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도발쯤은 넘어가잔 식..김정은 스탈린 만드는 게 우리인가[뉴스원샷]

유지혜 입력 2021. 12. 4. 09:00 수정 2021. 12. 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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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외교원 전경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국립외교원장의 ‘말의 무게’


“국립외교원장은 정무직 국가공무원으로 하되, 외교 분야에 대한 경륜과 학식이 인정되는 사람 중에서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립외교원법 4조 ‘원장의 임명 등’에 대한 규정이다. 해당 규정에 따라 ‘경륜과 학식’을 인정받아 임명된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차관급)이 미국에서 한 발언이 또 논란이었다. ‘또’를 붙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했지만, 단거리 미사일 정도는 미국이 묵인할 수 있는 관용을 보여야 한다.”(10월 포럼)

“한반도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북한의 SLBM을)너무 문제시하는 것이 평화 만들기란 차원에선….(적절치 않다)”(10월 국정감사)

“사실 우리가 (한ㆍ미 연합) 훈련을 하는데 북한은 훈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8월 라디오 인터뷰)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윌슨센터 주최 포럼 및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이번에 미 워싱턴에서 포럼 및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거의 종합판에 가까웠다.
“만약 내년까지 종전선언이 안 되면, 내년 4월부터 10월까지 굉장히 위험한 시기가 될 수 있다.” “(북한이) 우리와 상응하는 정도 사거리의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때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게 한반도 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지난달 30일)

북한이 대화 교착 상태를 참지 못하고 고강도 도발을 할 수 있으니 종전선언을 빨리해야 하고, 협상을 원활히 해야 하니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도발은 그냥 넘어가자는 식이다. 모두 본말이 전도됐다.

전자는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미리 상을 주자는 논리나 마찬가지이고, 후자는 협상 판이 깨질 수도 있으니 우리에게 직접적 위협이 되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능력을 아예 의제에서 내려놓자는 게 될 수 있다.

더 의아한 발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고르바초프로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가 스탈린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니냐”고 말한 것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유도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 김정은이 독재에 골몰하는 것이란 취지다. 그리고 그 책임을 한ㆍ미에 돌리는 듯한 발언이었다.

북한이 이달 하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조선중앙TV는 이날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5차 정치국회의가 지난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회로 열렸으며 회의에서는 12월 하순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를 소집할 데 대한 결정서를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2014년 발표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에는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행하는 생생한 인권 유린 사례가 족히 수백 가지는 제시된다. 모두 직접 겪거나 목격한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일례로, 탈북했다 임신한 채로 북송된 임부들에 물리적 방법을 동원해 강제낙태시키는 방법만 10가지 가까이 나온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 자리에서 살해한다. 그 방법 역시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맨정신인 사람은 이를 읽는 것만으로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내용이다.

그런데 김정은을 자국민에 이런 짓을 하는 독재자로 만드는 게 우리라는 뜻인가. 이런 견해는 어떤 ‘경륜과 학식’에 근거한 것인지 궁금하다.

이처럼 논란을 일으키는 국립외교원장의 발언이 반복되는 것은 결국 아무도 만류하거나 주의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립외교원법 2조에 따르면 “외교원은 외교부 장관 소속”이다. 따라서 홍 원장의 발언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를 바로잡는 역할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해야 한다.

타지키스탄 공식 방문을 마친 정의용 외교부장관이 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국내외적 우려와 논쟁을 키우는데도 홍 원장이 ‘마이 웨이’ 행보를 계속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외교원 소속 교수가 정부 정책에 대해 건설적 비판을 하는 것까지 하나하나 모니터링하며 문제 삼지 않았었나.

실제 외교부 당국자는 2일 이런 홍 원장의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자 “개인의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이해한다. 특별히 언급 드릴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또 “우리 정부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평화 정착을 위한 실질적 진전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고, 탄도미사일 발사를 비롯한 모든 발사는 안보리 결의 상 금지된다”고 했다.

고위급 인사가 한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박할 수는 없고, 정부 견해는 그와 다르다는 입장을 이런 식으로 돌려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서 법령에서 소개했듯 국립외교원장은 정무직 공무원이다. 지금 홍 원장이 받는 월급이나 활동을 뒷받침하는 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출된다.

국립외교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공식 행사에서 한 발언에 “개인의 의견”이라고 남일 이야기하듯 하는 외교부의 반응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는 또 ‘정의용 장관이 홍 원장을 제지하는 상황이었어도 외교부 반응이 이런 식으로 나왔겠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북한이 2016년 5차 핵실험을 강행한 뒤 시민들이 서울역에서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중앙 포토

다만 홍 원장이 ‘학자적 양심’에 따라 소신을 지키려는 것이라면 존중한다. 하지만 그의 과거 발언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북한의 포격 도발 직후인 2015년 8월 라디오에 출연한 그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냐고 묻자 “우리 군은 북한의 도발이 있으면 단호히 몇 배로, 즉응성을 가지고 보복 공격해야 한다”고 했다.

2016년 4월 북한의 SLBM 도발 뒤에는 “(북한의 SLBM 기술이)이제 걷기에서 뛰기만 하면 되는 수준으로 진전했는데, 이것을 실패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착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2016년에는 학술회의 발표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북한의 5차 핵실험 등에 대응해 “북한의 핵 공격에 대해서만큼은 ‘자동적ㆍ즉응적으로’ 북한에 핵 보복을 할 것임을 확약하는 내용의 한ㆍ미 핵안보조약을 체결”하고 “1992년 철수한 전술핵을 한시적ㆍ조건부로 재배치해야” 한다고 수차 주장했다.

다시 국립외교원법으로 돌아가서 1조를 살펴보자. 국립외교원의 설립 목표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과 전문성을 겸비한 외교 인재의 교육ㆍ양성 및 국가 중장기 외교정책의 연구ㆍ개발”이다.

고려시대의 명외교관 서희의 후예들을 키워내는 곳이다. 이런 중요한 기관의 수장인 국립외교원장이 그에 걸맞은 경륜과 학식을 보여주기 바란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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