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성범죄 목회자 징계 조문이 없다

한겨레21 2021. 12. 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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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너머n']목회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교회에서 '그루밍 성범죄' 발생 쉬워 성폭력 예방 교육 받은 적 없다는 목회자 54.5%에 달해
안산 구마교회 오아무개 목사 사건 언론 보도 장면. JTBC 뉴스 갈무리

“피고인은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지배함으로써 피해자들 스스로도 피고인의 행위가 성적 학대 행위 또는 위력에 의한 간음 또는 추행 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하였다. 피고인은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행위를 피해자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정당화하였고….”

2021년 7월9일 인천새소망교회 부목사인 김아무개에게 징역 7년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가 명시적으로 이 사건을 ‘그루밍 성범죄’로 규정한 것은 아니지만, 판결을 통해 아동·청소년 때부터 김씨에게 지속적으로 성행위를 강요당했던 피해자들이 피고인에게 갖는 ‘양가감정’(범행에 괴로워하면서도 피고인과의 관계에 의존하고 그 관계가 끝나는 것을 두려워함)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했다. 재판부는 ‘심리적 지배 상태’에 놓인 피해자들이 피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음을 인정함으로써 이 사건이 그루밍 성범죄의 전형임을 밝히고 있다.

목사 지위 이용해 세뇌하고 경쟁시켜

‘그루밍 성범죄’란 성범죄자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피해자를 고르고, 신뢰를 얻은 뒤 성폭력을 저지르며, 이후 피해자를 통제하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아동·청소년뿐만 아니라 권력 불균형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어떤 연령대든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교회는 목회자의 절대적 위치상 그루밍 성범죄의 발생 가능성이 매우 크고, 실제 오프라인 그루밍 성범죄의 상당수가 교회를 통해 일어나며, 가해자 1명이 다수의 피해자를 길들이는 방식으로 범행을 이어나간다.

2021년 10월 1심에서 징역 25년이 선고된 경기도 안산 구마교회 오아무개 목사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연령대가 다양했다. 심지어 가족관계인 피해자도 있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어린 나이에 입교한 뒤 오랫동안 교회 생활을 했거나 심리적·경제적으로 취약한 사회적 약자였다. 피고인 오씨는 목사의 지위를 악용해 이들을 세뇌하고 교인들을 비교하며 경쟁을 통해 본인의 지시에 따르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20대 성인 남성도 피해를 입을 정도로 위력을 바탕으로 한 교회 내 성범죄는 연령, 성별 등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특히 더 취약할 수 있는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은 그루밍 성범죄자의 타깃이 된다.

앞의 판결문에 나오는 사건 역시 피고인 김씨가 취약한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을 선택해 길들이기 과정을 거쳐 성착취·성폭력을 저질렀다. 특히 김씨는 아버지가 교계 내 영향력이 큰 목사로 세습이 확실시됐기에 피해자들이 위력에 짓눌려 있었다. 또한 해당 교회의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시스템이 수년간 이어진 성범죄를 은폐했다. 그러다보니 일부 피해자는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김씨 아버지이자 새소망교회 담임목사이던 김영남의 회유와 지시로 피해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고, 피해자에게 연대했던 여성 목사를 고소하기도 했다.

교회에서 그루밍 성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목회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게 하는 구조와 관련이 있다. 피해자들은 어릴 때부터 오랜 기간 신앙생활을 교회라는 특정 공동체에서 했다. 그 과정에서 목회자의 말은 절대적 권위를 갖고 그에게 무조건 순종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다보니 성폭력을 고발해도 오히려 가해자인 목회자가 피해자 행세를 하며, 그를 지지하는 교인들이 피해자를 비난해 피해자가 공동체 밖으로 쫓겨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피해를 인지해도 이를 드러내기를 거부하는 피해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재록 목사의 ‘신도 성폭행 의혹’ 언론 보도 장면. JTBC 뉴스 갈무리

실형 받아도 교단 징계 없으면 목회 이어가

2019년 징역 16년형이 확정된 만민중앙성결교회 이재록 목사의 성폭력 사건에서도 공판 때마다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등법원에 교인들이 몰려들었다. 일반인 방청객 처지에서도 그들의 위세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는데, 피해자들이 받았을 압박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게다가 교인인 법원 공무원이 법원 내부 전산망(코트넷)에서 개명 등을 한 피해자의 정보를 빼내고 이를 건네받은 자가 교인 120명이 있는 대화방에 피해자의 실명, 증인신문 일정 등을 공유했다. 피해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위증한 교인들도 있었다.

교회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는 피해 사실의 인지 자체가 늦기 때문에 성인이 된 뒤나 연대자들과 연결된 뒤에야 피해를 인지하고 고발·고소를 결심한다. 그런데 가해자 쪽은 피해자가 다른 이유로 무고한다고 주장하며 수사와 재판 내내 피해자를 괴롭힌다. 강원도 춘천 D교회 S목사의 경우 피해자들이 ‘신천지’ 교인이라고 주장했고, 그 지지자들 역시 관련 내용으로 탄원서를 지속적으로 제출했다. 안산 구마교회 오 목사 일당도 피해자들이 언론사의 회유를 받았거나 금전적 이유로 고소했다는 취지로 방어했다. 인천새소망교회 김씨 쪽도 피해자들이 연대자인 정아무개 목사의 회유를 받아 허위 고소를 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주장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 교회 주요 교단의 헌법에는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에 대한 징계 조문이 없다. 따라서 사법시스템으로 실형 등의 처벌을 받아도 교단 징계가 없으면 목회를 이어갈 수 있다. 인천새소망교회 김씨 역시 사건 이후 그 아버지는 노회(장로교 각 교구의 목사와 장로 대표들의 모임)에서 탈퇴하고 피고인 본인은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면직 등 징계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교단의 허가만 있으면 언제든 성범죄자는 목회자의 탈을 뒤집어쓴 채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성범죄 전과자를 사전에 거르는 장치가 없고, 신학교에서도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필수적으로 실시하지 않으며, 목회자가 된 뒤에도 관련 교육을 하는 일이 드물다. 2021년 11월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개신교 성인지 감수성’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교회나 기독교기관에서 성범죄 예방 교육을 받은 응답자는 11%에 불과했고, 목회자 절반 이상(54.5%)은 교육받은 바가 없다고 답변했다.

재판 진행 중 목사에게 내려진 ‘제명’ 처리

물론 늦게나마 변화의 움직임이 교회 내부에서 보이기는 한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2018년 이후 상시 운영 중이며, 재판이 진행 중인 춘천 D교회 S목사에 대해서는 2021년 9월 기독교한국침례회에서 오랜 기간 피해자 쪽에서 요구한 ‘제명’ 처리를 했다. 교회 내 권력형·그루밍 성범죄를 정리하고 연대하는 온라인 전시회(‘#ChurchToo #있다 #잇다’)가 2022년 5월까지 열리면서 기록 작업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 교회는 성차별과 혐오를 기반으로 한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시스템을 혁신할 의지가 미약하다.

김씨의 그루밍 성범죄 사건을 따라가다보면 2018년 11월 검은 옷을 입고 기자회견을 하던 피해자들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싸우고 있다. 피고인 김씨가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내세우며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절대적 신앙 속에 어린 시절부터 형성해온 인간관계의 대부분이 교회인 피해자들은 그루밍 성범죄 피해의 인지가 늦고, 인지하더라도 그 해결 과정에서 너무 많은 고통을 받는다. 그럼에도 이 사건 피해자들은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나섰고, 법정에서 여전히 싸우는 피해자들은 행복한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있다. 그들의 신뢰와 애정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는지 끝까지 감시가 필요한 이유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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