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들이 꼽은 '인생작품' 모음집

한소범 2021. 12. 3. 04:3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연말이 되면 각종 '리스트'들이 발표된다.

'올해의 책', '올해의 인물', '올해의 브랜드', '올해의 단어'... 이때의 목록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목록 작성자들의 평판과 권위가 중요하다.

추천인들의 목록이 다양한 만큼 추천된 작품의 개성도 각양각색이다.

이 말은 곧 책에 실린 작품 전체가 독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긴 힘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학 잡지 파리 리뷰가 엮은 단편 선집
'우리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파리 리뷰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문학 잡지"로 불린다. 파리 리뷰 제공

연말이 되면 각종 ‘리스트’들이 발표된다. ‘올해의 책’, ‘올해의 인물’, ‘올해의 브랜드’, ‘올해의 단어’... 이때의 목록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목록 작성자들의 평판과 권위가 중요하다. 아무 곳에 사는 아무개가 자신만의 목록을 작성해서 발표한다 한들 아무 영향력도 갖지 못한다. ‘서울대 도서관 대출순위 목록’이 ‘필독서’ 목록으로 사용되는 것 역시 ‘서울대’라는 명성이 이곳에서 누리는 상징성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단편소설 선집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를 읽기로 결정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파리 리뷰'라는 엮은이의 존재감이다. 파리 리뷰는 ‘작가들의 꿈의 무대’로 통하는 미국의 문예 계간지다. 1953년 당시 전 세계 출판과 문학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창간됐으며 1973년 본사를 미국으로 옮긴 뒤에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문학잡지”로 꼽혀왔다. 창간 이후 70년간 과감한 편집과 비평, 인터뷰를 선보이며 젊은 작가의 등용문이자 작가들이 새로운 스타일을 탐구하는 문학의 ‘실험실’ 역할을 맡아왔다. 헤밍웨이, 무라카미 하루키, 가르비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밀란 쿤데라 등 위대한 작가 중 이곳을 거쳐가지 않은 작가를 꼽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그런 파리 리뷰가 최고의 단편소설만을 모아 만든 선집이다. 2012년 파리 리뷰 편집부는 20명의 리뷰 기고자들에게 ‘파리 리뷰’에 발표된 단편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고르고 그 소설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서술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렇게 작성된 스무 편의 소설 목록 중 열다섯 편만을 추려 책으로 엮었다.

책에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왼쪽)의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 제임스 설터(가운데)의 '방콕', 레이먼드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를 비롯해 작가들이 꼽은 15편의 위대한 단편 문학 작품이 실려 있다.

목록 중에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나 제임스 설터, 레이먼드 카버처럼 국내 독자에게 친숙한 작가들도 있지만 데니스 존슨, 조이 윌리엄스, 제인 볼스, 노먼 러시, 메리베스 휴즈처럼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이름이 더 많다. 소설이 발표된 시기 역시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다양하다.

소설만큼이나 눈여겨볼 것은 해당 작품을 추천한 작가와 그의 추천사다. 예를 들어, 리디아 데이비스가 쓴 소설 ‘플로베르가 보낸 열 가지 이야기’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이 소설을 추천한 영국 작가 앨리 스미스의 서평이다. “순환은 가깝고도 멀다. 차갑고 따듯한, 검고 흰, 길들이고 야생인,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다룬다. 이 소설은 야만성을 투박하게 분석함으로써 연민을 보여준다. 또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멀어지는 일상의 여행부터 무덤으로 가는 최후의 이별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종류의 작별을 살펴본다” 같은 서평은 서평의 대상이 되는 작품만큼이나 독자를 사로잡는다. 독자 입장에서는 유명 작가로부터 ‘단편 문학의 미학’에 대한 짧은 수업을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추천인들의 목록이 다양한 만큼 추천된 작품의 개성도 각양각색이다. 이 말은 곧 책에 실린 작품 전체가 독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긴 힘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떤 작품은 지나치게 스타일리시하고 어떤 작품은 지나치게 투박하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다른 발행. 456쪽. 1만7,000원

그러나 이 같은 ‘울퉁불퉁함’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단편 문학의 미학을 보여준다. 파리 리뷰 편집부는 서문에서 이 책에 대해 “가장 성공한 작품만을 모은 선집이 아니다(This is not a greatest hits collection)”라고 밝힌다. 대신 “젊은 작가에게, 문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무엇보다 단편소설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모든 이에게” 읽히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소설의 형식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고 덧붙인다.

책의 원제는 ‘실물 교육(Object Lessons)’이다. 국내에 번역되며 책의 첫 번째에 수록된 데니스 존슨의 단편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에 나오는 문장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I Knew every raindrop by its name)’가 제목이 되었다. 어쩌면 저마다 다른 빗방울의 이름처럼 저마다 다른 단편 문학의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