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국정원, 세월호 재판 관련 판사도 사찰 정황

김윤주 2021. 12. 2. 17:2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참위, 정보기관 민간인 사찰 중간보고 발표
세월호 재판 관련 법원 내부 동향 파악 정황
비판 언론에는 압박, 우호 언론은 동향 파악
유가족 사찰 정황도 추가로 드러나
국정원 "자료지원 등 진상규명 협조"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2일 세월호 재판 관련 법원 동향을 파악한 정황이 담겨있는 국정원 문건 내용을 공개했다. 사참위 유튜브 채널 갈무리

지난 1월부터 세월호 참사 관련 국가정보원 문건을 열람해온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2일 국정원이 세월호 유가족과 언론, 법원 등을 사찰한 정황이 담긴 문건 내용을 공개했다. 앞서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은 국정원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을 무혐의 처리했는데, 사참위가 이날 공개한 문건은 세월호 참사 정부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정원이 다양한 영역에 개입하려 했던 정황이 담겨있다. 특히 세월호 재판을 맡은 법원 내부 동향을 국정원이 파악하려 한 정황도 처음 드러났다.

사참위는 2일 제114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조사 조사결과보고서 중간보고’를 발표했다. 사참위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적폐청산 티에프(TF)와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은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지만, 그동안 사참위가 국정원 자료에 대해 열람한 결과 이와 다른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참위 관계자는 “청와대가 국정원, 기무사, 경찰 등에 대해서 수집 지시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 조금 더 진술과 자료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심도 깊은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발표는 사참위가 지난 1월20일부터 열람한 국정원의 세월호 관련 전체 자료 목록(약 68만건) 등을 바탕으로 국정원·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경찰 등 정보기관의 세월호 관련 사찰 정황을 조사한 내용의 중간보고다.

세월호 재판 판사 성향 파악?

사참위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국정원이 세월호 선원 재판 판사의 전력과 정치적 성향 등을 파악한 정황이 드러난다. 국정원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일째인 2014년 4월24일, ‘법조계, 세월호 사건 재판 관할 문제 신중 검토 필요성 제기’라는 제목의 첩보를 작성했다. 이후 세월호 선원들이 살인, 업무상 과실 등의 혐의로 기소(2014년 5월15일)된 뒤인 2014년 5월20일에는 ‘대법원, 세월호 재판 관련 광주지법 언론 보도 내용 사전 검열 예정’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작성됐다. “판사 임용 이전 민노당 당원으로 활동한 전력도 있어 다소간 의구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선배들도 있는데(중략) 소신껏 생활하고 있다고 우려”, “간접적으로 지휘부의 우려를 전달하며 다른 재판은 몰라도 이번 세월호 재판은 무조건 자신이 말한대로 따라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성격상 어디로 튈지 몰라 고민된다며 우려” 등의 판사 세평이 담겼다. 세월호 선원들의 첫 재판(2014년 6월10일)이 열린 뒤인 6월13일에 작성된 ‘대법원, 세월호 재판 관련 광주지법 통제에 진력’ 문건에도 “○○은 행정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후배들의 주장을 무조건 수용하는 경향이 있고, ○○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타입이어서 사고 칠 소지가 높다는 염려” 등의 법원 내부자들이 알만한 세평이 적혀 있었다.

사참위는 “재판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법원의 내부 논의 내용은 재판 판결의 시점까지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특히 국가정보기관이 직무와 무관한 재판 판결 동향을 입수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헌법적 가치에 반한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비판 매체엔 ‘채찍’

국정원이 언론의 내부 동향을 파악하고 세월호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한 매체에는 압박을 가하고, 보수언론의 세월호 보도분량 축소 내용을 파악한 정황도 드러난다. 국정원이 2014년 5월2일 작성한 ‘(○○○)세월호 사고 관련 비판 매체 보도실태 및 특이동향’ 문건에는 세월호 참사 관련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에 대해 “공공기관·대기업 대상 선심성 광고발주·협찬금 축소 유도”라는 표현이 있다. 2015년 3월16일 ‘세월호 사고 관련 좌편향 ○○ 선동·물의야기 방송실태’ 문건에는 한 방송사에 대해 “3기 방통심의위에서 ○○○○ 다이빙벨 혹세무민 방송에 대해 보도부문 최초로 최고 중징계인 과징금을 부과, 정부가 더 이상 ○○○○ 막장선동 보도를 좌시하지 않는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이라고 표현한 대목도 있다. 또 해당 방송사와 관련한 기업에 대해 “산하 기업들의 하청업체 대상 불공정 거래행위 및 비자금 육성·탈세·환경오염 행위 등을 적출, ○○○를 사법처리 족벌·재벌 언론기업이 ‘좌파팔이’를 하는 파렴치한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방안 시행”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 2014년 4월21일 작성된 국정원 문건엔 한 신문 1면 톱기사와 관련해 “○○일보 1면 톱기사 청와대→선원 변경 관련 1면 톱 교체 배경에 대해 ○○○사회부장은 (중략) 정부 입장에서 보면 1면 톱이 바뀐 것이 다행스러울 것이라고 언급”했다는 등 해당 언론사 내부의 반응도 담겼다. 또 국정원이 같은 달 23일 작성한 문건에는 “신문사들은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세월호 침몰사건에 대해 너무 많은 지면과 자극적 보도 등으로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보도분량 축소 및 자극적 보도 자체 등을 요청받고 있다며 수용 방침”이라는 언급도 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2일 공개한 세월호 유족 사찰 정황이 담긴 국정원 문건. 사참위 유튜브 채널 갈무리

또 드러난 유족 사찰 정황

국정원이 세월호 초기부터 ‘정부 책임론으로 비화를 방지한다’는 등의 기조를 정하고, 유족을 사찰한 정황도 추가로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16일 작성된 국정원 문건인 ‘진도여객선 ‘세월호’ 사고 관련 사후 수습방안(○○○)’에는 “향후 수습방안”으로 “민심·여론 관리→‘정부 책임론’으로 비화 방지”, “피해자 가족·주변 관리→선제적 조치 등으로 불만 최소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같은 달 20일 국정원이 작성한 ‘세월호’ 문건에는 유가족의 장례와 관련해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개별적으로 장례를 치르도록 해 집단선동행위를 분산”해야 한다는 제안이 담겼다. 또 일부 유족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력을 파악한 내용도 국정원 문건에 담겨있다.

이날 사참위 발표에 대해 국정원은 “사참위에 자료 지원 등 진상 규명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참위에 총 11회에 걸쳐 1334건의 기록물을 제출했고, 68만여건의 관련 문건 목록을 발굴, 열람 제공했다”며 “다만, 관련 특별법에 따라 사참위에 자료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국정원은 제공된 자료 및 문건 내용의 사실관계 등에 대해 개별적으로 확인·평가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윤주 박수지 장현은 기자 kyj@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