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인·재·감' 불문율 깨지나..이재용 '뉴삼성' 인사 임박 [뉴스원샷]

이상재 입력 2021. 12. 5. 05:00 수정 2021. 12. 5.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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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삼성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뉴시스]


“그냥 한 마디로… 출근 시간이 기다려진다.”

국내 대기업의 A씨는 첫 임원이 되는 ‘맛’을 이렇게 표현했다. 직장생활 25~30년 만에 자동차와 독립된 업무공간을 제공받는 등 대우가 확 달라지니 성취감과 만족도가 크게 높아질 것이다.

물론 실적에 대한 압박도 상당하다. 매년 성과 목표를 매기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두둑한 성과급도 따라올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선 옷을 벗어야 할 수도 있다.


삼성의 별 “100명 중 0.78명”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승진하는 걸 흔히 ‘별을 단다’고 비유한다. 기업 사정에 따라, 업무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간부급 중에 대기업 임원이 되려면 보통 8~15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비율로는 6~13%쯤 된다. 군에서 대령이 준장으로 진급하는 비율은 6~8%라고 한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왼쪽부터)과 김현석 사장, 고동진 사장 등 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3인.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됐다. [사진 삼성전자]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3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에는 891명의 임원이 근무 중이다. 사외이사를 제외한 등기(5명)·비등기(886명) 임원을 더한 숫자다. 전 임직원 11만3000여 명의 0.78%쯤 된다. 100명 중에 한 명도 안 된다는 얘기다.

어느새 인사철이다. SK·LG·롯데 등이 최근 계열사 신임·승진 임원 인사 내용을 발표했다. 기업들은 코로나19 이후 세대교체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 등에 방점을 찍으면서 2022년 경영체제로 전환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 인사 발표 임박…관심 ‘UP’


조만간 삼성전자가 정기 임원 인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 첫 인사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어떤 식으로 ‘이재용 색깔’을 보여줄지, 조직 개편이 얼마나 이뤄질지, 인사제도 개편을 앞두고 어떤 인물이 발탁될지 등도 관심이 높다.

지난주부터 삼성 안팎에선 회장·부회장·사장 등 주요 승진자 명단이 떠돌고 있다. 아직 첫 삽을 뜨지도 않은 테일러법인장(미국 제2파운드리 공장) 이름까지 거론된다. 삼성전자 인사에 쏠린 사내 임직원, 협력업체, 재계의 관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삼성전자에는 기술이나 연구개발 분야 인재를 중용하는 문화가 정착해 있다. 대학·대학원에서 공학을 전공한 인재가 ‘별’을 다는 확률이 월등히 높다. 핵심 경영진에도 기술 백그라운드를 가진 임원이 주로 포진해 있다.


“5년 연속 최상급 고과 받아도 어려워”


이른바 ‘문과 분야’에서는 별을 달기가 더 치열하다. 부장급이라면 인사고과에서 3~5년간 거의 연달아 EX(최고평가) 등급을 받아야 한다. 어학 인증도 1등급이 필요하다. 그러고도 임원 승진에서 미끄러지는 경우가 숱하다. 고과와 성과가 뛰어나도 사생활이나 소문이 안 좋은 경우도 슬그머니 걸러낸다. 삼성전자 임원 자리가 ‘넘사벽’으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주요 보직 중에서 ‘인·재·감 출신’이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인사나 재경, 감사 등의 업무를 거쳤다면 상대적으로 임원으로 승진할 확률이 높다는 게 삼성 내부의 불문율이다.

그래서인지 사내에서 이들은 엘리트 의식이 짙은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옛말이 돼가고 있지만, 공무원 사이에서 ‘공·비·총(공보·비서·총무) 출신’이면 고위직 승진에 유리하다는 얘기와 닮았다.


내년 인사제도 개편…사내 술렁


그런데 변화 소용돌이가 예고됐다. 삼성은 내년 ‘미래지향 인사제도’를 도입한다고 지난달 말 밝혔다. 지난 2017년 기존의 승진 단계 7→4단계 축소, 호칭 단순화 이후 5년 만의 변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캐나다·미국 출장을 위해 지난달 14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이재용의 ‘뉴삼성’ 인사제도 밑그림 그래픽 이미지.


이번에 삼성은 현행 CL1에서 CL4까지 이르는 직급별 승진 연한을 없앤다고 밝혔다. 이러면 대졸 신입사원(CL2)으로 입사해 8~9년 만에 ‘별’을 달 수 있다. 지금까지는 단계별 8년, 10년, 5년을 더해 23년이 걸렸다.

앞으론 신입 때 EX나 VG 같은 상위 고과를 연속으로 받으면 CL3 승진 후보자가 된다. 부장급인 CL4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졸 남성이라면 30대(代) 나이에 국내 최고 기업에서 임원이 될 수도 있고, 40대에 최고경영자(CEO) 탄생도 가능하다. 현행 부사장·전무 직위는 부사장으로 통일한다.


취업규칙 변경 동의 중…절반 넘어야 도입


구글·아마존·메타(옛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기업처럼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겠다는 이른바 ‘이재용식 인사 혁신안’이다. 삼성 측은 “나이와 상관없이 인재를 중용하여 젊은 경영진 조기 육성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급 두뇌 유출, MZ세대(1980년대 초중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젊은 층)의 소통 욕구가 커진 데 따른 위기의식이 투영되면서 글로벌 트렌드를 도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내부 반응은 대강 이렇게 요약된다.

“고과 평가에서 절대평가를 시행하면 성과급은 n분의 1로 나눠 갖는 식으로 희석될 수 있다.”

“최상위 고과를 2번 이상 받으면 모두 대상자가 된다. 처음엔 젊은 세대에게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승진할) 자리’는 한계가 있다. 진급 대상 후보자가 현 수준에서 두세 배로 늘어날 뿐이다.”

“성과 중심의 조직을 만들려면 발탁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능력이 아니라 ○○ 출신이라 출세했다는 얘기는 인제 그만 듣고 싶다.”

삼성 측은 현재 취업규칙 변경을 위해 임직원 동의를 얻는 중이다.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새 인사제도를 시행할 수 있다. 삼성전자 임원 인사는 이르면 이번 주 ‘뚜껑’이 열린다.

이상재 산업2팀장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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