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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주인공 보니 묘한 쾌감 들었다"..'아수라' 영화 리뷰 [씨네프레소]

박창영 입력 2021. 12. 04. 19:03 수정 2021. 12. 0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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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 ⑫ 영화 '아수라' 리뷰

인간은 낙하 운동에서 쾌감을 느낀다. 높은 곳에서 급속도로 떨어지는 체험을 하기 위해 굳이 돈을 지불한다. 테마파크에 있는 여러 놀이기구가 이런 경험에 속할 것이다. 자이로드롭은 케이블이 끊어져 떨어지는 엘리베이터와 유사하고, 번지점프는 절벽에서의 투신과 비슷하다. 인간은 극단적 상황으로 자신을 밀어넣고 즐거움을 느끼는 독특한 동물인 것이다.

한도경의 인생은 안남시장 박성배를 만난 이후 끊임없이 추락한다.<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아수라'는 관객에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쾌감을 주는 영화다. 주인공 한도경(정우성)의 인생은 계속해서 밑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그것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주동 인물이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에서 결말을 궁금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 영화라면, '아수라'를 보는 관객들은 어느 순간 한도경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놓아 버리게 된다. 외려 점점 가속이 붙어 추락하는 한도경의 인생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궁금해하며 보게 하는 데에 재미 요소가 있다.
말기 암 환자인 아내를 살려야 한다는 건 한도경에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좋은 구실이 된다.<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거대악 사이에 끼어 있다가 자신도 악이 돼버린 주인공

강력계 형사 한도경은 안남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며 돈을 받는다. 박성배가 입신양명, 이권 획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탓에 한도경이 저질러야 하는 악행의 수준도 점점 높아진다.

말기 암 환자인 아내 병원비를 벌어야 한다는 생계의 문제가 그에게 좋은 합리화 구실이 된다. 여기에 박성배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김차인(곽도원)이 한도경을 협박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은 더욱 꼬인다.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던 후배 형사 문선모(주지훈)까지 박성배의 색에 물들어가면서 한도경은 문선모와 충성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순진했던 후배 형사 문선모(왼쪽)까지 박성배 색깔에 점차 물들어가며 한도경의 인생이 더 고달파진다.<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한도경처럼 인생이 악화 일로를 걷는 주인공을 다룬 작품은 종종 있었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의 마츠코, 소설 '인간실격'(1948)의 요조 같은 인물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장르도 다르고, 작품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도 각기 차이가 있지만,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분명 본인 선택 때문에 나쁜 결과를 얻어놓고선, 자신을 불쌍하다고 여기는 자기연민과 자기기만, 합리화다. 한도경은 자신을 두 거대 악 사이에 끼어 이도저도 못하는 약자로 생각하지만, 둘 사이에서 빠져나와 다른 길을 걷지 않는 이상 그도 악일 뿐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주인공 마츠코 역시 자기기만과 합리화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막다른 길로 몰아넣는 인물이다. `아수라`와 마찬가지로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작품인데, 거기엔 이런 유형의 주인공에 대한 거부감이 일정 부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제공=스폰지>
마계 '안남시'의 왕 박성배

다만 범죄도 그 동기와 주변에 미치는 파급력 등에 따라 각기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 영화 최고의 악은 이의 없이 박성배일 것이다. 능수능란하게 감정을 컨트롤하는 그는 방금 전까지 한도경을 죽일 듯 담뱃불로 지지다가도 돌연 "널 다치게 두지 않아. 넌 내 새끼니까"라며 태도를 바꾼다.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자기 신체까지 거리낌없이 훼손하려는 모습에는 적도 아군도 모두 혀를 내두른다. 자신을 거쳐간 적을 자기 색으로 물들일 수 있는 그는 진정 마계 '안남시'의 왕이다.
장례식장에 뒤엉켜 사투를 벌이는 인물들. 박성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들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꼬였을까.<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다시 놀이기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놀이기구가 재밌는 건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번지점프를 할 때 우리는 밑으로 계속 떨어지다가도 탄성 좋은 로프가 잡아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런 안전장치 없이 추락하는 행위는 유희가 아닌 극단적 선택이라고 불린다.
티익스프레스, 자이로드롭처럼 고속 낙하하는 놀이기구를 타면서도 즐거울 수 있는 건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안전장치 없는 놀이기구를 탔다간 정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사진 제공=에버랜드>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수라'의 한도경 인생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보면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건 2시간 후면 끝난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무자비한 시장이 자기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타인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모습을 보면서도 낄낄댈 수 있는 건 이게 현실이 아니어서다. 2시간 있으면 그만 봐도 되는 영화라는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 더 이상 짜릿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영화 `아수라` 포스터.<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
장르: 액션, 범죄
출연: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감독: 김성수
평점: 왓챠피디아(3.1),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83%), 팝콘지수(69%)
※12월 3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넷플릭스,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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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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