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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잃고 '외양간'만 고치는 신변보호 대책[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입력 2021. 12. 03. 10:03 수정 2021. 12. 0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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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스토킹이나 성폭력, 협박 등 피해자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건수가 최근 5년 사이 4배 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2만명에 이르는 피해자들이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지만 최근 서울 중구 오피스텔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과 같은 참극을 막지 못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늘어만 가는 신변보호 요청을 뒷받침할 장비·인력·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내려진 신변보호 조치건수는 1만9206건에 이른다. 이 같은 속도라면 올 한 해 전체 신변보호 건수는 2만3000건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증가세도 뚜렷하다. 2016년 4912건이던 신변보호 건수는 2017년 6889건, 2018년 9442건, 2019년 1만3686건, 2020년 1만4773건 등 연평균 7~44%씩 증가했다.

서울경찰청. 김영민 기자

문제는 추가적인 범죄 피해를 막기 위한 경찰의 신변보호 조치가 실효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변보호와 연관된 떠들썩한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찰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추가적인 대책을 내놓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7월 제주에서 16세 중학생이 어머니의 전 연인에게 살해된 사건도 신변보호와 관련된 범죄였다. 당시 신변에 위협을 느낀 중학생의 어머니가 경찰에 요청해 신변보호 조치가 내려졌음에도 스마트워치는 지급되지 않았다. ‘대응 장비 부족’ 문제가 대대적으로 지적되자 경찰은 2300대에 불과하던 스마트워치 보급대수를 늘려 지난 9월에만 1400대를 추가로 지급했다.

이번 오피스텔 스토킹 살인 사건은 스마트워치가 제대로 지급됐음에도 범행을 막지 못했다. 피해여성은 두 차례에 걸쳐 스마트워치의 긴급호출을 눌렀지만 경찰은 기기의 위치값으로 잡힌 명동으로 잘못 출동했다. 기지국 방식으로 잡힌 위치값에서 오차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경찰이 사건 현장에 도착하는 데 12분이 소요됐고, 그러는 사이 피해여성은 피살됐다. 경찰도 기술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비판을 수용해 개선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신변보호 조치가 내려진 경우 특히 가해자의 위치파악이 중요하다”며 “이를 파악할 수 있는 기기 장치 도입을 현실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래픽 | 이아름 기자

신변보호 조치에 실효적으로 대응할 전담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간 2만건에 이르는 신변보호 조치건수는 전국 257개 경찰서를 기준으로 경찰서 한 곳당 80명의 신변을 보호해야 하는 숫자다.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의 경우 서울 광진경찰서, 수원 남부경찰서 등 17개 경찰서에서 올해 상반기에만 이미 100건이 넘는 신변보호 조치가 내려졌다. 하지만 신변보호 전담 경찰관은 경찰서마다 1명씩 지정돼 있을 뿐이다. 일선의 한 경찰관은 “법무부 보호관찰소와 달리 신변보호 대상자들의 상황을 일일이 챙기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추가적인 범행 예방에 중점을 둔 제도적 보완책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법원은 스토킹 행위자에게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통신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를 내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번 오피스텔 피살 건의 경우 피해자의 전 남자친구 김병찬은 자신에게 내려진 잠정조치를 무시한 채 피해여성에게 전화하고, 직접 자택을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원의 잠정조치까지 나왔다면 가해자가 스토커라는 1차적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보고, 경찰은 곧바로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했다”면서 “가해자가 경찰의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할 경우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유치장 등에 유치할 수 있는 ‘잠정조치 4호’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yu@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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