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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만 그릴 줄 알았던 아이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김연정 입력 2021. 12. 0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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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이트] 아들 김채성 화가와 엄마 이은실 생활예술가

시흥시민 50명이 참여하는 비대면 공동집필 프로젝트 ‘리-라이트’는 비대면문화연구소 ‘시흥 Arts-LAB’을 통해 발굴한 신규 문화예술프로그램입니다. 청소년, 청년, 지역예술가, 이주노동자, 지역상인 등 각양각층의 시민들이 함께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난파된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를 에세이, 사진, 일러스트 등과 접목해 하나의 공동집필서로 완성했습니다. 이 기사는 리-라이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한 인터뷰입니다. <기자말>

[김연정 기자]

 예술 덕분에 더 잘 통하는 이은실씨와 김채성 모자
ⓒ 이은실
김채성군과 이은실씨는 다정한 모자 사이다. 두 사람은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라는 점에서도 잘 맞지만, 예술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더 잘 통한다. 채성군은 아직 어린 나이지만, 이미 여러 차례 전시에 참여한 화가다. 발달장애를 갖고 있지만,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보다 가까이 만나게 됐고, 세상과 소통하는 문도 열렸다.

"발달장애 아이의 특징이 한 가지에 빠지면, 거기에만 몰두한다는 점이에요. 채성이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특히 물고기를 좋아했죠. 그래서 뭘 그리든 그 그림 안에는 꼭 물고기가 있었어요. 그런 채성이를 위해 아쿠아리움 연 회원권을 끊어서 데려가기도 했고, 동물원이나 소래포구의 수산물시장도 많이 갔어요. 조그마한 아이가 보는 물고기마다 이름을 줄줄 읊으니까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이 깜짝 놀랄 정도였죠."

그러나 채성군의 세계는 어항이나 수족관 안에 갇히지 않았다. 그림을 통해 조금씩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어머니의 믿음과 기다림이 크게 작용했다.

"계속 물고기만 그릴 줄 알았거든요. 같은 것을 그리고 반복하는 것이 문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그게 오히려 단단한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결국은 사람도 그리고, 다른 사물도 그려내더라고요. 단계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장해낸 셈이죠. 이 모든 게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라, 과정과 과정이 쭉 연결돼서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해요."

채성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장애인들을 위한 문화, 예술, 체육사업을 진행하는 사단법인 꿈틔움 주최 공모전에서 '인어를 사랑한 가비'라는 작품으로 일러스트 부문 열정상을 수상했다. 그 이후로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디스에이블드와 아트림의 작가로도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인어를 사랑한 가비_김채성 작품
ⓒ 김채성
   
뛰어난 그림 실력을 인정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공감대를 가진 작가들과 모여 활동하게 된 것이 채성군과 어머니 모두에게 큰 힘이 됐다.

"아이들도 그렇고, 부모님도 공감대가 같으니까 활동할 때 많은 도움이 되죠. 중도에 지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거나 힘든 순간이 닥칠 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끈이 생긴 셈이니까요."

어머니는 채성군이 같은 입장에 있는 작가들과 원활히 교류하고,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삶의 기반을 보다 단단하게 다져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림이라는 게 화가의 언어이기도 하잖아요. 사람들은 말보다는 화가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감동을 받는 것 같아요. 그림이라는 매체가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드러내기에 좋은 도구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지속적으로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림이 도구적인 바탕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누군가의 호의로 반짝하고 마는 게 아니라요. 발달장애인들이야말로 지속적인 교육과 사회활동이 필요한데 학교를 졸업하면, 사회로부터 단절되기 쉬워요. 그런데 채성이는 특별한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기에 하늘에 감사할 일이죠."

코로나가 확산되기 바로 직전에는 LA에 전시가 있어 미국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덕분에 채성군은 또래 작가들과 그랜드캐니언, 할리우드,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누비고, 현지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채성군이 꿈꾸는 세계도 더 넓게 확장됐다.

"앞으로는 하와이와 싱가포르에서도 전시해보고 싶어요. 가보고 싶었던 곳이니까요. 미국에서 전시를 하면서 구체적인 목표를 갖게 됐어요."

채성군은 화가로 활동하지만, 어엿한 직업도 있다. 서울빛된소리 문화예술공간에 소속돼 자신이 그린 작품을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도슨트 일을 한다. 어떻게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느냐고 물었더니,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멋진 멘트가 술술 나왔다.
 
 <자전거 풍경>
ⓒ 김채성
 
"이 그림은요. 보시다시피 제가 봄에 벚나무 길을 자전거 타고 가는 장면을 표현한 거예요. 어때요? 근사하죠?"

채성군은 이 외에도 초등학교 돌봄 교실에서 미술 교사로 활동하는 등 사람들과 그림을 통해 부지런히 소통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과 많이 만나지 못한 것에 연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이런 채성군의 활동이 같은 입장에 있는 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바란단다.

"사람들을 만나 실력을 인정받고, 재능을 살려 활약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거잖아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후배들에게 채성이가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도 있는 거고요.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에게도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전해드리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길 바라고요."
 
 채성군의 작품 <행복>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 이은실
 
어머니에게 채성군은 재능 넘치는 화가이자, 집안일을 잘 돕는 효자 아들이다. 채성군에게 어머니는 전시회를 같이 보러 다니며 교감하는 친구 같은 엄마이자, 든든한 지원군이다.

"엄마는요. 든든하시죠. 불행하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조언이나 응원을 해주시거든요. 저는 엄마가 있어서요. 이렇게 자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장애가 있지만,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한 아들이 대견하다고 느낀다는 이은실씨. 그러나 아들이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끝까지 응원과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채성이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나이죠. 그렇지만 앞으로 채성이는 더 성장할 테고, 저는 더 나이가 들겠죠? 그러면 제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점점 줄어들게 될 거에요. 그러면 반대로 채성이가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겠죠. 마음도 더 단단해져야 하고, 실력도 더 쌓아야 할 테고요.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처럼 저도 채성이랑 조금씩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때가 올 거예요. 한 번에 다 놓아버릴 수는 없으니까 차츰차츰 거리두기를 하려고 해요. 제가 해줄 게 없는 그날이 올 때까지요."

채성군이 그토록 자신이 좋아하는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유영하며, 꿈의 항해를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채성군의 예술세계에 무한한 응원을 보내며,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 또한 현실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2021년 10월 19일에 진행되었으며, 2021년 12월 1일자로 시흥시에서 발간한 <리-라이트> 책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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