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조스의 '제국'은 과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나

이혜인 기자 2021. 12. 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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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제프 베이조스는 1994년 월스트리트의 금융사 수석 부사장 자리를 그만두고 온라인 서점 사업에 착수해 이듬해 아마존닷컴을 창업했다. AP 연합뉴스


아마존 언바운드
브래드 스톤 지음·전리오 옮김 | 퍼블리온 | 832쪽 | 3만3000원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 창업자들의 이름을 이야기할 때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다. 그는 1994년 월스트리트의 금융사 수석 부사장 자리를 때려치우고 당시로서는 생소하던 온라인 서점 사업에 착수해 이듬해 아마존닷컴을 창업했다. 많은 창업주처럼 베이조스도 집 지하실에 작은 사무실을 차렸다. 사무실에 놓인 두 개의 책상은 근처 문구점에서 구입한 60달러어치의 나무 문짝으로 직접 만들었다. 작은 부침은 있었지만 아마존은 약 25년 동안 빠른 성장을 거듭했다. 현재는 시가총액 약 1조7500억달러(약 2056조)에 세계 기업 순위 1~5위를 오가는 ‘제국’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20년 넘게 전문기자로 활동해왔던 브래드 스톤은 2013년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라는 책에서 베이조스라는 인물과 아마존의 기업 문화를 자세히 다뤘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다시 한번 아마존을 들여다볼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2014년 아마존은 가상 비서인 알렉사가 탑재된 음성인식 스피커 에코를 세상에 내놓았고, 5년 동안 1억개를 팔아치웠다. 아마존 프라임과 같은 배송 서비스의 폭발적 성장으로 시가총액은 6년도 안 되는 시간에 여덟 배 넘게 성장했다. 스톤은 “한 사람과 그의 거대한 제국이 완전히 언바운드(거의 아무런 억압이나 구속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가 될 뻔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록하고 싶었다. 그는 아마존 전·현직 고위직 임원부터 말단 직원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취재했다. 아마존이 아마존 웹서비스(AWS), 아마존 프라임, 아마존 고 등의 서비스를 론칭하고 이를 성공시키기까지 아마존 내부에서 있었던 혁신과 갈등을 생생하게 기록해 <아마존 언바운드>에 담았다. 베이조스의 급격한 재산 증가 과정, 아내와의 이혼 등 내밀한 스캔들은 물론 그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언론사 워싱턴포스트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기싸움하던 과정까지도 자세히 담았다. 베이조스와 아마존의 명암을 보여주는 전기이자 탐사보도이다.


지하 차고서 시작한 온라인 서점 아마존
베이조스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거대하게 성장했지만
너무 큰 영향력이 오히려 ‘문제’

베이조스는 지독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했다. 그는 뻔한 것을 무척이나 싫어해 “항상 첫날(Day 1)처럼 일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베이조스는 화려한 사진과 도표를 곁들인 자료를 띄워놓고 보고하는 스티브 잡스 식의 브리핑을 무척 싫어했다. 대신 6쪽 분량의 문서에 주요 내용을 쓴 다음에 말하듯이 내러티브 방식으로 발표를 했고, 직원들에게도 그 방식으로 보고와 회의를 하라고 지시했다. 베이조스는 종종 “만약 합의와 의견 충돌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매번 의견 충돌을 택하겠다. 그것이 언제나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라고 직원들에게 말했다. 그는 2014년 시장에 내놨다가 처참하게 망한 ‘아마존 파이어폰’ 파트에서 일한 관리자들에게도 불이익을 주지 않음으로써, 리스크를 감수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 사회에서 베이조스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정점을 찍은 시기는 아마 2015년 그가 위기에 처한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했을 때일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변화하는 온라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데다가 자사 교육 부문 사업에 가해진 규제로 인해서 사멸 직전이었다.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의 오사마 빈 라덴 관련 발언이 ‘가짜뉴스’라면서 지적한 기사로 인해 트럼프로부터도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었다. 베이조스는 위기에 처한 언론사를 아마존 회사가 아닌 개인 자금을 이용해 인수한다. 트럼프와의 기싸움을 위해 언론사를 인수한 것처럼 보는 이도 있었지만, 베이조스는 “가장 중요한 수도에서 발행되는 가장 중요한 신문”을 “구해주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강력하면서도 독립적인 언론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주변인들에게 했다고 한다.

아마존이 지난 20여년간 성장하는 데 베이조스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이 한 사람의 힘만으로 움직이기에는 너무 크게 성장하면서 베이조스의 막대한 영향력은 아마존 내부에서 점차 문제를 낳기 시작했다. 아마존 스튜디오의 대표인 로이 프라이스는 2015년 성추문으로 문제가 됐지만, 아마존은 프라이스를 직위 해제하지 않고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말고 더 나은 관리자가 되는 방법을 교육받으라고 권하는 데 그쳤다. 결국 2017년 하비 와인스타인 등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들에 대한 미투 운동이 터지면서 프라이스도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베이조스는 아마존 스튜디오에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프라이스를 해고하고 아마존 스튜디오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 주저했다.

베이조스의 일터에 대한 가치관은 다소 독특했는데, 그는 일터가 너무 안락해지면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만약 우리 회사의 이름이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 100곳’에 오른다면, 당신이 이곳을 망친 겁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마르크 오네토라는 임원은 아마존의 사업 부문에서 공감능력과 팀워크를 더 길러야 하며, ‘사람을 존중하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자고 보고했다. 그러자 베이조스는 그에 대해 맹비난을 퍼부었다. 베이조스는 “회사에 가장 커다란 위협 중 하나는 부담스러운 조건을 요구하거나 파업을 벌이면서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에 지장을 준 노조원들처럼, 조직 내에서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며 늘 불만을 품고 있는 시간제 인력들”이라는 혐오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아마존은 물류창고에 근무한 지 3년이 지나면 임금 인상을 중단시키는 등 보상 체계를 최소화하는 근무 체계 개편을 주기적으로 실시했고 이는 직원들이 아마존을 등지게 만들었다.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메이크아마존페이’(Make Amazon Pay) 연합은 지난 11월26일(현지시간)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아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25개국에서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아마존이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노조활동을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또 아마존이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해 자연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환경 문제에 더 신경 쓰라고 요구했다. AFP 연합뉴스


WP 인수한 ‘독립언론 수호자’ 이면엔
노조를 혐오하고 방역에 안일했던 ‘악덕 업주’ 면모
CEO 물러났지만 여전히 남은 ‘그늘’

아마존의 핵심 자리에는 베이조스처럼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베이조스의 오른팔 데이비드 클라크가 대표적이다. 클라크는 노조에 가입한 배송 인력들을 활용하지 않기 위해 비노조 운전기사들을 고용한 별도의 배송 서비스 파트너 업체들과 계약을 맺곤 했다. 이 같은 비노조 경영은 후폭풍을 맞았다. 2019년 아마존은 뉴욕에 제2본사를 짓는 계획을 추진했지만 주지사와 지역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좌초된다. 당시 시의회에서 열렸던 청문회에서 코리 존슨 시의회 의장이 “뉴욕시에서 근무하는 아마존의 노동자들이 조직화를 원한다면, 아마존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것입니까”라고 물었으나, 아마존의 임원은 “아니오,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책은 후반부에서 2020년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터져나온 아마존의 문제들을 다룬다. 아마존은 코로나 유행 초기 직원들에게 수백만 장의 마스크를 배포하며 최선의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으나, 안일한 방역으로 인해 물류센터에서 집단감염이 속출했다.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남쪽에 있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아마존이 물류 반입구역에 찢어지기 쉬운 비닐로 만든 샤워커튼을 걸고 임시 칸막이로 사용했다고 폭로했다. 콜로라도주의 물류창고에서는 소독약이나 손 소독제 같은 기본적인 위생용품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마존은 이 같은 문제를 겪는 와중인 그해 5월 ‘노조 조직화 위협 요인’을 파악하기 위한 직원을 별도 채용하려다가 들통나 큰 비판을 받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마존이 이룬 수많은 혁신 사례를 소개하고 찬사를 표하면서도 “아마존이 있는 세상이 과연 더 나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2021년 7월 베이조스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아마존에는 여전히 그가 남긴 명과 암이 있다. 저자는 “아마존은 우리의 삶이나 지역사회와는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고객을 집에서 편하게 주문하는 편리함에 가두고 있으며, 매우 영민한 지역의 일부 업체를 제외한 소매상인에게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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