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범한 호남사람..'전라디언'이라는 멸시의 굴레를 벗어던져라

유경선 기자 2021. 12. 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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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라디언의 굴레 | 조귀동 지음 | 생각의힘 | 288쪽 | 1만7000원

‘전라디언’이란 말에서는 시선이 읽힌다. ‘코리안’을 굳이 ‘전라디언’이라고 부르는 이 괜한 구분은 ‘전라도에 가려면 여권이 필요하단다’는 멸시에서 비롯한다. 왜 호남은 구별되기 시작했으며, 호남인은 ‘전라디언’이라는 멸칭까지 얻게 됐을까. 호남에서 자란 저자는 책을 통해 굴레가 어떻게 생겨나고 자랐는지를 설명하고, 여기에서 벗어날 해결책을 제시한다.

경제라는 하부구조가 사회와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이 많은 저자는 호남의 굴레를 경제 저발전이라는 열쇳말로 읽어냈다. 저발전의 원인이 호남 내부에 있을 리 없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에서 대구·경북(TK) 출신의 네트워크가 공고해졌다. 정부 주도로 경제가 일어서던 시절, 외국 차관은 영남 기업에 집중됐다. 끈끈한 지연·학연에 호남이 파고들 틈은 없었다. 산업화 시절 급속한 도시화에 따라 서울로 이주한 호남 사람들은 허드렛일을 도맡으며 하층 노동자 집단을 형성했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이 낙인찍기의 대상이 되었다. 이 시선이 축적되며 호남 사람들은 “반도의 흑인 또는 아일랜드인”이 되었다. 호남 차별의 결과가 오히려 호남 차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쓰이는 지경이 됐다.

저자는 호남 지역 저발전을 ‘치킨’을 예로 들어 보여준다. 닭똥 냄새를 풍기는 기피 시설 양계장이 전북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국내 식용 닭의 27.5%가 전북에서, 13.6%가 전남에서 자란다. 하지만 치킨 판매점의 23.8%가 경기도에, 14.6%가 서울에 몰려 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며 시대의 어둠은 호남이란 한 지역에 집중됐다. 국가폭력이 호남을 겨냥하며 이곳은 집단학살의 아픔을 겪었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5·18정신은 정치권에서 서로 점하려 다투는 대상으로 납작해졌다. 호남은 민주화의 성지 정도로만 여겨진다. 호남이 선거철에만 유독 호명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지금 평범한 호남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자기 지역에 코스트코와 스타필드 같은 소비 편의시설이 들어오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호남 문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난 6월 발생한 광주 학동 4구역 재개발지구 건물 붕괴 참사를 꼽는다. 변변한 지역 산업 발전의 기회를 만나지 못한 호남에서는 건설업만이 지방 신도시 건설 사업을 계기로 성장세를 보였다. 저자는 “다른 지역 기업들이 열심히 R&D에 투자하면서 신사업 개척과 기술 개발에 열심일 때, 광주와 전남 기업들은 지방 신도시에서 아파트를 짓는 데 골몰했던 셈”이라고 지적한다. 건물 붕괴 참사는 재개발구역 안에서 벌어졌으며, 철거 용역은 몇 단계의 하청을 거쳤다. 이는 지역 부패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중앙정치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이 문제를 이야기하려 했다. 호남 담론의 가장 큰 문제가 “지역민의 입장과 시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호남은 발전 기회에서 배제돼 왔고, 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거버넌스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그는 호남이 이런 ‘이중의 차별’에서 벗어나려면 지역정당 운영과 비례대표 비율 확대로 거대 양당을 견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호남의 손으로 호남의 문제를 말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자생적 발전 역량도 갖출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대선이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대선 후보 이재명·윤석열·심상정이 이 책을 추천했다고 한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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