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보다 강태공이 많이 찾는 동네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여행기]
[이강진 기자]
▲ 맹그로브 나무 숲에서 서식하는 악어,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 이강진 |
광활한 오지에서 지평선을 바라보며 오래 지냈다. 오늘은 지평선이 아닌 수평선이 보이는 동네로 떠나는 날이다. 북해에 있는 관광지, 카룸바(Karumba)라는 동네다. 한국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일까, '북해'라는 단어가 조금 어색하게 들린다.
한국은 북쪽이 가로막혀 있어 섬나라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스쳐 가기도 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유럽까지 육로로 여행할 수 있는, 섬나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고 있다.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떠날 준비를 끝낸다. 캐러밴에 연결된 수도에서 물이 새는 것을 도와주었던 이웃(?)과 인사를 나눈 후 야영장을 벗어난다. 카룸바는 지금 지내고 있는 크로이던(Croydon)에서 가까운 곳이다. 느긋하게 운전해도 점심시간 전에는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도로는 잘 포장되어 있다. 카룸바를 소개하는 관광안내 책자에도 도로가 포장되어 여행이 편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 포장한 도로는 자를 대고 그은 듯이 직선으로 뻗어 있다. 도로 끝자락은 지평선이 되어 보이지 않는 도로다. 멀리 자동차가 오는 것을 보아도, 한참 운전해야 마주칠 정도다.
▲ 지평선 위에 일자로 뻗은 카룸바로 들어가는 도로 |
ⓒ 이강진 |
목적지에 도착했다. 예약한 야영장에 들어선다. 규모가 크다. 이곳에는 큰 야영장 서너 개가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동네다. 카룸바는 낚시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야영장에는 여행객이 가지고 온 크고 작은 배가 유난히 많다.
캐러밴을 정리하고 도로 건너편에 있는 선착장까지 걸어 가본다. 오랜만에 보는 바다가 펼쳐진다. 동해나 서해가 아닌 북해다. 항구에는 거대한 어선 세 척이 정박해있다. 선미에 큰 그물이 매달려 있는 고깃배다. 새우잡이 어선이라고 한다. 이곳은 새우잡이로 유명한 동네라는 것을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바다에 왔다. 오랜만에 낚싯대를 가지고 선착장 근처에 있는 백사장에 자리를 잡았다. 주위에 있는 강태공들이 심심치 않게 물고기를 잡아 올린다. 낚싯대를 던지니 입질이 금방 온다. 두어 번 미끼를 빼앗긴 후에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큼지막한 도미 5마리를 금방 잡았다. 충분하다. 너무 많이 잡아도 처치 곤란하다.
옆에서 낚시하는 젊은이도 나와 비슷하게 도미를 잡아 올린다. 생선을 손질하면서 몇 마디 나눈다. 낚시는 처음이라고 한다.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내륙에서 살았다고 한다. 따라서 양이나 소를 손질하는 것은 할 수 있으나 생선 손질에는 자신이 없다고 능청을 떤다. 카룸바에 일거리가 생겨 잠시 지낼 것이라고 한다.
▲ 물고기가 풍성한 카룸바 해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도 많이 볼 수 있다. |
ⓒ 이강진 |
이곳에는 특별한 관광지가 없다. 관광객보다는 강태공이 많이 찾는 동네다. 그러나 야영장 입구에 유람선 광고가 보인다. 배를 타 보기로 했다. 일몰을 보며 이곳 특산물인 새우가 곁들인 간식과 음료를 제공하는 자그마한 유람선이다.
늦은 오후 배에 올랐다. 부부가 운영하는 유람선은 거대한 강(Norman River)을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은 배를 운전하고 부인은 관광 안내를 한다. 직원 두 명은 손님을 보살피고 있다.
▲ 뱃머리에 놓여 있는 생선을 낚아채는 솔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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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강변에 잠시 세운다. 배를 보고 어여쁘게 생긴 새가 다가온다. 새에게도 먹이를 준다. 두루미 같이 생겼는데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는 새다. 새 이름을 들었으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먹이를 주었다고 한다. 따라서 새도 배를 알아보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유람선이 악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접근한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큼지막한 악어가 맹그로브 숲 사이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함부로 거닐다가는 악어 먹잇감이 될 수도 있는 강변이다. 두세 마리의 악어를 더 구경한 후 일몰을 보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 일몰이 유난히 아름다운 카룸바 |
ⓒ 이강진 |
▲ 일몰이 유난히 아름다운 카룸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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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공짜 술을 너무 마셔서일까.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다. 야영장 근처에 있는 산책로를 걸으며 아침을 보낸다. 강을 따라 산책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한참 걷다가 산책로를 벗어나 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경치를 감상한다. 그런데 이곳에 악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곧장 강변을 벗어났다. 황량한 들판에 나무도 많지 않은 산책로이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 강을 중심으로 조성된 산책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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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하는 여행이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생소한 곳에서 살아보는 경험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오늘은 특별한 계획이 없다. 온종일 야영장에서 빈둥거리며 지낸다. 넓은 야영장을 걸어본다. 의자에 앉아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커피도 평소보다 한 잔 더 마신다.
늦은 오후가 되었는데 어디선가 아코디언 소리가 들린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할아버지가 보면대에 악보를 올려놓고 연주에 빠져 있다. 흥겹고 대중적인 음악이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연주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연주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옆에서는 젊은 부부가 어린아이 두 명과 함께 시끄럽게 지내고 있다. 큼지막한 보트를 청소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도 보인다. 의자에 앉아 한가하게 이야기 나누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보인다. 건너편에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 혼자 캐러밴 앞에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기 투숙하는 사람이다. 여행하다 보면 야영장에서 장기 투숙하며 삶을 보내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획일적인 군사 문화 속에서 많은 세월을 지냈기 때문일까. 개성 있는 삶의 모습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학창 시절 읽었던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동료들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높이 날기 위해 고생을 사서 하는 갈매기,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평범한 사실에 삶을 맡긴 갈매기에 대한 이야기다.
▲ 오랫동안 관광선에서 던져 주는 먹이에 길들여 있는 이름 모를 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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