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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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00위 안에 드는 수제맥주 만들기로 딸과 약속, 조만간 지킬 수 있을 것"

정혜선 기자 입력 2021. 12. 02. 17:07 수정 2021. 12. 0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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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 뱅크크릭 브루어리 대표, IT업계 20년간 근무
퇴직 후 충북 제천으로 귀촌해 수제맥주 양조장 설립
내년부턴 몰티 기술 관련 교육 시작할 예정
사진=정혜선
[서울경제]

여기 인생 2막에 맥주에 빠져 사는 분이 있다. 맥주에 그냥 빠진 게 아니다. 충북 제천으로 귀촌해 홉 농장을 운영하며 직접 수제맥주를 만들고 있으니 맥주에 빠져도 ‘푹’ 빠졌다. 그뿐인가. 수제맥주 양조과정을 배우기 위해 미국, 일본, 벨기에 등 여러 나라를 다니기도 했다. 인생 2막에 수제맥주 양조업에 뛰어든 홍성태 뱅크크릭 브루어리 대표 이야기다.

사실 홍 대표는 IT업계에서 잔뼈가 굵다. 대학 졸업 후 20년 가까이 IT업계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4060세대에겐 친숙한 PC통신 나우누리를 만들고 국내에 ‘HTTP’서버를 구축한 게 바로 그다. 이렇게 IT업계에서 잘나가던 그도 인생 2막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트렌드 변화가 빠른 IT업계 특성상 은퇴에 대한 고민을 빨리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결국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맥주를 만들며 인생 2막을 살기로 결정, 이젠 국내에서 제일 맛있는 맥주를 만드는 게 목표라는 홍성태 대표를 만났다.

- 만나서 반갑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봄에 판매할 맥주를 만드느라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 보통 농촌에선 12월은 농한기라 여유가 있던데, 맥주 양조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저희는 12월에 더 바빠진다. 저희가 만드는 수제맥주는 다른 맥주와 달리 숙성기간이 길어 봄에 판매할 맥주를 지금 만들어야 한다.”

- 숙성기간이 어떻게 다른가.

“일반 맥주는 양조 후 일주일 정도 발효를 거쳐 저온 숙성 후 판매한다. 보통 양조 후 15일이 지나면 판매가 가능하다. 저희는 발효 후 숙성한 다음 병에서 한 번 더 발효한다. 다시 말해 두 번 발효한다. 따라서 양조 후 판매까지 한 달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 양조 기간이 길어지는데, 굳이 두 번 발효하는 이유가 있나.

“맥주 맛이 다르다. 두 번 발효를 하면 알콜향이 숨겨지면서 깊은 맛이 나는 술이 된다. 저희 맥주를 마시면 사람들이 보통 맛이 깊다거나 무게감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이유다.”

- 이게 바로 벨기에에서 배웠다는 양조 기술인가.

“맞다. 벨기에에선 이 방법으로 수제맥주를 만들고 있고, 그 기술을 배워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벨기에식 수제맥주를 만드는 곳은 뱅크크릭 브루어리밖에 없다.”

- 수제맥주의 양조과정을 배우기 위해 미국, 일본 등 해외 여러 나라의 양조장을 찾아다녔다고.

“맞다. 일단 맥주를 만들려면 양조 과정을 공부해야 한다. 제가 양조를 공부할 때, 미국에선 이미 수제맥주 붐이 불어 6개월 과정의 대학교 수업이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교에서 하는 경영학 과정처럼 말이다. 미국에선 수제맥주 수업을 운영하는 학교가 여럿 있는데, 이미 2년 정도 정원이 다 차 있더라. 그 수업을 듣기 위해 기다리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만들며 익히자고 마음먹었다.”

사진=정혜선

- 맥주 양조과정을 배우고 싶어 해외 여러 곳을 찾아다니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당시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어 가능했다고 본다. 일본에서 2년 정도 근무할 땐 일본에 있는 양조장을 찾아다녔다. 작은 양조장들은 찾아가면 반기지만, 큰 곳은 양조기술을 알려주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구경도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미국의 양조장 투어를 갔다. 양조장 근처에 호텔을 잡아두고 양조장에 전화해 방문해도 되는지 묻고 가서 만나 양조 관련 인터뷰를 하고 만드는 과정을 보고 돌아오는 식이었다. 한 번은 그렇게 돌아와 호텔에서 쉬며 미국 맥주사에 대한 책을 사서 읽었는데, 미국의 유명 양조장들이 대부분 벨기에식 맥주를 만들어 미국화 시키고 있다고 돼 있더라.”

- 그래서 벨기에를 찾아갔나.

“벨기에에 가기 전 좋은 기회가 생겨 슬로베니아에서 한 달 가량 머물며 양조기술을 배웠다. 원래 양조기계를 사러 갔는데, 기계를 파는 분이 형이 양조장을 운영한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형의 양조장에서 일 좀 하자고 말하고 머물게 됐다. 그곳에서 자신들의 맥주에 ‘슬로베니안 에일’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을 보고, ‘코리안 에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한국맥주’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거기서 하게 된 건가.

“그렇다. ‘한국맥주’를 만들려면 원료를 한국산을 써야 하지 않을 까란 생각에서 홉을 국내에 들여와 직접 재배하게 된거다. 그래야 진짜 ‘한국맥주’가 아니겠나.”

- 수제맥주 양조과정을 배우려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다고 하던데.

“많이 찾아온다. 제가 맥주 양조과정을 어렵게 배웠기 때문에, 찾아오는 분들에게는 잘 알려주는 편이다. 실제로 양조장을 차릴 생각으로 온 분들은 기술적으로 방향성을 알려주고 양조방법도 가르쳐 준다. 그런 분 중 실제로 양조장을 차린 분도 여럿 있다.”

- 맥주 관련 강의도 했었다고.

“맥주 관련 강의를 서울과 대구에서 했었는데, 양조장을 차린 뒤로는 시간이 없어 하지 않고 있다. 내년에 코로나19가 좀 안정되면 몰트(맥아) 기술을 가르치는 과정을 열어 진행하려 한다. 이 기술을 잘 키우면 지역 특산물과 연계해 지역 특화 맥주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제천에는 수수가 많이 나는데, 수수로 몰트를 만들어 맥주를 양조하면 수수맥주가 된다. 그런 지역 특화 맥주가 되는 거다.”

- 그럼 수업은 제천시에서 하는 건가.

“아니다. 맥주보다는 이 기술을 알리고 싶어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수업이라 여기 뱅크크릭 브루어리에서 열 예정이다.”

- 내년에는 홉 재배도 늘릴 예정이라고.

“홉을 들여와 직접 재배하는 이유는 재료를 국산화 해 ‘코리안 에일’을 만들기 위함이다. 현재 홉을 재배하기 시작한 지 5년이 됐는데, 재배 규모를 늘리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홉은 일정 높이로 자라면 꽃이 피는데, 그 꽃을 해외에서는 기계로 땄다. 그런데 국내에선 그 기계가 없어 손으로 따다 보니까 한계가 있더라. 그 기계를 들여오려니 기곗값만 5억원이 넘어 시도조차 못했다. 그러다 설계도면을 구해 직접 수확기계를 만들어 올해 테스트를 해보니 잘 되더라. 그래서 내년에는 홉 농장도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 인생 2막에 시작한 일인데,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는 듯하다. 인생 2막의 삶에 있어 ‘맥주’란 어떤 의미인가.

“맥주는 일 때문에 전 세계 다니며 계속 먹는 술이었다. 인생 2막에 대해 고민할 때 술이 좋아 맥주를 만들며 살기로 선택했다. 일단 70세까지는 이 일을 계속 할 예정이다. 지금은 저만의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 있다. 좀 더 하면 맛있고 독특한 맥주를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딸에게 전 세계 100위 안에 드는 맥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조만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 맥주 양조과정을 배워 국내에 와 직접 양조를 시작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이 있다면.

“일단 제조, 판매, 유통을 다 하다 보니까 어려움이 많았다. 일단 저희는 대량으로 양조해 판매하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까 판매 시장을 뚫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맥주업계의 유통판매는 대기업 위주로 돼 있어 1년 가까이 시행착오를 겪으러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 기간을 겪으며 방향 전향을 많이 했다.”

사진=정혜선

- 그럼 한국에 돌아와 기업을 설립하고 맥주 양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언젠가.

“이제 만 5년됐다. 2015년에 이곳에 터를 잡고 공사를 시작했다. 그 다음해 양조장 면허를 취득해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 처음 직접 만든 맥주 맛을 봤을 때 기분이 궁금하다.

“사실 처음 만들었을 땐 술맛이 안나더라. 그래서 엄청나게 고민했다. 맥주 맛이 제대로 안나 고민하다 미국과 벨기에 친구에게 연락해 자문하기도 했다. 그러다 제가 만드는 맥주 스타일에 벨기에 방식을 적용해봤다. 그랬더니 원하는 맥주 맛이 났다. 현재 그 술이 제일 인기가 많은 ‘솔티8’이다. 양조장이 있는 이 마을의 이름이 ‘솔티’다. 솔티는 소나무가 많은 언덕이라는 뜻이다. 마을 이름에 맥주 알코올도수가 8도라 ‘솔티8’이란 이름을 붙였다.”

- 수제맥주를 만들기 전엔 꽤 유명한 프로그래머였다고.

“대학교 졸업 후 소프트웨어 관련 일을 하다 나우누리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주로 시스템프로그래밍을 해 국내에 ‘HTTP’서버도 처음 구축했으며, 지금은 사라진 018의 데이터망도 만들었다. 그러다 IMF가 국내에 발발하면서 일본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곳에서 시스코 네트워크 통신 공인 자격을 땄다. 이후 호주회사의 홍콩법인에서 일하다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으로 옮겨갔다. 한번은 미국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고 대테러컨설팅 관련 일을 했다. 당시 IT기술로 하는 대테러 기술을 모두 배웠다. 이 일을 5년 정도 하다 위험한 일이라 그만두게 됐다.”

- 이야기를 들어보니 IT업계에선 정말 잘 나가는 분이었다. 그렇게 잘 나갈 때 인생 2막을 준비한 이유가 있나.

“제 2의 인생을 살려면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IT관련 일을 하면서 해외 여러나라의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준비를 해온거다. 나의 새로운 인생을 사는 거니까 준비 과정을 거치며 확신이 서면 무조건 뛰어든다. 일단 뛰어들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돌아갈 수 없을 때 돌아본다.”

- IT업계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한 만큼 양조장을 차린 뒤에서 제안이 많이 왔을 듯한데.

“맞다. 양조장을 차리고 2년쯤 됐을 때, 한국에 지사를 차릴 예정이니 대표를 맡아달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다른 친구를 소개해줬다(웃음).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는 갈등하면 안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2년 후면 회사가 많이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럼 벨기에에 수제맥주 합작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그 합작사를 통해 벨기에에 양조장을 만들어 재료를 국내에 저렴한 가격으로 들여오고, 반대로 국내에서 재배한 홉을 벨기에에 수출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들려 한다. 그리고 맥주 양조기술도 배울 수 있으니 좋을 듯하다.”

- 정말 인생 2막을 열심히 사는 듯하다.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나.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가능한 거다. 어차피 할 거면 제대로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혜선 기자 doer01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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