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타고 오면 1700원에 렌터카 지원하는 '혜자' 여행지

홍지연 2021. 12. 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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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아직 안 알려진 멋진 곳들이 많다. 전북 익산에도 있다. 50년 만에 개방한 아가페 정원은 한 신부님의 염원이 담긴 인정 넘치는 곳이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을 보살피기 위해 양로원을 짓고 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은 익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됐다. 익산 여행을 좀 더 슬기롭게 할 수 있는 여행상품도 소개한다. KTX와 렌터카를 연계한 ‘익산 고백(GoBack) 여행’을 이용하면 1700원으로 24시간 차를 빌릴 수 있다.

◆ 이 좋은 걸 왜 지금 알았지?!

“제발 홍보 좀 열심히 해주세요”

혜자로운 여행상품 익산 GoBack 여행

아가페 정원

익산은 경주·부여·공주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고도(古都)다. MZ 세대 필수 여행지로 등극한 경주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익산엔 아직 명소 하나씩 끼고 SNS 인증샷을 건질 만한 카페가 많이 없다. 같은 백제문화권인 부여·공주와는 또 다르다.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같은 간판 명소는 아직도 발굴이 진행 중이라 매년 방문할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현장에서 발굴 작업을 하는 모습도 지켜보는 것도 이색적이다.

익산은 가까워서 좋다. 용산역에서 KTX 타고 익산역까지 1시간 6분이 걸린다. 대중교통으로 익산을 가려거든 ‘KTX+렌터카 상품’을 추천한다. 왕복열차비와 렌터카를 포함한 자유여행상품이다. 열차비를 계산했더니 1700원으로 렌터카를 이용하는 셈이다. 운전을 못 하면 익산관광택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왕복열차비와 3시간 관광택시를 포함한 자유여행상품은 7만9800원부터다. 내일로 이용자들에겐 숙박과 렌터카 지원금이 각각 2만원씩 지급되고 익산시티투어버스도 1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혜자스러운 여행법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차 없는 뚜벅이도 서럽지 않은, 아니 오히려 자차로 가면 억울한 익산 여행이다.

◆ ‘익산 GoBack 여행’ 추천 스폿

50년 만에 개방된 비밀 공간_아가페 정원

아가페 정원

익산 여행 수단은 정했다. 이제 어디를 갈지가 고민이다. 덜 알려진 나만의 여행지를 찾고 싶다면 올 9월 개방된 익산 아가페 정원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가페 정원은 전북 제4호 민간정원이다. 1970년 서정수 신부가 노인복지시설 아가페정양원을 설립하면서 주변에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 지금 모습이 됐다.

아가페 정원

요즘 익산에서 가장 핫한 곳이라는 설명만 듣고 따라나섰는데, 입구에서 갸우뚱했다. 정원이라고 했는데 웬 양로원으로 들어간다. 건물을 등지고 산책길을 따라 걷는다. 사람들이 작게 속삭이는 소리와 새 울음소리만 들린다. 철저하게 계산되고 화려하게 멋을 낸 정원보다는 자연스러운 맛이 느껴졌다.

화장실을 찾느라 서성이는데 방문객 한 명을 붙잡고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다. 궁금해서 말을 걸었더니 여기 원장님이랬다.

“3월에 민간정원 등록을 하고 9월 10일에 개방했어요. 주중에는 400~500명, 주말에는 2000명 이상씩 와요.” 최명옥 원장은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우며 이야기를 했다.

아가페 정원

아가페정양원은 무료 양로원이다. 무위탁 어르신 50명이 이곳에 계신다. 이곳을 세운 서정수 신부는 37년 전에 타계했다. 황등성당을 끝으로 퇴임한 서정수 알렉시오 신부는 박영옥 원장(현재 이사장)이 구매한 부지에 2층짜리 집을 짓고 오갈 곳 없는 노인 30명을 먹이고 재웠다. 우리나라에서 ‘복지’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훨씬 전인 70년대 이미 자선사업을 시작한 거다. 나무를 심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공기가 맑아지니까, 또 하나는 나무를 팔아 양로원 운영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아가페 정원 하이라이트 메타세쿼이아는 담장 역할을 위해 주변 논밭 경계에 심었다.

최명옥 원장은 “아가페 정원은 그동안에도 열려 있었다. 사진 작가들이 알음알음 와서 멋진 작품 하나씩 찍고 갔다”며 “솔직히 우리만 보기엔 너무 아까웠는데, 작년 8월 익산시장님이 오셔서 보시더니 시민에게 공개했으면 좋겠다고 이사장님을 설득해서 개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민간정원이 되면서 시에서 공공화장실, 주차장, 산책로 정비 등을 지원했다.

최명옥 원장님이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주중에 많아야 200명 정도, 주말엔 400~500명 정도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많이들 찾아주세요. 근데 익산 시민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진짜 대단한 게 뭔지 아세요. 휴지를 절대 아무 데나 안 버리세요. 저녁에 돌아다니면 쓰레기가 한 주먹 정도밖에 안 나와요.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아가페 정원

하늘로 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길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앞에 듬성듬성 있는 당단풍에 더 시선이 쏠렸다. 앙상한 가지에 물기가 쭉 빠져버린 뭔가가 자잘자잘 달렸는데, 색깔이 거의 나무 기둥 색과 흡사하다. 단풍잎이라면 붉어야 할 텐데 이파리는 아닌 것 같고, 물기가 쭉 빨려 살짝 손대도 사르르 재가 되어 사라질 것 같은 초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최명옥 원장님께 물으니 “당단풍 꽃이 마른 것”이랬다. 생명력이 붙어 있는 드라이플라워는 또 처음이다. 정원 초입의 어마어마한 밤나무도 신기하다. 옆으로 넓게 퍼진 거대한 밤나무를 보면 이 동네 이름이 왜 ‘율촌리’인지 금방 이해된다. 최명옥 원장님에게 사연을 듣고 난 후에 정원을 둘러보니 나무 하나 풀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생전 신부님이 ‘우리가 불교 신자라서 절에 가냐, 풍광이 좋아서 찾아간다. 마음 정화하러 간다’고 말하셨어요. 우리 아가페 정원도 모든 사람들의 쉼터가 됐으면 좋겟다는 마음이셨대요. 우리 국민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아야 한다는 서정수 신부님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 저희가 할 일이에요.”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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