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의 황혼 이혼… 그 다음에 벌어지는 일들

이경은 기자 입력 2021. 12. 4. 12:08 수정 2024. 4. 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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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개미연구소]

“남편이 퇴직하면 이혼 얘길 꺼낼 생각이에요. 아이들만 보고 살았고 앞으로도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은데 (퇴직 후) 온종일 같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못 견딜 것 같아요. 저는 지금 뭘 준비해야 하나요?”

서울에서 활동 중인 보험 설계사 A씨는 요즘 50대 여성 고객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 남편의 정년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고 결혼한 지 오래됐지만 부부 사이는 썩 좋지는 않다고 솔직히 털어놓는 주부들이다.

“주택 대출은 다 갚았고 애들은 졸업 후 취업해서 독립해 나갔고, 남은 걱정은 (남편과 갈라선 이후) 본인의 노후 자금이라고 말해요. 남편 보험이나 노령 연금, 퇴직금 같은 것을 이혼 후에 나눠 가질 수 있느냐고 궁금해 합니다.”

"100세 시대에 앞으로 살 날도 많은데 더 이상 참지 말자..." 20년 이상 산 부부의 이혼을 뜻하는 '황혼(黃昏) 이혼'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노년의 홀로서기는 남편과 아내에겐 매우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은퇴는 황혼에 접어든 부부 사이를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인생 전환점이다. 그런데 행복할 것이라고 꿈꿨던 인생 후반전에 아내가 갑작스럽게 이혼 선언을 하고 부부가 갈라서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바로 황혼 이혼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황혼 이혼(혼인 기간 20년 이상)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만 부부 3만9700쌍이 갈라섰고, 올해도 9월까지 3만1300쌍이 부부의 연(緣)을 끊었다. 지금까지 추이로 예상해 보면, 올해 황혼 이혼 부부는 사상 처음으로 4만쌍을 넘어설 전망이다.

황혼 이혼에 대한 사회 인식은 어떨까. 조선닷컴이 이달 초 SM C&C 설문조사 플랫폼인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의뢰해 50대 남녀 2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봤다. “주변의 황혼 이혼에 대해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7%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살면서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5%가 그렇다고 답했다. 더 이상 함께 하는 앞날을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노부부에 대해,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

점점 늘어나는 황혼 이혼. 어느새 이혼의 큰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한유진 디자인랩 기자

이웃나라 일본도 황혼 이혼이 하나의 빅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일본에선 황혼 이혼을 숙년 이혼(熟年離婚)이라고 부르는데, 70% 이상은 여성들이 제기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생활력이 강한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변화다.

일본의 1급 노후 설계사인 요코테 쇼타(横手彰太)씨는 “남성은 은퇴 후에 편안한 생활을 보내길 기대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남편을 오랜 기간 뒷바라지해온 아내도 ‘그 동안 수고했어요, 이제 푹 쉬세요’라고 선뜻 말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아내가 ‘내 인내심이 바닥났다’면서 갑자기 이혼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의외로 많은 남편들이 전업주부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내가 감히 이혼을 생각하겠냐고 착각을 하죠. 이혼하겠다고 해봤자 먹고 사는 문제를 (내 도움 없이)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아내 결심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황혼 이혼을 결심한 아내의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서 요코테씨는 “그 동안 (아내가) 말은 안 했어도 오랫동안 쌓인 미움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남편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랜 세월 함께 살다가 헤어진 노부부가 이혼 도장을 찍고 난 뒤 어떻게 삶이 바뀔까. 일본 연구를 살펴 보면, 황혼이혼 3년 뒤 여성은 이혼 쇼크를 극복하지만 남성은 좀처럼 이혼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지 못했다./한유진 디자인랩 기자

그렇다면 가정 법원의 법정 문을 나선 뒤, 머리 희끗한 노부부의 삶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한국에선 쉽게 찾기 힘든 주제이지만, 일본에는 이와 관련된 연구가 차고 넘친다. 일본은 지난 2019년에 황혼 이혼 건수가 4만쌍을 넘어섰다.

사토 카즈마(佐藤一磨) 다쿠쇼쿠대학 교수는 “황혼 이혼은 진행 과정에서 당사자 모두가 적잖은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면서 “하지만 황혼 이혼을 잘 끝내고 시간이 흐른 후엔 충격 회복 정도에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사토 교수가 지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황혼 이혼을 한 일본 중년 부부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이혼 당시에는 남편과 아내 모두 정신 건강이 악화된 상태를 기록한다(위 그래프 참고, 숫자가 0보다 높으면 정신 건강이 좋은 것이고 0보다 낮으면 악화된다는 의미). 그런데 3년 뒤엔 남녀 차이가 커진다. 여성은 정신 건강이 좋아지는 반면, 남성은 나빠져 있는 상태 그대로다.

사토 교수는 “황혼 이혼의 70% 이상은 여성들이 ‘인내심이 바닥났다’면서 먼저 제안하는데, 여성들은 경제적인 문제로는 다소 고통받긴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은 일시적일 뿐 개선된다”면서 “반면 남성들은 황혼 이혼으로 받는 정신적 충격이 커서 좀처럼 회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남성은 건강이나 생활 관리가 잘 안 되고, 사회와 단절된 독거 노인이 되어 고독사로 연결될 확률도 높다고 사토 교수는 말했다.

노후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이 소원해진 부부 사이를 개선시키는 비밀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달 열린 반려동물 산업 박람회 현장. /뉴시스

황혼 이혼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요코테씨는 반려 동물이 은퇴 부부에게 활력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요코테씨는 “완벽한 타인인 부부가 100세 시대에 오래도록 함께 잘 살려면 서로가 노력을 해야 한다”면서 “결혼기념일에 달랑 고급 레스토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배려를 매일 쌓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상대방을 하루 아침에 바꾸긴 어려울 것이다.

“업무적으로 70대 고령 고객들을 많이 만나는데, 사이가 좋은 부부들은 대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있더군요. 반려 동물이 공통 화제나 관심사가 되기 때문이죠. 아이가 독립해 집을 나가고 나면 부부 사이에 대화가 사라져 빈집이 되어 버리지만, 반려 동물이 있다면 부부가 서로 대화도 많이 하게 되고, 집안도 밝아집니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게 되면 아무리 부부라도 사이가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배우자에게 바라는 것이나 기대하는 것이 많아지는 순간, 서로 싸우게 되고 불행해 집니다. 나와 배우자 사이의 생각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배우자가 챙겨주는 걸 기다리지 마세요. 내가 먼저 스스로 나 자신을 챙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행복한 노후 탐구 시리즈>

①”은퇴하고 집 줄여도… 부부에겐 각방 필요하다”

②부부 10쌍 중 6쌍은 따로 잔다… 이유는 바로…

③”누워 사는 100세 무의미... 건강하려면 ‘내가 먼저’라는 생각 가져야”

④“황혼이혼 도장 찍었더니 내 연금이 반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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