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접종 행정명령 내린 미국, 연방법원에 발목 잡히나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1. 12. 3.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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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정부의 백신접종 의무화 행정조치에 공화당 집권 주들이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안은 보수계 판사가 다수인 연방 대법원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11월7일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코로나19 백신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AP Photo

올여름까지 백신접종률을 전체 미국인의 70~85% 선까지 끌어올려 코로나19 집단면역을 이룰 수 있다고 믿던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꼴이 요즘 말이 아니다. 아직도 약 8000만명에 달하는 백신 미접종자 숫자가 보여주듯 국민 10명 가운데 3명이 부작용과 개인 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백신접종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델타 변이 바이러스까지 기승을 부리자 바이든 행정부는 일찌감치 연방 공무원과 연방정부 계약자들은 물론 민간기업의 직원들에게까지 백신접종을 의무화하는 행정조치를 발동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연방법원이 이 같은 의무화 조치에 급제동을 걸면서 ‘집단면역’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말이 요즘 보건 전문가들 입에서 심심찮게 나올 정도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 인구 3억3200만명의 코로나19 백신 완전접종률은 59%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하루 평균 7만 건 정도였던 확진자 수가 가을로 접어들면서 8만5000여 건으로 증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월 행정명령을 통해 약 400만명에 달하는 연방 공무원(계약직 포함)에 대해 11월24일까지 백신접종을 완료하라고 명령했다. 공무원조차 백신접종 비협조율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 최근 AP 통신 보도에 따르면 정보업계 종사자는 약 20%, 사법기관 종사자는 약 40%가 백신 미접종자다. 국토안보부도 무려 24만명의 연방 공무원 가운데 36%가 미접종자로 나타났다. 이들은 11월22일 시한을 넘길 경우 14일간 업무가 정지되고, 그래도 안 맞으면 강제퇴직이 불가피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엔 연방 노동부 산하 직업안전보건청(OSHA)이 100인 이상 민간기업에 대해 내년 1월4일까지 의무적으로 직원들의 백신접종을 완료하도록 긴급명령을 내렸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100인 이상 민간기업은 190만 개, 소속 직원은 약 84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약 2600만명이 백신 미접종자다. 긴급명령에 따르면, 내년 1월4일 이후에도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직원들은 매주 감염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건당 1만40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민간기업 직원들에게 백신접종을 받으라는 행정명령을 발동할 수는 없다. 그래서 노동부를 통해 조치를 취한 것이다.

물론 구글, 타이슨 푸드, 유나이티드 항공, 월트디즈니 등 수많은 대기업은 자발적으로 직원들의 백신접종을 강제해 큰 성과를 올렸다. 대형 육류가공사인 타이슨 푸드는 직원 14만여 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10월 말엔 96%가 접종을 완료했다. 유나이티드 항공과 델타 항공도 전 직원의 99%가 접종을 마쳤다. 하지만 공화당이 집권한 주에서는 백신접종에 반발하는 기류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민간기업에 대한 미국 노동부의 백신의무화 명령에 대해 11월 중순 현재 텍사스주를 비롯한 최소 26개 주가 5곳의 연방 고등법원(미국의 연방 고등법원은 모두 13개)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을 걸었다. 이 중 하나인 제5연방 고등법원(텍사스·루이지애나·미시시피 등 3개 주 관할)은 노동부가 명령한 백신 의무화 조치의 효력을 일시 중단시키기도 했다. 주심인 커트 엥겔하트 판사는 노동부의 긴급명령이 ‘자유로운 상행위를 보장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엥겔하트 판사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지명한 보수주의자다.

소송을 제기한 주들 역시 엥겔하트 판사와 비슷한 논거를 내걸고 있다. 예컨대 민간기업의 직원들이 백신 의무화 조치에 반발하면서 사표라도 내면, 회사 측은 이들을 대체할 인력을 구하기 힘들다는 것(자유로운 상행위가 저해된다는 의미)이다. 특히 백신 거부율이 높은 농촌 민간 병원에서 간호사 등 직원이 백신접종에 반발하고 퇴사하면 인력난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소송을 제기한 주들은 백신접종 의무화에 대해 ‘연방정부의 권한을 과도하게 넘어선 위헌적 조치’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요컨대 미국 헌법상 50개 각 주 주민의 보건행정은 주정부 소관인데 연방정부가 이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불법적인 백신 의무화 명령’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바이든 정부를 맹비난했다. “헌법은 분명 주민의 공중보건과 안전문제에 관해 주정부가 권한을 갖는다고 명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노동부 긴급명령으로 이 같은 원칙을 우회하려 한다. 백신접종 의무화 조치는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간 철수에 따른 실책과 델타 변이 바이러스 급증에 경악해 취한 정치적 결정이다.”

의무화 조치, 효과 거두었다

최근 백신접종 의무화 조치와 관련해 특히 주목을 받은 곳은 뉴욕시. 뉴욕시 공무원들은 연방정부 공무원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방 공무원 백신접종 의무화 조치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 때문에 뉴욕 시정부도 최근까지 보건이나 교육 부문 이외의 소속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백신을 접종받지 않아도 묵인했다. 하지만 델타 변이 감염자 급증으로 위기감이 팽배해진 지난 10월20일, 빌 더블라지오 시장이 미접종자들에 대해 ‘10월29일까지 최소 1회 백신접종을 마치라’며 ‘미접종 시 무급휴가 조치를 내리겠다’라고 선언했다. 뉴욕 소방국 및 경찰 직원을 대표하는 노조가 해당 조치에 반발하면서 법원에 ‘더블라지오 시장의 조치를 중단시켜달라’고 요청했지만 기각됐다. 11월 중순 현재 뉴욕 경찰 직원들은 86%, 소방국 직원들도 82%까지 최소 1회 백신접종을 마쳤다.

보건 전문가들도 대부분 연방정부 차원은 물론 친민주당 주정부 혹은 시정부 당국의 백신 의무화 조치가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는 데 동의한다. 실제 뉴욕시와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미접종자의 불이익을 경고하는 접종 의무화 조치가 시행된 이후 대다수 병원 종사자들의 백신접종률이 90% 이상까지 치솟았다.

일반 시민들의 여론은 백신접종 의무화 조치에 대체로 찬성이다. 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60%가 연방 공무원의 백신접종 의무화에 찬성했다. 민간기업 직원의 백신접종 의무화도 58% 지지를 받았다. 특히 공립학교 학생들에 대한 백신접종 의무화 조치에 대해선 찬성이 압도적이다. 최근 정치 전문 온라인 매체 〈폴리티코〉가 하버드 대학과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친민주당 유권자들은 70% 이상, 친공화당 유권자들도 59%가 공립학교에 다니는 12세 이상 학생들에 대한 백신접종 의무화를 지지한다.

하지만 각 주들이 연방정부의 백신접종 의무화 방침에 소송을 제기할 상황이다. 데이비드 블라덱 조지타운 대학 법대 교수는 CNBC 방송에서 “결국 이 사안은 보수계 판사가 다수인 연방 대법원에서 승부가 가려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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