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드 부르고 힙합댄스 배우고.. "모두 피겨 위한 일"

조효석 2021. 12. 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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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하오! 베이징 2022] <4> 피겨 국가대표 차준환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국가대표 차준환이 지난달 22일 훈련을 마친 뒤 경기도 구리의 한 카페 앞 정원에서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구리=이한결 기자


남자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차준환(20)의 위치는 같은 세대 여자 피겨 선수들과 사뭇 다르다. 그가 대회에 나가 세우는 기록마다 ‘한국 남자 피겨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김연아라는 전설적인 존재이자 멘토가 있는 여자 피겨와 달리 남자 피겨는 차준환 홀로 미개척지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다. 차준환의 존재감은 그만큼 대단하지만, 어린 나이에 짊어지는 부담도 크다.

차준환은 이번 시즌 일정이 많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1차 선발전에 해당하는 회장배 랭킹대회를 3일부터 치른 뒤 곧바로 크로아티아로 날아가 9일부터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에 참가한다. 다음 달에는 올림픽 2차 선발전인 종합선수권대회를 치르고 이후 올림픽 전에 사대륙 선수권대회까지 마친다. 심지어 올림픽 이후에도 휴식 없이 세계선수권대회 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달 22일 경기도 구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힐링과 킬링 사이

캐나다에서 훈련하던 차준환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세계선수권대회가 취소된 뒤 귀국했다. 이후 한 번도 캐나다에 들어가 보지 못했으니 국내에 머무른 것만 2년째다. 지난해 가을에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심해지면서 훈련이 더 어려워졌다. 국가대표 훈련장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을 포함해 수도권 지역 빙상장이 모두 문을 닫았다.

피겨 선수들은 몸의 감각이 유독 예민하다. 하루 이틀만 훈련을 쉬어도 몸이 달라지는 게 느껴질 정도다. 이 때문에 차준환은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전국을 헤매야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건 경북 포항과 강원도 강릉이다. 강릉은 그나마 평창올림픽 때 가봤지만 포항에는 빙상장이 있는지도 몰랐다. 가본 것도 처음이었다.

때아닌 지방 전지훈련은 휴식이기도 했다. 훈련하느라 여가를 즐길 여유가 좀체 없었기 때문이다. “리프레시(회복)가 됐던 것 같아요. 바다 보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몸 관리 때문에 먹거리도 맛보지 못하고 훈련만 했지만, 그는 나쁘지 않은 기억이라고 복기했다. “나름 ‘힐링’이라고 해야 하나. ‘킬링’과 ‘힐링’ 사이 어디쯤인 것 같아요, 하하.”

오랜만에 국내에 머무르며 그는 피겨 외에도 여러 시도를 했다. 기억에 남는 건 힙합 댄스를 배운 일이다. 그는 “발레 같은 무용을 많이 배우긴 했는데 다른 장르는 안 배워봤다. 힙합 춤을 배우면 피겨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다”고 말했다. 인터뷰하며 벗은 훈련용 겉옷 안에는 힙합 스타일인 헐렁한 오버핏 옷을 입고 있었다. 목에는 힙합 댄서들이 걸칠 법한 금색 사슬 목걸이를 건 채였다.

지난 6월에는 MBC ‘복면가왕’에 출연해 노래 실력을 뽐냈다. 폴 킴의 발라드 ‘모든 날, 모든 순간’을 무대에서 불렀다. 힙합 댄스도, 노래도 모두가 피겨를 위한 일이다. “그게(힙합 댄스) 호흡에 도움이 된대요. 노래 부르는 일도 복식 호흡을 하니까 운동할 때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해맑게 웃는 표정을 보니 정말 피겨 말고는 그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개척자의 짐
차준환이 지난달 열린 2021-2022 ISU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일본 도쿄 4차 대회에서 연기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차준환은 베이징 올림픽 선발전을 준비하는 선수 중 남녀를 통틀어 유일하게 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다. 여자 피겨에선 선구자 격인 김연아가 닦은 길을 수많은 ‘김연아 키즈’들이 걷고 있지만, 저변이 약한 남자 피겨에선 차준환이 자타공인 가장 앞서 있다. 베이징에 함께 갈 가능성이 큰 편인 대표팀 동료 이시형이 그와 속도를 맞추는 정도다.

차준환의 위치를 가장 잘 드러낸 건 지난 3월 스웨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다. 그는 종합순위 10위를 확보해 한국에 할당된 베이징올림픽 출전권 1장을 2장으로 늘렸다. 한국 남자 피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차준환은 당장의 성적보다 안정적인 출전권 확보를 위해 프로그램 구성에 일부러 변화를 줘가며 티켓을 한 장 더 따냈다.

차준환은 “올림픽에 출전해봤기 때문에 그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면서 “한국 남자 선수가 더 출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대표로서 책임을 말하는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무조건 올림픽 티켓을 더 따내는 게 제겐 더 큰 의미가 아니었나 싶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그걸 위해 대표로 대회에 나간 거니까 책임감도 더 많이 느꼈어요.”

한국 남자 피겨의 간판으로서 따라오는 부담을 털어내는 방법은 훈련뿐이다. 차준환은 “부담이 없을 순 없다. 부담을 갖기 이전에 좋은 경기를 펼쳐야 결과가 따라오기 때문에 항상 연습에만 몰두한다”고 했다. 이어 “경기에 나간 선수가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의 연습뿐”이라며 “연습을 더 해야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고 했다.

교감하는 스케이터

피겨 선수들은 다른 종목보다 경기 외적인 일로 주목받을 일이 많다. 차준환 역시 팬층이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팬이 고루 퍼져있다. 패션잡지 화보도 종종 찍는다. 그는 피겨 종목 선수들이 유독 그런 경우가 잦은 이유를 사람들과 ‘교감’에서 찾았다.

차준환은 “피겨에선 경기 중에 관중과 교감을 훨씬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혼자 빙상장에 들어가서 넓은 빙판을 쓰면서 심판과 소통하고 관중과 소통한다. 교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 면들이 경기장 바깥에서도 사람들과 교감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빙상장 바깥에서도 차준환의 머릿속은 피겨뿐이다. 그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언젠가 음악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영화 ‘레 미제라블’을 6번도 넘게 봤다. 시즌 중에도 항상 다양한 음악을 들어보며 프로그램을 구상한다. 휴대전화 사진첩에는 온통 춤추는 모습과 스케이트를 타고 연기하는 사진·영상뿐이다.

차준환이 최근 쇼트프로그램에서 쓴 ‘페이트 오브 더 클락메이커’(Fate of the Clockmaker·시계공의 운명)도 그런 교감 끝에 나온 선택이다. 팬들이 보내준 추천 플레이리스트를 하나씩 들어보고 골랐다. 그는 “추천해주신 걸 들어보고 너무 좋았는데 음악 시간이 좀 짧았다. (안무 담당) 셰린 본 안무가에게 보내서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편곡했다”고 말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일
차준환이 이탈리아 토리노 3차 대회에서 연기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피겨 선수가 자기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임을 감안해도 차준환은 외모가 출중하다. 어릴 적 아역배우로 드라마 ‘로맨스 파파’에 출연한 적도 있다. 초코파이 등 CF 촬영도 여러 번 했다. 아이돌 그룹 멤버라 해도 믿을 만큼 유난히 잘생기고 피부가 하얗다. 이날 야외촬영 중에도 하얀 피부에 빛이 많이 반사돼 사진을 여러 번 다시 찍어야 했다.

재능이 많은 만큼 다른 분야에도 욕심이 날 법하지만 차준환은 “피겨가 너무 좋다”는 말만 반복했다. “스케이트 탈 때의 자유로움이 좋다”고 한 그는 “피겨는 혼자 타는 종목이다. 규칙은 있지만, 저만이 그 공간에서 가질 수 있는 자유에 반한 것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학교의 방학특강으로 시작한 피겨 스케이팅이 여기까지 왔다. 다만 은퇴 뒤에는 새로운 분야를 많이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김연아를 지도한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2018년 평창올림픽 때 차준환이 올림픽 메달에 도전할 현실적인 기회로 베이징올림픽을 꼽았다. 그러나 차준환은 당장 메달 등 성적으로 목표를 정하는 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정말 모른다. 연습 중인 기술이 조화를 잘 이루는, 조화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우선 목표”라며 “준비한 걸 다 했으면 한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다만 평창올림픽 직전 부상으로 고생했던 만큼 이번 올림픽은 빈틈없이 컨디션을 챙기겠다는 각오를 분명히 했다.

당장 올림픽 출전도 목표지만 차준환에게는 앞으로 갈 길을 길게 보는, 더 큰 목표가 따로 있다. ‘피겨로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은퇴하는 마지막 시즌까지 지금처럼 많은 애정을 쏟으며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많은 사람 기억에 남고 싶어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스케이트를 타면 행복한 선수 생활이 아닐까요.”

구리=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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