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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내 집을 여행하는 즐거움

한겨레 입력 2021. 12. 03. 10:06 수정 2021. 12. 0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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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전명희의 질문하는 집]질문하는 집
순간마다 변화하고 움직이는 집
빛도 분위기도 냄새도 언제나 달라
감각을 모아 내 집을 탐색해보자
큐블록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베란다를 지나 방 안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걸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전명희 제공

두달여 전에 에스엔에스(SNS) 계정을 하나 추가했다. 업무상 관리하는 인스타그램도 버거워하는 내가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계정을 하나 더 만들다니, 그런 스스로가 아직도 낯설다. 심지어 나만 보는 계정이라 누군가 ‘좋아요’를 누를 일이 없음에도 수시로 들어가서 얼마 되지도 않는 게시물을 보며 뿌듯해하는 모습이라니. 정확히는 내가 자주 머무르는 공간에 대한 기록용 에스엔에스인데 다시 느낄 수 없는 순간들을 포착한 영상들로 피드가 채워지고 있다. 귀차니즘의 대가인 내가 계정을 추가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애써 촬영한 영상들이 사진첩에 방치되어 있다가 결국 정크 파일로 분류되어 휴지통에서 생을 마감하는 신세가 되는 게 싫었고, 영상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내 마음 한 조각도 떨어져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집의 변화를 발견하기

한마디로 공간 관찰 일기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셈. 파브르 <곤충기>처럼 문학적 감성이 묻어나는 섬세한 관찰 일기는 아니지만, 15~20초 분량의 영상을 찍으며 ‘연구자는 계절, 날짜, 시간, 심지어 순간의 노예’라는 파브르의 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변하는 건 사람일 뿐 집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온기를 채워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온몸의 감각을 곧추세우고 보니 창밖 풍경도, 소리도, 방 안의 명암도, 냄새도, 분위기도 계절과 날짜, 시간에 따라 모두 달랐다. 그걸 깨닫게 되자 어느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일었다. 파브르가 스스로 순간의 노예를 자처하게 된 것도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별집 사무실 계단 참.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알아 가기 위해 매 순간을 감각하려 애쓰는 일이 생각보다 즐거운 활동이다. 전명희 제공

뜬금없이 파브르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고,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알아가기 위해 매 순간을 감각하려 애쓰는 일이 생각보다 즐거운 활동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 펜을 들었다. 집은, 내가 쓸모 있는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애면글면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안식처다. 그런 집이 너무 소중해서였을까. 아끼는 마음에 뜯지도 않고 몇년째 방 한구석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심슨 하우스 레고처럼, 그동안은 당장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세심한 관심을 쏟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간 못다 한 발견의 여정을 이사한 지 반년쯤 된 지금의 집에서 실컷 즐기고 있는 중이다. 비록 지어진 지 30년이 된 오래된 빌라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 집의 숨은 매력을 발견할 때마다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안도감에 덩달아 내 자존감도 높아지는 느낌이다. 예전처럼 해외여행은 못 가지만 적어도 마음을 새롭게 하고 싶다면 흩어졌던 감각들을 한데 모아 집을 탐색해보자.

업무 특성상 일하는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집에서 업무를 보다가 고객과의 약속 장소로 바로바로 이동하는 편이고, 시간이 애매할 때면 가끔 카페를 찾는다. 그러다 보니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보다 집을 온전히 느낄 시간이 많다. 지금 집에서는 예전보다 자주 창밖을 응시한다. 그 덕분에 최근 여름내 나와 눈이 마주쳤던 나무가 감나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낮 시간에 불을 켜는 것보다 창을 투과한 자연광에 의지해 생활하는 걸 더 선호하는데, 빛으로 가득 찬 방보다는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그림을 가진 방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바람이 만들어내는 박자에 맞춰 반투명 커튼 너머로 그림자가 너울너울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렇게 매혹적일 수가 없다.

창밖 풍경도, 소리도, 방 안의 명암도, 냄새도, 분위기도 계절과 날짜, 시간에 따라 모두 다르다. 전명희 제공

발견의 여정은 계속된다

말귀와 잠귀 모두 어두운 나는 소리에 그다지 민감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한동안 음악을 감각하는 것처럼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온종일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여름엔 주말만 되면 뒷집 마당에 설치된 풀장에서 첨벙거리며 노는 요란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래, 애들은 저렇게 놀아야지” 하며 흐뭇해했고, 아침 7시가 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이웃집 할아버지의 슥-슥 하는 비질 소리를 들으며 적요한 아침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한번은 분명히 비가 온다는 예보가 없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고 뒤를 돌아보니(현재 책상이 창문을 등진 채로 배치되어 있다) 낙엽이 지는 소리였다. 가을바람에 나뭇가지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마른 잎들이 팔랑거리며 허공을 떠돌다 바닥에 내려앉는 소리가 비 오는 소리와 같게 들렸던 거다. 뜻밖의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요즘은 시각과 청각은 물론 후각, 미각, 촉각까지 모든 감각을 동원해 집의 새로운 면면을 발견하려 애쓰고 있다. 비염 탓에 다섯개의 감각기관 중 후각이 가장 뒤떨어지지만 어느덧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나던 낯선 향이 사라지고 나의 향과 내가 쓰는 물건들의 향으로 물들어가는 것 같아 집에 들어서면 일단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시는 게 습관이 됐다. 그리고 예전에는 혼자 먹는 밥이 그렇게 맛이 없었는데 이제는 술맛을 배가시킬 조도까지 발견해 혼술을 즐긴다. 매일같이 날아오는,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엄마의 문자가 무색할 정도로 나는 이곳에서 너무 잘 지내고 있다.

아마도 이 집을 떠나기 전까지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발견의 여정은 계속되겠지. 겨울과 봄을 맞은 집은 나에게 또 어떤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줄지 자못 궁금해진다. 나처럼 자신만의 집 안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분들에게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지은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 익숙한 집을 새롭고 낯설게 보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단서들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글·사진 전명희(별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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