행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인프라 형성으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는 엄연히 소유자의 노동으로부터 발생한 이득이 아닌 셈. 따라서 부동산소득으로 명명된 GDP대비 연 평균 16.8%는 ‘불로소득’으로 재명명되며, 비생산적인 경제를 양산하고 있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따라서 남 소장은 비생산적 경제를 생산적 경제로 바꿔내기 위해선 ‘기본소득 토지세’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히 토지세와 기본소득의 연계는 필수적이다. ‘조세저항’이라는 난제를 극복하고, 국민 93.9%를 순수혜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남 소장은 “토지세가 도입되어야 투기용 부동산이 시장에 증가하고 부동산가격이 하향안정화하면서 부동산불평등을 잠재울 수 있다”며 “또한 지가 안정은 중소기업, 신규기업 위주의 경제활성화로 이어진다”고 전망했다.

용혜인 국회의원실의 장흥배 정책보좌관은 동일한 맥락에서 ‘개발이익’에 주목했다. 최근 전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대장동 사태가 개발이익을 노리는 민간업자들이 소위 ‘대박’을 친 대표적 사례라는 이야기다. 장 보좌관은 개발이익에는 부동산 시장 환경의 변동 등 외부효과로 인해 발생하는 불로소득이 포함되어 있다며, 이는 ‘사회적 공유부’로서 자유주의 재산권 수립의 기초인 노동과 무관히 주어진 것으로 사회의 몫으로 환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장 보좌관은 현존하는 ‘개발이익환수’ 제도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 한다고 꼬집었다. 건축물이 있는 토지의 가치상승분은 개발이익으로 포착하지 못하며, 관련 기본법이 존재하지 않고 개별 법률에 따른 개별 환수로 인해 지자체와 국가 사이의 개발이익 귀속 및 배분의 원칙 역시 부재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현 시점에서 개선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다. 개발이익의 절대 크기를 줄이려는 접근이 부재하고, 개발된 주택을 분양받는 이들에 대한 불로소득 환수에 있어선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 보좌관은 ‘기본소득 토지세법(용혜인 의원실 「토지세 및 토지배당에 관한 법률」21.11.16)’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개발이익을 환수할 뿐 아니라, 보유세를 강화하는 대책(종부세 대비 약 30조원의 순증 효과)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민간보유 토지에 공시가격을 기준한 토지세를 부과하며, 이를 토지용도에 대한 구분 없이 적용한다. 또한 토지세 세수는 전액 토지배당으로 연계되며, 이는 전체가구의 88%를 순수혜가구로 만들 수 있다. 나아가 장 보좌관은 개발에 있어 토지임대부 공공임대를 전면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발과정에서 지가안정을 1순위에 두고 정책을 진행해야, 개발붐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장 보좌관은 “토지배당은 월 7만원 수준”이라며 “토지배당 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임대료가 인하할 것이고, 이는 서민의 주거안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토지임대부 공공임대를 전면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공공개발의 1순위 목표가 무주택자의 주거권 확보, 지가안정이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처음부터 토지임대부 공공임대를 전면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2021 한국기본소득포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2) 기후위기, 정의로운 전환 위해선 ‘탄소세-탄소배당’ 한 배 타야

최근 기후위기와 관련해 가장 많이 논의되는 현안은 COP26(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충격적 결과다. 각 국가에서 2030년까지 지구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NDC(국가 온실가수 감축목표)를 제시해야 했는데,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여전히 지구의 온도가 2.4도가 상승하는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2022년까지 각 국가가 새로운 목표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 급진적 변화의 대안으로서 탄소세 논의가 부상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헌석(정의당 기후·에너지 특별위원회)위원장은 탄소세 관련 논의를 이어나갔다. 그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 감축을 위해선 재생에너지 확대 및 탄소세 도입이 필수 과제라고 언급했다. 원칙적으로는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매년 15조원에 달하는 세목이 교통에너지환경세로 시행해야 하지만, 현실상으로는 석탄, 천연가스 과세, 비수송연료 탄소세를 시행을 시발점으로 삼아 향후 탄소세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가 지역사회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전과되는 것을 막는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을 세워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탄소세를 통해 모인 세수를 정의로운 전환 기금으로 모아내고, 이를 탄소배당 및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사회적 약자들의 연료전환을 위한 기반마련사업에 사용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김찬휘(녹색당 공동대표)대표는 탄소세-탄소배당에 적극 동의하지만, 탄소세와 같은 ‘시장적 해결방식’ 외에도 공급의 직접적 금지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연기관 자동차금지, 석탄 발전금지, 에너지 낭비 신규건물 금지 등이 그 예시다. 나아가 기후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선 ‘탈성장’ 논의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제안도 이어나갔다. 실상 불평등한 파이를 내재한 현 체제에선, 그나마 파이 자체를 키우려는 성장주의의 유혹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파이를 키우는 경제는 생태적 임계점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더 평등하게 분배되는 기본소득이야말로 기후위기는 물론, 그 시발점인 성장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다만, 김 공동위원장은 일부 생태주의자들로부터 기본소득이 또 다른 ‘경기회복’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말도 전했다. 따라서 기본소득이 해방적인 수단이 되기 위해선 충분한 수준의 기본소득이 지급되어야 하며, 이는 자발적 활동 등의 확대와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기본소득이라는 소득보장 정책만으론 불충분하기에 보건의료, 교육, 주거, 돌봄 등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김 공동위원장은 “기본소득이 사회전환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다만, 기본소득이 생태적인 삶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노동시간 단축, 충분한 수준의 공공서비스, 자율적 영역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패널을 맡은 금민(정치경제연구소 대안)소장은 탄소세와 더불어 그린뉴딜도 주요한 대안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녹색양적완화를 통해 대규모 공공투자가 들어가야 하며, 혁신기술의 사회적 전면화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이 과정에서 말 그대로 돈을 대출해주는 것이 아니라 ‘공유지분권’ 형태로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기본소득적 발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정책이야말로 향후 탄소중립사회에서의 기업들로부터 발생할 수익을 미리 지분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청석에선 지역별 에너지 수립에 관련한 질문도 제기됐다. 재생에너지 설치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지가가 저렴한 농촌/어촌지역으로 몰리게 되어 있고,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수도권에선 이득을 보지만 이로 인한 피해는 지역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이헌석 위원장은 “지금은 자급률 12%인 서울이 당인리(합정) 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기 전까지는 자급률이 불과 3% 수준이었다”며 “실상 지역별로 에너지 계획 수립은 물론, 지역-수도권의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각 지역에서 쓸 에너지는 직접 생산할 수 있도록 미니재생에너지 지원사업 등을 활발히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튜브 방청석에선 탄소배출 산업을 다른 국가로 이전시키고, 그로부터 역수입해오는 행태를 지적하는 반응도 이어졌다. 김찬휘 공동위원장은 “일부 유럽국가들이 에너지를 줄이면서 성장을 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데, 그건 탄소배출 사업을 다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로 이전시킨 덕분”이라며 “사실상 다른 나라에 탄소배출을 전가시킨 꼴이다. 전국가적 합의를 통해 대신 배출해주는 시스템이 횡행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답했다.

2.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사회서비스, 사회운동과의 조우

1) 기본소득과 보편적사회서비스의 관계

기본소득과 사회서비스 결합방안은 이번 포럼에서 이목을 끄는 분야 중 하나였다. 기본소득도입이 기존의 전통적 복지국가를 축소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기존 복지국가와 상호보완적 관계를 맺겠다고 선언한 기본소득 로드맵을 외부에서 평가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장애복지분야의 이선우(인제대 사회복지학)교수는 그간 장애복지계에선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인 장애인연금의 소득 기준, 장애정도(경,중)의 기준을 폐지하자는 이야기가 주로 나왔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그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 도입에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그는 현 장애인구의 2배에 달하는 인원이 미등록장애인으로 분류되어 있어 자칫하면 장애등록이 ‘특권’이 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을 만큼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WHO가 권고하는 기준에 따르면 인구의 약 15%가 장애등록을 받아야 하는 상황 한국은 장애인구가 5%에 불과하다. 그는 그 과정에서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장애를 인정받기 위해, 근로무능력을 판정을 받고, 빈곤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비인간적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빈곤을 입증할 필요도, 근로무능력을 판정받을 필요도 없이 최저수준 이상으로 모든 시민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경계’를 허무는 ‘무조건성’을 지니고 있다며, 이는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선우 교수는 “근로능력입증은 16세기 엘리자베스 시대의 구빈법부터 영속하는 제도다. 지금은 21세기고, 소위 선진국에서 근로무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온갖 비인간적 과정을 참아내야 하는 모순이 쓸쓸하다”며 “기본소득이 엄청 높은 수준은 아닐지라도 경계에 있는 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여성고용과 돌봄분야의 이주희(이화여대 사회학과)교수 역시 기본소득이 보편적 사회서비스와 한 배를 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돌봄, 의료, 교육 등 집합적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의복이나 음식 등 취향을 탈 수 있는 삶의 모양 중 자유가 필요한 영역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교수는 OECD복지지출을 기준으로 한국의 현금성 복지지출의 비율이 현저하게 낮다고 봤다. 사실상 노령연금을 제외하곤, 근로연령대에게 지출되는 현금성 복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 그는 일자리를 공부하는 학자로서, ‘일하지 않을 자유’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는 직업선택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서, ‘원하지 않는 직업이 없을 땐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희 교수는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좌파들은 노동을 굉장히 중시하고, 왜 일하지 않게 내버려 두냐고 묻는다”며 “하지만 자산이 많은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 활동할 자유를 무궁무진하게 누리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취약계층에게 기본소득은 놀고먹을 자유가 아니라, 나쁜 일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라며 “지금은 기본소득이 없어서 사용자가 부당한 대우를 해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기본소득이 있다면 나쁜 노동을 거부하고 더 나은 노동을 찾아갈 수 있는 자유가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한인임 소장은 이주희 교수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연구소를 찾는 산재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싸우는 이유 역시 산업현장을 떠나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선진국 노동자처럼 산재보험에 목매지 않을 수 있는 상병수당이 있다면, 그 싸움의 처절함이 보다 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불안정노동, 실업자의 증가로 고용보험,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등 한국의 4대 안전망의 사각지대가 넓어지고 있는 상황. 결국 고용경험조차 없는 청년실업자, 1년의 퇴직금을 위해 괴롭힘 속에서도 버티다가 자살을 선택하는 사회초년생, 임금차이가 노년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국민연금의 계급적 기능 등을 고려했을 때, 모두에게 주어지는 기본소득이야말로 이런 사각지대를 없애고, 보다 안전한 노동을 요구할 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을 표했다.

기본소득과 사회서비스의 결합에 긍정적인 의사를 피력했던 이들이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기본소득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고 중론을 모았다. 돌봄, 노인, 장애인, 적극적 노동시장 등 여전히 보편적 사회서비스의 확장이 필요한 영역이 남겨져 있다는 것. 또한 이선우 교수는 우파기본소득론에선 현 사회복지제도를 모두 통합해서 기본소득으로 통폐합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렇게 된다면 모든 것을 시장에게 의존하게 되어 실상 소득보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서비스영역의 축소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기본소득 로드맵의 집필진이자 토론의 사회를 맡은 백승호(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교수는 “로드맵은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를 근간으로 한다”며 “다만, 각 분야의 전문가들처럼 서비스의 내용 등 구체적인 사안을 세세히 담아내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사회서비스 전문가들과 만나며 이 부분을 세밀하게 보완해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2) 현장의 목소리: 사회운동가와 만나는 ‘기본소득’

기본소득이 좋은 이상과 구체적 정책조합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회적인 운동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 구현되기 어렵고 자리잡기 어렵다. 때문에 사회운동가와 만나는 기본소득 토론회에서는 노동, 동물권, 복지 등 각 분야의 일선활동가들이 바라보는 기본소득에 대한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서울시 동부권직장맘지원센터에서 일하는 김미정 팀장은 유자녀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과 기본소득을 연결해서 이야기했다. 김 팀장은 최근에 만난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로 운을 띄웠다. 퇴사가 두려워 임신을 숨기고 일을 하다가 임신을 알리니 본래 업무에서 벗어나 바닥에 껌을 떼는 일을 하라고 했다는 것. 그는 기본소득의 철학적 근거인 공유부가 각종 휴가의 권리로 깔려 있다면, 노동자들이 그 권리를 사용하는데 이만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유급노동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미치지 않는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취급하니깐 육아휴직, 출산휴가가 부가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며 “출산과 육아가 없이 이 세상이 굴러가지 않는데, 그런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해준 기본소득이 내겐 너무 소중했다”고 말했다. 이어 “돌봄노동은 무언가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생존하게 하는 것”이라며 “기본소득을 통해 단축된 노동시간에 돌봄노동에 참여한다면,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성장중심주의가 아닌 돌봄중심주의로 나아가는 데 공감을 표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본소득당 동물권생태의제기구 어스링스 홍순영 위원장은 기본소득이 가지고 있는 공유부 개념이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나누는 말 그대로 ‘현금정치’가 아닌, 공유자들이 각자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존재정치’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치가 인간의 것만은 아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체 속에서 다양한 생명종과 상호의존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정치적 결정이 다른 종에게 영향을 미치고, 다른 종의 위기가 기후위기, 펜데믹으로 돌아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존재의 몫은 그들이 원하는 바대로 살게 해주는 것이며 이를 지원하는 활동가들의 돌봄, 돈, 시간 등은 기본소득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천 송도에서 도요새의 습지를 방문한 경험을 공유한 홍순영 위원장은 “지구에는 인간 말고도 수많은 지구주민이 있다”며 “그들은 모두 지구라는 공유지의 공유자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송도 옆 도요새 습지를 방문했다. 아마 사람들이 보면 노는 땅이었을 것”이라며 “알고보니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곳이었다. 이처럼 그간 우리가 맞다고 생각해 온 가치로 볼 수 없는 수많은 가치가 숨겨져 있는 곳이 지구다. 기본소득의 철학은 그 가치를 그대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김혜미 간사는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데 있어 기본소득의 가치가 매우 소중하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신청주의, 가족주의에 기초한 기존 복지시스템이 아니라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주는 기본소득이 긍정적이었다고 표현했다. 다만, 최근 기본소득이 정치인의 공약으로 등극하면서 마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표현했다. 그는 소득보장보다도 보편적 사회적서비스가 먼저 깔려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빈곤할수록 주거비 지출이 소득의 50~60%에 육박하기 때문에, 토지세 등을 걷어서 주거환경개선, 주거급여를 제공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에서다.

김 간사는 “사실 기본소득이 가치적으로 훌륭하고,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특히 저변을 확장해나가는 면에 있어서 탁월하다는 생각은 든다”며 “다만, 조금 더 현장에 밀접한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다. 좀 더 전환의 씨앗이라는 생생한 이야기가 퍼진다면 현장활동가들의 공감을 얻기가 쉬울 것 같다”고 말했다.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은 근로기준법에서 벗어난 노동자들의 권리문제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실상 일자리 없는 성장, 질 나쁜 일자리만 남은 현실에서 어떤 대안을 요구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보장도 매력적이지 않지만, 기본소득을 첫 번째 대안으로 내놓기에는 너무 보편적인 정책이라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 다만 기본소득이 파업기금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데는 공감을 표했다. 대부분의 노동조합 활동하는 이들이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건 ‘경제력’ 때문이라는 것. 또한 수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조합원들이 있는데, 이들은 수급권을 포기할 수 없어 산재가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이들에게 기본소득이 있었다면, 수급권 여하에 관계없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수급권 박탈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기본소득 운동을 하자고 하면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며. 정치행동 중 기본소득을 언급하는 것이 유리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또한 낮은수준의 기본소득 도입 시 자본의 힘이 센 상황에서 임금보조의 성격을 띌 수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상을 요구하는 투쟁들이 함께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노동조합도 여유있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이긴다”며 “기본소득이 있다면, 일정수준의 파업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기본소득이 처음부터 시민에 의해 강렬한 경험 끝에 탄생한 게 아니므로, 향후 그런 힘이 발휘되길 바란다”며 “기본소득의 금액을 상승시키는 과정에서 강렬한 경험을 한다면 보다 기본소득이 자본을 견제할 성격을 띌 것”이라고 말했다.
▲ 2021 한국기본소득포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3.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 증세태도, 범주형 기본소득 실험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을 구체적인 실험, 설문조사, 인터뷰를 통해 재고하는 토론회도 개최됐다.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 최광은 전문연구원은 경기연구원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약 1만명의 시민이 참여한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는 눔프(NOOMP)현상의 비판적 해부를 기반했다. 눔프(NOOMP)현상이란, ‘Not Of My Pocket’(내 주머니는 아니야)이라는 내용으로 세금영역의 님비현상으로 규정되며, 본인 세부담보다 부자 증세 선호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이데올로기다. 지난 6월 양재진 외 2명의 교수가 발표한 “한국인의 복지·기본소득 관련 증세 태도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본인이 받고 싶은 금액의 10%란 세금을 추가 부담하겠다는 내용이 유사한 맥락이다.

하지만 이번 결과에서는 조금은 다른 결과가 도출됐다. 기본소득 적정금액 대비 추가부담 소득세액 평균비율은 이전조사에서 나왔던 10%에서 33.3%로 올라갔으며, 특히 조사인원 중 22%는 추가부담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저소득층일수록 기본소득 적정금액 대비 추가부담 의사액이 낮아지고, 세금을 감당할 고소득층의 부담은 커졌다. 세금추가 납부의사가 없는 이유로 저소득층은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를 택했으며, 상위층은 “이미 충분히 세금을 내고 있어서”다.

따라서 최광은 연구원은 “소득이 증가할수록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소득세 추가부담 의향이 증가했으며, 소득이 증가할수록 눔프지수가 낮아졌다”며 “하지만 소득세보단 비과세 세금부터 폐지하는게 소득세 인상 선호보다 높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경기연구원이 ‘기본소득 국민의식 조사 전국 17개 시도(2021)’에 따르면 기본소득 재원으로 가장 각광받는 건 △빅데이터 공공화, 공공플랫폼 조성 △환경피해에 대한 탄소세나 환경세 부과 △현 세출 예산 조정 등이었다.

이어 서정희(군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교수, 이지은(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박사수료생은 2019년4월부터 시작된 경기도청년기본소득의 지원 대상을 중심으로 이들의 기본소득 수령경험을 연구했다. 연구내용은 이들이 기본소득의 특성과 가치를 경험하는가와 범주형 기본소득이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이행경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였다. 기본소득이 사고실험이 아닌 구체적 분석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모든 것을 제한적, 경쟁적으로 받아왔던 청년들이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경험하며 파격적이고, 제한에 걸리지 않았던 편안한 경험을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각종 선별기준으로 인해 아무 혜택도 받지 못했던 청년들에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또한 가구단위로 지급됐던 긴급재난지원금에서는 ‘내 것’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돈을 청년기본소득은 ‘내 것’이라고 인식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표현했다. 그 과정에서 자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경기도기본소득이 4차례, 분기별 25만원씩. 들어가면서 한시적으로 끝났다는 점은 청년들의 소비, 생활계획을 어렵게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차피 1년 밖에 못 받는 것,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는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화폐를 경유해 지역의 재발견을 한 케이스도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앞으로 꾸준히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좀 더 숨통이 트이는 삶을 살 수도 있게 되었으며, 결혼을 생각할 수 있으며, 여러 번의 도전을 해 볼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시간이 단축되어, 주말만 기다리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예측한다고 말했다.

다만, 연구진은 청년기본소득이 ‘청년’에 방점이 찍혀 있는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봤다. 많은 참여자들이 청년은 받을만한 계층이지만, 모든 사람이 기본소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정희 교수는 “대상별(범주형) 기본소득이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기제로 작동하기엔 어려워 보인다”며 “보편적 기본소득으로의 이행 가능성을 기준으로 보면 낮은 수준이라도 모두에게 제공되는 것이 더 타당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다양한 토론이 진행된 2021 한국기본소득포럼을 주최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안효상 이사장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기본소득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본소득의 의미와 지향에 대해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다. 오늘 이 자리는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어떻게 도입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기본소득 포럼은 2018년부터 매년 11월에 개최되는 기본소득 논의의 장으로서, 학술적 성과, 정책적 제안, 실천적 관점에서 기본소득 의제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전망을 공유하는 자리다.

[한인정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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