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절벽에 이자 갚기도 까마득".. 벼랑끝 내몰리는 젊은이들 [심층기획]

조희연 입력 2021. 11. 30. 06:05 수정 2021. 11. 30. 06:5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청년층 금융소외 심화
고용 줄어들자 소득 감소 '악순환'
2020년 평균부채 3479만원까지 뛰어
경제고통지수 '27.2' 통계 이후 최고
만기 연장 등 종료 땐 부담 커질 듯
"금융자립 지원 위한 제도 마련 시급
연금 등 재산형성 돕는 프로그램도"
#1. 안산공단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던 김정호(가명·33)씨는 지난해 공장을 그만두고 카페를 차렸다. 계약직으로, 그리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목표로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해온 그였다. 하지만 계약직으로 전환된 동료가 “일감이 줄었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감은 줄고 있었고, 정규직 전환은 더 멀어져만 갔다.

김씨는 20대 시절 8년 동안 카페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카페를 개업했다. 창업자금이 필요해 은행들을 전전하다가 제2금융권 두 곳에서 1500만원을 빌렸다. 기존에 갖고 있던 대출 2800만원까지 더하면 원금만 4300만원. 카페를 개업한 뒤 1년 동안 김씨가 출근하지 않은 날은 단 5일이었다. 지인들이 “그러다가 과로로 죽는다”며 걱정했지만, 당장 김씨에게는 자신의 몸보다 빚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2. 이지민(가명·28)씨가 지난해 대출을 받기로 결심한 건 ‘선택과 집중’을 위해서였다. 아르바이트로 월세며 생활비, 학비까지 충당하며 취업준비를 이어오던 중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공채시장에는 가물이 들었다. 가뭄에 콩 나듯 열리는 공채는 그야말로 단비처럼 느껴졌지만, 그만큼 탈락에 대한 두려움과 이후의 아픔도 더 커져 갔다. 언제 또 기회가 주어질지 알 수 없었다.

다음에는 꼭 합격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되돌아본 그는 ‘시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합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함께 시험에 응시한 청년 중에는 하루종일 공부만 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들과 경쟁하려면 이씨도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렇게 이씨에게 대출은 최후의 선택이 됐다.

◆일자리는 줄고 채무는 늘고… 경제 고통 악화

김씨와 이씨는 미래 수익, 즉 일자리를 위해 대출을 택했다. 창업도, 취업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데 그 돈이 수중에 없으니 대출을 받아야 했다.

코로나19 이후 대출을 받아 주식·가상화폐·부동산에 뛰어드는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청년들의 빚 문제는 ‘빚투(빚내서 투자)’라는 표현으로 대변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청년의 대출이 자산 투자나 투기 목적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하는 평범한 일상을 목표로 대출을 받는 청년도 있다. ‘청년층의 빚투 문제가 심각하다’는 우려에 이러한 평범한 꿈이 가려지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코로나 이후 청년층 부채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청년층 부채 문제가 투기 문제와 동일시되면서 코로나19 이후 청년들이 취업난으로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하는 실상은 관심받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 이후 청년 구직자의 구직기간이 늘어나고, 청년노동자의 무급휴직, 해고, 일거리 감소 등으로 고용상황이 악화되면서 청년 소득이 급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14일 발표한 청년 체감경제고통지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청년층(15∼29세)의 체감경제고통지수는 27.2로 2015년 통계 집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년 체감실업률이 올해 상반기 25.4%로까지 오르고, 청년 물가상승률도 1.8%로 치솟은 영향이 컸다.

기업이 일자리를 줄일수록 청년의 구직기간은 길어진다. 그만큼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시기가 늦춰지고 돈을 벌지 못한 채 채무가 쌓인다는 뜻이다.
지난해 청년층(29세 이하 가구주)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역대 최고 수준인 32.5%를 기록했다. 2015년(16.8%)의 두 배에 달한다. 청년층의 부채 증가 속도가 자산 증가 속도보다 빨랐기 때문이라는 게 한경연 설명이다. 청년층 부채가 2015년 1491만원에서 지난해 3479만원으로 연평균 18.5% 오르는 동안, 자산은 8864만원에서 1억720만원으로 연평균 3.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신용등급이 낮은 청년들은 은행 대출을 이용하지 못해 제2금융권 대출과 다중채무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20대의 카드론 잔액은 1조1410억원으로 전년 대비 18.5% 증가했다. 20대 다중채무자의 대출잔액은 전년 대비 21.2% 급증하며 42조원을 돌파했다.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해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청년도 늘고 있다.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20대는 2019년 상반기 5917명에서 코로나19 이후인 지난해 상반기와 올 상반기 각각 6719명, 6658명으로 불어났다.

◆‘잃어버린 코로나 세대’ 되지 않도록 금융 자립 도와야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시행하고 있는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고, 금리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청년층의 이자 부담은 늘어날 전망이다.

‘코로나 세대’가 ‘잃어버린 세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잃어버린 세대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1990년대 일본의 경기침체기에 구직난을 겪은 청년을 일컫는다. 이들은 청년기 경제활동 참여가 지연된 탓에 소득이 줄고 빚은 늘었는데, 이후 아직까지도 비정규직 노동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청년층의 경제활동 참여의 중요성은 이미 다수 논문을 통해 강조된 바 있다. 한국사회과학연구소의 ‘초기 노동시장 경험이 향후 청년 고용 성과에 미치는 효과’ 논문은 “청년기의 경제활동 참여와 성취는 이후 중장년기 노동경력과 소득수준, 그리고 사회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성인기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정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 채무 보유의 관련 요인’ 논문을 통해 “청년의 경제활동 참여의 지연과 제한은 경제적 자립을 어렵게 하고, 주거 독립이 지체되고 부모와의 동거 비율이 증가하며, 결혼 및 출산율이 낮아지는 현상과 병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청년층의 금융 자립을 돕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형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위 보고서에서 금융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정부의 서민금융상품 제공을 적극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서민금융대출 중 ‘햇살론유스’의 경우 한도는 최대 1200만원, 기간은 최장 15년이지만, 연 금리가 3.5%에 불과해 채무 부담이 작은 편이다. 이 같은 청년층 대상 중저금리 상품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백종호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이후 생계비를 충당하기 위해 금융상품을 해지한 청년들이 미래에 대비할 기회를 상실했다”며 “대출 외에도 적금, 연금, 보험 등 청년들의 재산 형성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용등급 평가 기준 청년들에 불리… 맞춤 저금리 대출 필요”

‘같은 등급에 속한 사람끼리 위험을 분담하는 체계’. 하준경 (사진)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용등급을 이렇게 표현했다. 신용등급이 높은 사람들은 연체율이 낮기 때문에 금리를 낮게 설정해도 거기서 나오는 수익이 일정하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은 연체율이 높아서 같은 등급에 속한 사람들이 부담해야 할 이자까지 부담하도록 금리가 높게 설정된다는 설명이다.

하 교수는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과장,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등을 거친 금융전문가다. 지난 26일 하 교수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청년 채무 문제와 대안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우선 하 교수는 “신용등급을 얼마나 정확하게 평가했는가”를 첫 번째 문제로 꼽았다. 그는 “청년들은 금융정보가 부족한데, 과거 데이터가 없다는 이유로 낮은 신용등급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면서 “높은 금리를 부담하다 보면 생활에 압박이 커지고 빚을 더 지게 되고 등급은 더 낮아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신용등급 체계로는 청년의 신용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으니 금융권이 대출심사를 더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게 하 교수 의견이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대출심사를 신용등급이나 담보만 보고 기계적으로 하니까 금융 발전이 더디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출심사는 정보를 생산하는 행위”라면서 “한 사람의 미래를 평가하기 때문에 과거를 기반으로 책정하는 신용등급보다 더 고차원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용평가 회사가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신용등급을 부여하긴 하지만 실제 대출은 금융기관이 신용등급을 참조해서 스스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기본대출’도 청년에게 저금리 대출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기본대출은 소득이나 자산과 관계없이 국민에게 최대 1000만원을 장기간(10∼20년) 저리(약 2.8%)로 대출해 주는 제도다.

차주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으며 은행이 부실을 떠안을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하 교수는 “오히려 보편적으로 대출을 받게 해주면 돈을 갚기 힘든 사람들만 대상으로 대출해 줄 때보다 연체율이 낮아진다”고 반박했다.

청년의 삶을 ‘대출’이라는 방법으로 지원함으로써 청년들이 누려야 하는 복지에 돈을 지불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에는 “상호보완적으로 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하 교수는 “청년들이 왜 빚을 지는지를 봐야 한다”면서 “창업이나 생산활동을 하는 청년들은 금융으로 배려하고, 생활비가 없는 문제는 사회안전망이나 복지 측면에서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