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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해체되자, 주민들 "다시 지어달라"..원전강국 프랑스 비결 [르포]

정은혜 입력 2021. 11. 30. 05:01 수정 2021. 11. 30.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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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진행 중인 쇼 원전 들어가보니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 쇼(Chooz) 지역의 원전 2기(쇼B1, 쇼B2)가 지난 23일 수증기를 내뿜고 있다. 정은혜 기자.

지난 23일 오전 7시 30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북동쪽으로 3시간 30분 가량 차를 타고 달리니 오래된 주조 제련소들이 나타났다. 문을 닫은 쇠락한 공장 지대가 뫼즈강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조금 더 가니 대형 원전 2기가 거대한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벨기에와의 국경 지역인 쇼(Chooz)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풍경이다. 한국에서는 원전이 바닷가에 있었기 때문에, 내륙 한가운데서 보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쇼에는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운영하는 원전 2기(쇼B1, 쇼B2)와 원전 1기(쇼A)의 '무덤'이 있다. 쇼A(1967~ 1991년 가동)는 프랑스 최초 가압형경수로 원전으로 현재 해체 중이다. 305㎿급의 원전인 쇼A는 가동된 24년 동안 380억㎾의 전기를 프랑스와 유럽에 공급했다. EDF 관계자는 "쇼A는 프랑스 최초의 가압형경수로 원전일 뿐 아니라, 최초로 해체 중인 가압형경수로 원전"이라며 "쇼A의 해체 경험은 이후 프랑스의 모든 원전 해체의 표본이 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말했다.

EDF는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쇼A를 산속 동굴에 묻은 채 해체 중이다. 단단한 암반 속의 동굴에서 해체해 사고 시에도 방사능 격리가 가능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구불구불 계단 내려가니 해체용 수조


지난 23일 찾은 프랑스 원전 쇼A의 내부. 이곳에선 원전 현재 해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정은혜 기자
쇼A 원전 내부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직원용 버스를 타고 이동한 뒤 까다로운 신원 확인과 '갱의' 절차를 거쳤다. '갱의'는 외부의 오염 물질이 원전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작업 보호복(방호복의 일종)으로 갈아입는 것을 말한다. 이어 ID카드를 찍고 문을 통과하자 해체 중인 원전 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음 탓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원전 곳곳에는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원전 운영 당시 필요한 케이블이 있었던 곳에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구멍들이 남아 있었다. 장갑, 방호복 등 극저준위 폐기물을 담을 수 있는 플라스틱 용기, 장수명 중준위 폐기물을 담을 금속 용기도 보였다. 각종 통로를 지나 계단 원자로가 있었던 곳으로 향했다. 구불구불 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10m 깊이의 수조가 나왔다. 이 안에서 원자로를 해체한다.

현재 쇼A 원전은 80%가량 해체된 상태다. EDF 관계자에 따르면 가동을 중단하자마자 원자로 안에 들어있던 핵연료봉을 반출해 방사능 98%가 즉시 사라졌다. 이후 건물을 폐쇄하고 원전 해체를 위한 전략 수립에 수년을 투자했다. 위그 라투르트 쇼A 원전 소장은 "우리는 원전 철거를 '해체를 위한 재건'이라 부른다"며 "프랑스에서는 '건설 철거'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원전 철거시에도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준위폐기물을 임시 저장할 수 있는 실린더. 500kg~1t 까지의 폐기물을 담을 수 있다. 이 용기 자체의 무게만 20t이라고 프랑스 원전 당국 관계자는 설명했다. 정은혜 기자.

그렇게 전략을 수립한 후 의회에 법령을 신청하자 3년 뒤 법령이 제정됐다. 법령이 발효된 2007년부터 남은 방사성 폐기물 해체가 시작됐다. 노심, 중기발전기, 펌프, 가압기, 원자로 용기 순으로 폐기가 진행된다. 기자가 쇼A 원전을 방문한 23일 현재 원전 뚜껑과 내부의 모든 부품을 제거한 상태였다고 한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원자로 용기 해체가 시작될 예정이다. 원자로 내부의 모든 부품을 제거하면 법령이 종료된다. 이후 부지를 복원하고 동굴을 메운다.

당초 EDF는 쇼A 등 가압형경수로 원전 해체 기간을 15년, 비용은 5억 유로(6700여 억원)로 잡았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쇼A의 해체 기간은 2년 더 늘어났다고 한다.

라투르트 소장은 "수조 아래에서 원자로를 절단하는 기술은 프랑스 최초로 적용되는 기술"이라고 자랑했다.


“지역민 교육해 원전 인력 육성”


이 지역은 뫼즈강을 따라 과거 제련소가 주업이었다. 하지만 중국, 인도가 값싼 인건비로 철강 수출국에 오르면서 이 지역 일대의 철강 산업에 타격을 줬고 지역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를 타개하는 방안 중 하나가 프랑스 최초 가압형경수로 원전인 쇼A 원전이었다. 24년간 운행하는 동안 멈출 때까지 지역민들을 재교육해 고용했다. EDF 관계자는 "연구용 엔지니어만 외부 초청으로 고용하고, 나머지는 지역민을 교육해 원전 인력으로 육성했다"고 설명했다.

쇼A 원전은 해체 과정에서도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EDF 관계자는 "원전 해체 방식에는 '즉시 해체'와 '지연 해체'가 있는데, 우리는 '즉시 해체'를 채택했다"며 "이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지역 경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즉시 해체가 고용 유지와 인력 자원 활용에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라투르트 소장은 "쇼A 원전 종사자와 직원들은 최소 18년 이상 진행되는 원전 해체에 투입된다"고 말했다. 현재 쇼A 원전 해체에 관여하는 직원은 150명이다. 작업에 참여하는 직원은 110명인데, 이 중 EDF 파견 전문 엔지니어 등의 직원은 40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지역 고용 직원이다.
완전히 철거된 쇼A원전 내부 공간(오른쪽). 왼쪽은 원전 철거 전 과거의 모습을 담아 전시돼 있는 사진이다. 정은혜 기자.


“지역 경제 살리자 원전 유치 긍정적”


쇼A 원전이 지역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주자 쇼B 원전 유치 때 지역사회 여론은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EDF 관계자는 "뫼즈강 유역에 산재했던 예전의 주물, 철강 산업이 쇠락하며 고용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쇼A 원전을 해체하자 지역사회에선 해체 여파를 우려하는 여론이 더 우세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기술을 적용한 쇼B 원전 건설 방안이 알려지자 반겼다는 것이다. 이 지역 주민이자 쇼 원전에서 16년째 일하고 있다는 엘리즈 누와이에는 "많은 지역 주민들이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다"며 "경제적인 효과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원전 도입 찬성은 안전성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프랑스가 원전 강국으로 올라선 데는 국민적 신뢰가 바탕이 됐다. 쇼A 원전 관계자에 따르면 EDF와 지역주민 대표인 지역의회가 3개월 주기로 회동해 원전 관련 질의 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프랑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새로운 원전 건설계획이 나오니, 여러 지역에서 원전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다"며 "법률에 의거해 투명하게 진행되고, 시민 중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면 의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법적 의무인데다, 프랑스 원자력안전청(ANS)이 원전 안전 실사를 한 뒤 보고서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등 투명성이 국민적 신뢰의 배경"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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