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장동 원주민들의 분노

오홍석 기자 입력 2021. 12. 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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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이 땅 뺏은 사업을 단군 이래 최대 환수사업'이라니.."

● 우계 이씨, 전의 이씨 가문 700년 농사짓던 대장동
● 평화로운 집성촌이 고급 아파트 탈바꿈
● “‘성남의뜰’ ‘서민 터전 만든다’ 이타심에 매각 호소”
● “이재명은 염치 없어…‘대장동 게이트’는 형사사건”
● “시행사가 지정한 감정평가사가 주택 감정”
● ‘대장동 사건’ 이후 자녀 신혼집 마련하려는 부유층 몰려
● 분양가 6억 35평 아파트가 15억 넘게 거래
● 헐값 받고 떠난 주민들만 분통…“서민 터전 만든다더니”
● “대장동 개발은 성남시가 몇 명 떼돈 벌게 해준 사업”

11월 11일 찾은 경기 성남시 대장동은 곳곳에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오홍석 기자]
‘도시'의 사전적 의미는 '인구가 집단거주하며 가옥이 밀집되어 있고 교통로가 집중돼 있는 지역'.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11월 11일 찾은 경기 성남시 대장동은 아직 도시 행색을 갖추지 못했다. 가옥과 교통로는 마련됐지만 사람이 없었다.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완성된 상가는 '임대'라고 쓰인 안내문만 붙어 있다. 도로에는 레미콘과 덤프트럭이 수시로 드나든다. 곳곳이 공사 현장이기에 형광색 '성남의뜰' 조끼를 입은 직원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유명 브랜드를 내건 300~500가구 규모 5개 단지는 5월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아직 주민이 다 입주하지 않아 단지 내 주차장은 빈 공간이 많다.

대장동이 개발되기 전부터 살던 주민들에 따르면, 대장동은 '우계(羽溪) 이씨'와 '전의(全義) 이씨' 가문이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집성촌이었다. 밭으로 향하는 도로가 사유지여도 주민들끼리 '내 땅 네 땅' 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던 농촌 마을이었다. 한편으로는 2000년대 초반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가 개발될 무렵 높은 분양가를 감당하지 못해 이주해 온 서민들 터전이기도 했다. 달라진 대장동을 바라보는 원주민 심정은 어떨까.

"특검이 아니라 형사사건처럼 수사해야지"

15년간 대장동에 살던 최모(71) 씨. 그가 살던 연립주택은 대장동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로, 지금은 공원이 조성됐다. 그를 포함해 해당 연립주택 17개동에 살던 주민 178명은 2005년 대장동 개발 시행사 '성남의뜰'에 토지를 '반강제'로 수용당했다고 한다.

최씨는 2005년 6월 신축 연립주택을 2억5000만 원에 매입했다. 11년이 지난 2016년 성남의뜰에 감정가인 3억1000만 원에 팔았다. 시세가 6억 원 정도일 때다. 최씨는 "당시 감정평가를 한 곳은 시행사(성남의뜰)에 비용을 받은 업체 3곳"이라며 "주택 가치가 과소평가됐을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최씨는 "당시 성남의뜰 직원들이 '집을 팔지 않으면 어차피 강제 수용된다'고 해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현행 토지보상법에 따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익 목적으로 개발 사업을 할 경우 시행사가 원주민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다.

최씨는 현재 거주하는 미금동 집 전세 계약이 끝나면 '이주자 택지'를 받은 대장동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이주자 택지는 공공택지 개발 과정에서 집이 수용될 경우 공공기관이 이주민에게 공급하는 필지를 말한다. 성남의뜰은 해당 필지 가격을 2019년 7월 10억 원으로 책정했다. 최씨는 은행 대출을 받아 비용을 지불했는데, 알고 보니 이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주자 택지는 조성원가에 공급하는 게 원칙인데 성남의뜰이 그보다 비싼 감정가를 산정해 받은 것. 최 씨는 성남의뜰을 상대로 택지 가격 재산정을 요구하며 채무부존재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는 "이재명 (전 경기) 지사는 염치가 없다"며 "공공이 땅을 뺐고 민간이 개발한, '땅 짚고 헤엄친 사업'을 두고 '단군 이래 최대 환수사업'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0월 김은혜 의원이 입수한 국민권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권익위는 이미 2018년 12월 전국 도시개발공사에 "이주자 택지 공급 가격을 조성원가로 통일할 것"을 권고했지만, 시행사인 성남의뜰은 이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성남의뜰, 이타심에 호소해 매각 종용"

최모 씨가 15년 간 살던 대장동 집은 현재 아파트 단지를 잇는 근린공원이 됐다. 공원 입구에 설치돼 있는 안내문. [오홍석 기자]
이모 씨 가족은 우계 이씨 종친으로 대장동에서 700여 년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성남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성남시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2008년 대장동 민간개발을 추진했는데, 당시 이씨 가족에게 민간개발 사업자가 평당 600만 원에 땅을 매입하겠다고 제안해 왔다. 이씨는 "거주민 중에 3분의 2에 가까운 사람이 개발을 반대했다. 아버지도 조상들 터전이 개발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반대하셨다"고 회상했다.

2014년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에 취임하고 2015년 성남도시개발공사(성남도공)가 만들어졌다. 성남도공은 성남의뜰을 사업시행자로 선정해 대장동 민관(民官)공동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성남의뜰 직원들은 이씨 가족에게 토지 매각을 종용했다. 이씨는 당시 성남의뜰 직원들이 "‘대장동이 공공 개발되면 집 없는 서민들이 살 수 있는 땅이 마련된다'며 이타심에 호소했다"고 전했다.

그는 "대장동에 서민들 살 터전이 마련된다는 말에 아버지께서 땅을 파시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2016년 이씨 가족은 약 5000평(1만6529㎡) 대지 중 220평(727㎡)만 남긴 채 토지를 매각했다. 가격은 평당 280만 원, 당초 민간개발업자가 제안했던 금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10월 1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국토교통부 자료를 분석해 "성남의뜰이 대장동 땅을 수용해 민간사업자에게 매각한 택지 면적은 총 14만3160평(47만3256㎡), 매각금액은 2조2243억 원으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성남의뜰은 원주민에게 평당 200만 원대에 매입한 땅을 평당 1553만 원에 매각한 것이다.

개발에 뛰어든 사업자들이 원주민에게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낮은 수준의 토지보상금을 지급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10월 6일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성남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 개발계획변경안'에 따르면, 화천대유가 참여한 하나은행컨소시엄은 당초 원주민에게 지급할 보상비용을 1조141억6100만 원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 책정된 보상비는 6184억6200만 원이었다. 성남의뜰은 대장동 사업을 위해 금융사 컨소시엄이 꾸린 일회성 특수목적금융투자회사(PFV)이고, 화천대유는 컨소시엄에 참여한 자산관리회사(AMC)다.

현재 이씨는 서울에 거주 중이고 아버지는 대장동 서쪽 작은 마을로 이주해 살고 있다. 팔지 않은 땅 220평은 성남의뜰이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도로를 놓지 않아 개발이나 매매가 어려운 맹지(盲地)가 됐다.

분양가 6억 35평 아파트가 15억 넘게 거래

대장동 현장에서 만난 이씨는 "계약서에 사인할 당시만 해도 성남의뜰 직원들이 도로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했다"며 울분은 터뜨렸다.

"좋은 의도로 쓰이는 공공개발이라고 해서 토지를 매각했는데 개인 몇 명의 천문학적인 이익을 위해 쓰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너무 화가 났다. 너무 속이 상해 최근에는 대장동에 잘 가지 않는다. (대장동 개발 사업은) 감독해야 할 성남시가 앞장서서 소수 몇 명에게 떼돈을 벌게 해준 사업이 됐다."

대장동 중심을 가로지르는 판교대장로 7길에는 공인중개소가 한데 모여 있는 상가가 있다. 가족 단위로 공인중개소를 찾아 쇼핑몰처럼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방문객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이곳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원주민에게서 헐값에 매입한 부지에 지어진 아파트 가격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한 공인중개사는 "언론에 대장동 이슈가 불거진 후 오히려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늘었다"며 "35평(116㎡) 기준 분양가는 6억 원 수준이었는데 현재 가격은 15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매물을 보러 온 방문객 중에는 판교에 직장이 있는 신혼부부 집을 마련해 주려는 부모가 많다"고 설명했다. 헐값을 받고 떠난 원주민들 자리는 부유층 자제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었다. 증발된 수천억 원의 돈은 '작업'에 참여한 화천대유 관계자들과 유력 인사들의 주머니로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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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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