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로 꿈이 덮쳐 올 때, 내가 나인 걸 어떻게 믿지?..구병모 신작 '상아의 문으로'

김지혜 기자 2021. 12. 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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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구병모 작가는 새 장편소설 <상아의 문으로>에서 꿈과 현실이 뒤섞여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상식과 논리, 심지어 ‘나’ 자신의 존재까지도 믿을 수 없는 ‘의심의 극한’을 그려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상아의 문으로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23쪽 | 1만4000원

거울 속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다. 얼굴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자리에 물을 끼얹는다. 겨우 찾아오는 차가운 감각만이 내가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출근하기 위해 열차를 타러 간다. 300단이 넘는 층계를 오르내리고 모퉁이를 수십번 꺾어도 환승 구역에 도달하지 못한다. 다음 순간 상호도 업종도 모를 어딘가로 출근해 일을 하고 있다. 눈앞의 모든 일에서 연속성이 끊겨있다. 매순간 치열하게 감각하고 생각하지만 금세 잊어버린다. 세상의 모양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당연한 의심이 떠오른다. 여기서 ‘나’는 존재하긴 하나? 어렵게 띄운 물음표 위로 암묵적 명령이 덮쳐온다. “일상을 지속하라.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서 눈곱을 떼고 이를 닦으라.”

구병모 작가의 새 장편소설 <상아의 문으로>는 현실에 시시각각 꿈이 출몰하는, ‘꿈 증상’이란 현상이 창궐하는 세계를 그린다. 현실과 꿈을 구분할 수 없는 증상자들은 논리와 상식을 잃은 채로 ‘일상을 지속’하려 애쓴다. 주인공 진여는 제 몸의 존재 여부와 직업조차 모를 정도로 심각한 증상을 호소하지만 아주 특별한 케이스는 아니다. 증상은 이미 만연하다. 진여가 만난 한 의사는 출근길에 증상이 나타났다. 병원으로 출근했는데 도착한 곳은 학교였다. 교복을 잘못 입어 중요한 시험을 놓치게 됐다. 실컷 울부짖고 나니 퇴근길 차 안에서 핸들을 쥔 채로 깨어났다. 기록에 따르면 정상 출근해 종일 진료를 봤다는데, 그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의학적인 원인은 규명됐다. 소설 속은 “모든 구성원이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세계다. 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노동은 상시화됐고 소비는 광포해졌다. 노동과 오락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거나 먹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비타민” 알약을 복용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박탈된 꿈의 물줄기가 자연히 현실로 흘러들었다. 그것이 ‘꿈 증상’이다. 전문가들은 “고른 영양과 숙면을 취하면” 자연히 없어질 현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회는 다른 선택을 했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들이 극도의 수면 결핍 상태를 유지하듯, 꿈 증상을 인류의 진화를 위한 과도기로 여기고 적응을 시도하기로 했다. 진여처럼 ‘나’의 존재마저 의심하는 이들에겐 무책임한 조언만이 주어졌다. “이 도시에 영향을 받은 일시적인 착시이자 인식 오류일 뿐 현실의 물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테고 자신의 몸은 분명 루틴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니, 간혹 돌출이나 이변이 있더라도 크게 겁먹을 것 없다.” 그리하여 진여는 자신이 교사인지 학생인지 모른 채, 있는지 없는지 모를 몸을 이끌고 다닌다.



만성 수면 부족으로 현실에 꿈이 출몰하는 세계
사람들은 어떻게든 일상을 지속하려 애쓰지만

근본 대책 없는 상태에서 소비만 범람한다
지체 없이 노동하길 종용 받는 우리, 잃어버린 건 뭘까

“이렇다 할 방역 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소비만 범람한다. 수면 보조 비타민부터 한방 수면 팩, 가정용 수면 유도장치, 자각몽(꿈 속에서 꿈이란 걸 깨닫는) 실전 세미나까지 다종다양한 상품들이 증상자들을 현혹한다. 소비를 반복하던 진여는 꿈 세미나에서 만난 사람, 무기로부터 ‘꿈 배양’과 ‘꿈 조영술’이란 새로운 기술까지 듣게 된다. 꿈 증상을 낫게 하는 특정한 꿈을 꾸게 해주고, 그 꿈을 촬영까지 해주겠다는 이야기에 무기를 쫓아간다. 진여는 그곳에서 마야라는 새로운 인물을 알게 된다. 불교에서 ‘진여(眞如)’는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또는 진리를 뜻한다. 반면 ‘마야’는 산스크리트어로 환영과 허위에 충만한 물질계를 의미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헤매는 두 인물 중 어느 쪽이 ‘진짜’에 더 가까울까 궁금해지려는데, 무기가 말한다. “의미가 의미 없지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중요한 것이란 애초에 현현하지 않으며 그 이전에 존재하지도 않는다고요.”

중요한 것은 없고 현실과 꿈이 뒤섞인,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세상.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지체 없이 노동하고 소비하기를 종용받는다. 자본주의는 막무가내로 팽창한다. <상아의 문으로>는 이 ‘지체 없음’에 반대한다. 그럼으로써 스스로 ‘이야기’이기를 포기하는 소설이다. 진여는 “스릴이나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포함하여 모두 한데 재미라는 이름으로 엮어서 통칭하는 이야기라는 것에 염오”를 느낀다. 이야기는 “철저하게 그것을 만들 수 있고 누릴 수도 있는 자” “제 몫의 정연한 질서를 갖춘 자” “일상이 파괴되지 않은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런 진여를 위로하듯 기승전결로 묶이지 않는 문장들을 꿈의 조각처럼 아름답게 늘어놓는다. 결코 “콘텐츠”는 될 수 없는, 어긋나고 불화하는 문장들 사이에서 진여와 같은 이들 모두가 마음껏 ‘지체’하고 ‘의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등에 나오는 ‘상아의 문’은 거짓된 꿈들이 흘러드는 문이다. <상아의 문으로>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 논리와 서사마저 무화되는 세계를 그리며 인물과 독자로 하여금 ‘의심의 극한’을 체험케한다. 짜릿한 카타르시스는 없고 간혹 문장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하지만, 퍽 아름다운 체험이다. 고대 그리스 서사시와 신화, 구약 성경과 중국 고대 신화 등에서 채집한 개념들이 “현실의 급소를 가격”하는 꿈의 세계를 고아하게 구성한다. 환상과 냉소를 버무린, 구병모 작가 특유의 개성에 잘 벼린 성찰과 실험이 더해졌다. 우리는 이미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에서 밤낮 없이 노동하고 소비하는 사이, 무심코 잊어버린 어떤 ‘순간’들을 다시 건져올리는 책이다. 내가 나일 수 없는, 낯선 가능성의 공간을 선물한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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