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작침] BTS는 그래미의 벽을 뚫을 수 있을까?

안혜민 기자 2021. 12. 3. 14: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BTS가 2년 연속 그래미 시상식에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 들었나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소식이 전해지면 난리가 났을 텐데 요즘에는 더 놀랄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되더라고요. 백악관 앞에서 딱지를 치고, 유럽에서 달고나가 유행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BTS는 신곡을 발표하면 발표할 때마다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르내리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팬덤을 가지고 있다 보니 그래미 정도로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래미 후보에 BTS가 올랐다는 일이 해외 언론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왜인고 하니 본상으로 뽑히는 주요 부문 후보에서는 제외 됐거든요. 해외 언론에서는 그래미로부터 퇴짜를 맞았다는 표현까지 쓸 정도죠. 아미들은 트위터에서 사기(Scam)와 그래미(Grammy)를 합친 #Scammys라는 해시태그를 달아서 그래미를 비판하고 있기도 해요. 오늘 마부뉴스가 다룰 내용은 우리가 즐기는 음악, 영화에서의 다양성은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정말 BTS는 그래미의 벽을 뚫을 수 있을까요?
 

그래미의 단단한 벽


일단 그래미 시상식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볼게요. 미국에는 대중문화의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이 있습니다. TV쇼의 에미상(Emmy), 음악의 그래미(Grammy), 영화의 오스카(Oscar), 극예술의 토니(Tony). 이렇게 네 분야의 시상식 앞글자를 묶어서 EGOT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래미는 미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대중음악 시상식이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워낙 미국의 시장이 워낙 큰 만큼 사실상 전 세계의 대중음악 역시 미국이 주도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래미의 권위도 그만큼 세계적이라 할 수 있죠.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그래미지만 사실 후보 선정이 너무 폐쇄적이다라는 지적이 계속해서 있었습니다. 지난해 해임된 레코딩 아카데미의 회장이 그래미의 비밀위원회가 특정 아티스트들을 밀어주고, 어떤 앨범이 지명되도록 조작했다고 폭로했을 정도니까요. 참고로 레코딩 아카데미는 그래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곳입니다. 2021년 시상식에서는 역사상 가장 많은 아티스트들이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죠.


도대체 얼마나 닫혀있길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한 번 데이터로 살펴볼게요. 미국에서 발매되는 모든 레코드들을 대상으로 최고의 앨범을 뽑는, 올해의 앨범상 데이터를 가지고 시각화를 해봤습니다. VA(Various Artists)로 표시된 앨범은 OST 앨범이고요. 1959년부터 2021년까지 총 63회의 그래미 올해의 앨범 수상 실적부터 살펴보면 흑인 아티스트 단독으로 수상한 경우는 13회입니다. 46건은 모두 백인 아티스트가 포함되어 있죠. 후보까지 포함하면 총 424명의 아티스트 중에 백인은 336명으로 79.2%를 차지합니다. 흑인은 76명으로 17.9%였어요. 

빌보드와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 수치일까요? 빌보드가 매년 연말에 발표하는 Billboard Year-End 차트 데이터를 정리했습니다. 11월 말에 그 해의 히트곡을 결산하는 차트인데, 1위를 차지했던 싱글과 정규앨범의 아티스트 중에 흑인 아티스트의 비율은 모두 20.9%로 나타났는데 큰 차이는 아니지만 그래미 보다는 더 높은 비율의 흑인 아티스트들이 1위 차트에 이름을 올린 셈입니다.
 
Q. 2021년 그래미가 폭망한 이유는?

지난해 그래미는 역사상 가장 실패한 시상식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혹시 캐나다의 R&B 가수 더 위켄드 알고 있나요? 더 위켄드는 Blinding Lights라는 노래로 말 그대로 전 세계를 휩쓸었거든요. 이 곡은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무려 90주 동안 이름을 올려서 역사상 가장 긴 시간 동안 차트에 머무른 곡 1위 기록을 세웠죠. 빌보드에서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노래 1위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더 위켄드가 그래미 후보로는 단 한 곳에도 노미네이트 되지 않은 겁니다. 본상은 물론 나머지 다른 후보에도 오르질 못했어요. 더 위켄드를 포함해 비욘세, 저스틴 비버, 카니예 웨스트, 드레이크 등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래미를 보이콧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결국 63회 그래미 시상식은 역사상 가장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죠.
 

<미나리>는 외국어 영화?


사실 음악에서만 이러한 벽이 느껴지는 건 아닙니다. 올해 초에 있었던 골든글로브 시상식 역시 비슷한 이슈가 있었거든요. 혹시 영화 <미나리>도 비슷한 상황이었던 거 기억나시나요? <미나리>의 제작사는 브래드 피트가 세운 미국의 영화사 Plan B입니다. 그리고 영화감독도 미국인이고 촬영도 미국에서, 출연 배우도 2명을 제외하면 모두 미국인이었죠.

내용도 이민자에 대한 이야기라 지극히 미국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 영화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외국어영화라는 명찰을 받게 되면서 작품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하게 됐죠.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이유는? 대사의 대부분이 한국어라서! 골든글로브 시상식 규정에는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인 영화만 작품상에 오를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는 겁니다.


규정이 이해되는 것도 아니지만, 최대한 그들의 규정을 이해해준다고 치더라도 사실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규정이 어느 때는 적용되고 또 어느 때는 적용이 되질 않거든요. 위에 두 영화를 보시죠.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은 영어의 비율이 30% 밖에 되질 않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독일어, 불어, 이탈리아어였지만 외국어영화상 후보가 아닌 작품상 후보에 들었습니다.

해외 언론들은 구시대적인 잣대로 기준을 세운 골든글로브에 많은 비판을 가하기도 했어요. 이 상황을 본 한국계 미국인 배우 다니엘 대 킴은 "미국 사람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고 듣는 격이라며 골든글로브를 비판했고 샹치 배우인 시무 리우 역시 "이보다 더 미국적인 게 뭐길래?"라는 트윗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결국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죠.
 
Q. 2022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안 열릴 수도 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사실 존폐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고여있는 협회 회원들은 변화하지 않고, 인종 차별과 성차별 논란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거든요. 당장 내년 1월에 개최할 시상식을 중계할 NBC가 보이콧을 선언했고 톰 크루즈, 스칼렛 요한슨, 마크 러팔로 등은 여태껏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받았던 트로피를 반납하기까지 했어요. 뒤늦게 부랴부랴 여성과 아프리카계 회원들을 신규로 임명했지만 제대로 시상식이 열릴지 모르겠습니다.
 

변하지 않는다면 사라질 수도


지난 시상식에서 크게 데인 그래미는 문제가 되었던 비밀위원회를 없애겠다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비밀위원회 대신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후보를 지명하겠다고 밝힌 건데, 이제 조금 더 투명해지고 공정해지겠다는 선언인 거죠.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새로 받은 신입 회원 2,000명 중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 출신은 4% 밖에 되질 않았거든요.

"오스카는 국제 영화 축제가 아니잖아요. 그건 지역적인 로컬 축제지."

<기생충>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미국 개봉을 앞둔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래미도, 골든글로브도 미국의 시선으로 평가하는 '로컬' 시상식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로컬이라는 이름이 문화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작용된다면 그들이 갖고 있던 권위는 사라질 수 있겠죠.

아카데미는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이제 다양성을 포용하지 않는 작품은 작품상 후보에 올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거든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Oscars So White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바꿔보겠다는 거죠. 물론 기계적 평등이 과도하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역차별 논란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오늘 마부뉴스가 준비한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아카데미의 다양성을 위한 기계적 평등은 옳은 변화일까요? 아니면 역차별을 낳을 수 있는 과도한 제도일까요? 여러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아래 댓글을 통해 알려주세요.(*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마부작침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56136 
 :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김선경, 주영은

안혜민 기자hyeminan@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