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서울 시민의 위기감

2021. 12. 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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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대학 입학을 위해 서울에 왔으니, 꽤 오래전이다.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구하고 전입신고해 서울 주소가 찍힌 주민등록증을 가지게 됐을 때 기분이 묘했다. 대학생이 되고,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 가족을 떠나 혼자 살게 되고, 서울 시민이 됐던, 인생의 기념비적인 일들이 스무 살 무렵 동시에 일어났다. 뿐만 아니었다. 처음으로 ‘서울’ 남자친구가 생겼고, 하루하루가 온통 낯설고 새롭고 어렵고 달콤했다.

서울로 대학 가서 서울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은 그때 우리들 사이의 막연한 로망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가 하나밖에 없던 작은 지역의 여고생들에게 대도시는 자유와 진보를 상징했다. 고향 친구들과 만나면 서울 생활은 어떠냐, 어디 어디 가봤냐, 서울 남자친구는 어떻게 지내냐는 등의 서울 관련 수다가 이어졌다. 나는 종각에서 명동을 갈 때도 지하철을 타야 했지만 남자친구는 걸어갈 수 있었고, 그 친구 덕분에 대도시여도 동네로 들어가면 내 고향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 사는 공동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제 고향에서 지낸 시간보다 서울에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퇴사와 창업을 하는 동안 서울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주거도 취업도 불안정했던 20대를 지냈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던 30대를 지나 지금까지, 서울 곳곳에 나의 시간과 마음이 뿌려졌다. 따릉이를 타고 동네 도서관에 가면서 서울의 정책이 나의 일상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았고, 투표에도 진심을 기울이게 됐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에는 사회문제 해결에 보탬이 되면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적정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기업가로서 서울시의 혁신 정책이 많은 힘이 됐다. 서울은 시와 자치구, 시민단체나 사회적경제가 기업과 활발하게 협력할 수 있는 도시였고, 자원의 공유와 배분이 효율적인 도시였다.

요즘 서울시가 시끄럽다. 서울 시민으로서 서울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보궐선거로 갑자기 시장이 된 사람이 서울시를 바로 세우겠단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그렇게 잘못돼 있었던 걸까. 시민들이 연달아 세 번이나 시장으로 선출해 10년 동안 서울을 위해 일했던 전임 시장이 잘못한 게 많단다. 특히 “서울시가 시민단체의 ATM기로 전락했다” “시민단체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겹의 보호막을 쳐놓았다”는 발언은 충격이었다. 심각한 무지 또는 옹졸한 정치적 전략이라고밖에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새삼스럽게 ‘시민’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봤다. ‘시민은 민주 사회의 구성원으로 권력 창출의 주체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공공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민단체는 그런 시민들이 국가 권력을 견제하고 공공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단체다. 시가 시민단체를 지원하고 보호하는 것이 잘못일까. 혹시 부족한 면이 있으면 함께 발전적 방향을 고민하는 게 맞지 않나.

11월 30일, 급기야 1090개 시민단체가 모여 서울시장의 퇴행적 시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시민행동을 발족했다. 오세훈 시장은 어렵게 만들어 온 민관협력과 거버넌스를 거스르고 시민에게 묻지도 않고, 시의회도 동의하지 않는 일방적 예산 삭감을 휘두르고 있다. 그동안 서울시는 시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도시였다. 청년의 일자리와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과 함께 발전하기 위해, 소외된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기 위해, 모든 차별을 없애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도시였다.

국어사전에 ‘시장’은 ‘지방자치단체인 시의 최고 책임자’라고 적혀 있다. 시민은 권력 창출의 주체이자 공공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이고, 시장은 책임지는 사람인 것이다. 시민이 원하는 정책을 시민에게 묻고, 서울이 계속 ‘너와 나의 도시’가 되도록 책임지기를 서울시민으로서 오 시장에게 바란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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