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까'페] DB금융투자 노조 이메일과 '시지프스의 돌'

안지혜 기자 2021. 12. 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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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중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시지프스의 돌'입니다. 인간 시지프스가 신의 분노를 산 대가로 밀어 올리면 떨어지고, 밀어 올리면 떨어지는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로 옮기기 위해 평생 씨름하는 내용입니다. 

DB금융그룹의 증권사인 DB금융투자의 직원 이메일함에서도 최근 몇 년 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DB금투 노동조합은 사원의 가입을 독려하고 노조의 교섭상황을 알리기 위해 매일 오후 12시 사내 이메일(인트라넷)을 보내는데, 이 메일은 1시간 후인 오후 1시만 되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노조는 보내고 회사는 일괄 삭제하는 일이 벌써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보통의 경우 노조의 홍보 활동은 노사간 단체협약에 구체적인 방법을 적시합니다. 하지만 노조와의 단체협약 교섭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이메일 홍보활동의 근거가 없다는 게 회사 측 '삭제의 변'입니다. 더불어 회사 이메일은 기본적으로 업무 용도인 만큼 직원 업무에 방해가 될 수 있어 점심시간 직후인 오후 1시에는 삭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메일 삭제 건으로 지난 2018년 노조가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사건에 대해 고용노동청이 '혐의없음'으로 결론 내렸다는 것도 중요한 근거중 하납니다.

하지만 단협은 4년째 표류하고 있습니다. 회사로 부터 정식 대화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노조는 사측의 계속된 교섭 해태에 단협이 결렬됐다고 주장하며 쟁의권까지 확보했습니다. 노무업계는 노동청 판단 이후 3년이나 지난 만큼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노조 발족 초창기 보다 현재의 이메일 삭제량이 더 늘었을 것이고, 여전히 의도를 가진 반복적 삭제라면 명백한 노조 위축활동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갑질119의 김유경 노무사는 "이메일 발송은 단협체결까지 필요한 홍보활동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노조가 생기고 최초의 단협 전까지는 홍보가 제일 중요한 데다 교섭상황도 당연히 알려야 되는데 종이 전단지 보다 온라인으로 활동하는 요즘 현실을 감안했을때 업무용 이메일이란 말은 기초적인 조직화도 방해하는 사측의 핑계일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발 물러나 여전히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노사간 '파트너십'이 강조되는 사회적 정서 면에서는 직원 내부통합이나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 만들기에는 명백한 패착으로 보입니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노조에 동의 여부는 차치하고, 스팸도, 바이러스도, 불온 이메일도 아닌데 각 개인직원의 이메일을 회사가 강제로 삭제한다는 건 결국 사찰 아닌가"라는 볼멘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DB의 로고를 보면 오렌지색과 녹색, 청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거 '동부'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동쪽'과 '젊음'을 의미하는 색상인 청색을 추가해 미래를 향한 의지와 희망을 표현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무려 2021년에, 노조의 기초적인 이메일 홍보활동도 틀어막는 DB가 말하고 싶은 '미래를 향한 의지'는 무엇일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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