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법·온플법·항공사 합병..공정위, 他 경제부처들과 대립하는 이유는?
공정위에 반발하는 양상 두드러져
40주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역사에는 ‘기업과의 투쟁의 역사’라는 말이 쓰인다. 시장의 경쟁 환경을 악화시키는 부당한 거래에 철퇴를 내리면서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반발에 맞서 원칙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기업과의 투쟁이 아닌 ‘정부 부처들과의 투쟁’ 상태가 불거지고 있다.
정부 부처들이 공정위 의견이나 결정에 반발하거나 신경전을 벌이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부처는 심지어 공정위에 대해 ‘산업의 특수성을 모른다’는 무시 섞인 비판을 드러내고 있다. 벌금 내는 당사자 뿐 아니라 특정 산업의 주무 부처들이 업계의 의견을 대변하면서 공정위의 결정이 ‘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식의 원망섞인 지적인 것이다.
◇공정위가 “이해 안 된다”는 해수부
가장 최근 날선 모습을 보이며 업계를 대변하고 있는 곳은 해양수산부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5월 운임을 담합한 혐의로 국내외 해운사 23곳을 제재해 총 8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발송하고 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앞두고 있다. 한국~동남아 노선 취항 선사들이 지난 2003년 10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122차례에 걸쳐 운임을 담합했다는 이유에서다.
해운사들은 “공동행위는 해운법 29조에 따른 면책조항”이므로 공정위 징계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여기에 해운사의 담합을 해수부가 주관하자는 내용의 해운법 개정안에 과거 해운사의 담합 행위까지 공정개래법 적용을 면제하는 내용이 담겨 ‘공정위 무력화법’이라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주무부처인 해수부는 업계의 몽니를 앞장서서 거들고 있다. 앞서 문성혁 해수부 장관은 “(공정위가) 해운업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이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며 “전 세계적으로 해운사의 공동행위(담합)를 허용하는 데에는 업종의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간만에 다가온 해운 호황에 수천억대 과징금으로 찬물을 끼얹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조성욱 공정위원장도 나서서 해운사간 운임 공동행위에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하자는 내용의 해운법 개정안에 대해 “공정위가 다루는 해운 운임 담합 사건은 해운법 29조를 넘어서는 불법 행위에 대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위원회 심의를 거쳐 제재 여부를 결정할 것이란 기존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각살우의 우 범하지 말라”는 산은
대한항공의 주주인 산업은행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위한 기업 결합 심사 승인에 속도를 내달라며 공정위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를 범하지 말라’ ‘경쟁력을 훼손할 정도의 조치’ 등 강한 단어를 사용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 심사를 승인하는 절차가 올 해를 넘길 것이 확실시되는 데 따른 산은의 초조함으로 풀이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30일 “회사의 미래 경쟁력을 훼손할 정도로 과도한 운수권·슬롯 축소 등의 조치가 취해질 경우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며 “소위 말하는 교각살우,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표현처럼 대한민국 국익이란 전체적인 맥락에서 결정해야 하는데 작은 것에 집착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토부도 공정위가 항공업계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공정위 관계자는 “두 항공사의 국내 노선 점유율이 무척 크기 때문에 고려할 사항이 많고, 해외 주요국에서도 아직 심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에 있어서도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정위와 주도권 싸움을 했다. 온플법은 조성욱 위원장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사안이었다. 공정위는 지난해 6월 디지털 공정경제 종합대책을 발표한 뒤 온플법 제정에 공을 들였다. 이후 입법예고·법제처 심사를 마쳤고, 지난 1월 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돌연 방통위가 지난해 12월 공정위 안이 전기통신사업법 중복 규제 우려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고, 방통위는 의원 입법을 통해 자체 법안을 발의했다. 결국 규제 권한은 방통위와 나눠 갖기로 정리하고, 대상 기업도 매출액과 거래액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것으로 했지만 법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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