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골 골이에요" 축구해설가 신문선의 반전 근황

홍지연 2021. 12. 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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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골, 골이에요."

굵직한 저음으로 힘차게 골을 외치던 축구해설가 신문선씨가 갤러리 관장으로 인생 3막을 시작했다. 축구선수에서 축구해설가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갑자기 갤러리라니.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제주로 날아가 그를 직접 만났다. 신문선씨는 와우갤러리 관장 자격으로 11월 25일부터 28일까지 진행한 제주 최대 규모 아트페어 ‘아트제주’에 참여했다. 26일에는 미술 애호가들과 직접 만나 컬렉터이자 갤러리 관장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했다.

신문선 와우갤러리 명예관장 [아트제주]

Q 언제부터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건지?

A 초등학교 때 효창동에 살았는데 같은 동네에 1960~70년대 최고 인기 작가 박영선 화백이 계셨다. 대한민국 최고의 누드작가다. 그분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벗은 여자 그린다’고 수군거렸다. 호기심 많은 초등학교 시절 담 너머로 아틀리에를 숨어서 구경했다. 그러다가 들켜서 담뱃대로 맞기도 했다. 그 집에 플루트 부는 여인 청동 조각이 있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유작전을 갔다가 그때 본 조각을 다시 봤다. 안 판다는 유족을 8번을 찾아가 설득해서 작품을 샀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연세대 입학했다. 연대가 일본 게이오대랑 자매결연을 맺어서 1년 한 번씩 교환 방문을 했다. 일본 전역으로 원정 경기를 다녔는데 그때 선수로 뛰면서 통역도 했다. 그때 친해진 한 일본인 친구가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도쿄에서 개인 주택 사는 부자였다. 마당 소나무 밑에 신라시대 석탑이 있고 조선시대 석등이 있었다. 거실에 놓인 조선시대 달항아리를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 집 아버지가 말차를 내주고 다완을 선물로 줬는데, 그게 지순택 선생님 작품이었다. 지순택은 일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예가다. 그때부터 미술이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나도 언젠가 반닫이 위에 달항아리를 놓고 예술을 즐겨야지.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컬렉션을 시작했다. 81년도에 졸업을 하고 대우팀에 스카우트가 됐는데 그때 받은 돈으로 100평짜리 집을 사서 결혼을 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 일찍 수집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순택 달항아리 작품이 놓인 상수동 신문선 공간 [출처: 와우갤러리 인스타그램]

신문선씨는 제주와의 인연도 깊다. 1984년 신혼여행 온 곳이 제주였고 제주 유나이티드의 전신 유공축구팀의 창단 멤버이기도 하다. 4년 전에는 서귀포시 보목동에 집을 마련해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집에서 섶섬이 보인다. 동네를 선택하는데 이중섭 선생의 섶섬그림 영향이 컸다. “이중섭 미술관에서 내려다보면 섶섬이 있고 그 풍경이 보입니다. 이중섭의 눈으로 섶섬을 즐기는 거죠.”

신문선씨는 “제주의 미래 먹거리는 숲길 오름, 환경과 관련된 것이다. 코로나 때 자연이 좋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왔다”며 “미술관, 갤러리도 많고 제주에서 활동하는 전업 작가들도 많다. 언제든지 오면 그림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제주를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트제주

Q 이번 아트페어에는 변시지 선생님 작품만 들고 왔다.

A 변시지 선생님이랑 인연이 있다. 변시지 선생님이 비원파 그림을 그리다가 갑자기 제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거다. 이유가 궁금했다. 수소문해 연락처를 알아내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했더니 난리가 났다. 변시지 선생님이 축구를 너무 좋아하신다고 했다. 그날 바로 제주로 가서 변시지 선생님을 뵀다. 새벽까지 소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분이 일본 생활을 오래 하셔서 한국말도 서툴고 이데올로기적인 오해도 받고 서울에서 견디다 못해 고향 제주로 온 거였다. 변시지 선생 그림에는 외로움·고독·비애가 있다. 그게 예술이다. 변시지 선생 그림은 모든 게 제주다. 태풍·나무·바람이 있다. 아트페어 참여 요청받았을 때도 고민을 하다가 변시지 선생님 작품으로 추렸다. 소장작 50여 점 중 17점을 가져왔다.

와우갤러리 '변시지의 소중견대' 전시 [출처: 와우갤러리 인스타그램]

변시지 선생은 1926년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일본으로 가서 미술을 배우고 1948년 23살의 나이로 ‘광풍회전’에서 최고상 수상하면서 일본 미술계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한국으로 돌아온 건 1957년. 고궁과 자연을 그리는 비원파(秘苑派) 화가로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변시지 선생이 70년 대 초만 해도 제주 그림에 색이 여러 가지가 들어가요. 70년대 말부터는 노랑과 검정, 단 두 가지 색깔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2007년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작품 2점이 상설 전시됐는데, 미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에서 변시지를 선택한 건 독창성때문이에요.” 변시지 작품세계가 더 궁금하다면 와우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변시지의 소중견대’ 전시와 기당미술관 ‘변시지 유럽기행’ 전시를 추천한다. 화가의 눈으로 서울에서 제주를, 제주에서 유럽을 볼 수 있다.

와우갤러리 첫 개인전 권영범 전시 [출처: 와우갤러리 인스타그램]
와우갤러리 첫 개인전 권영범 전시 [출처: 와우갤러리 인스타그램]

Q 와우갤러리 소개 좀 해달라.

A 20여 년 전부터 작은 미술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홍익대에 대한민국 최고 미술대학이 있는데 그 주변에 제대로 된 갤러리가 없는 게 안타까웠다.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핫한 곳에 와우 갤러리를 만들었다. 와우갤러리는 투트랙 전략을 쓴다. 한국 대표 화가들과 ‘한국 미술계에서 손흥민을 찾자’는 마음으로 신진 작가를 발굴한다. 내가 죽고 나서도 와우갤러리를 거친 화가들이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고 하면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는가.

신문선 공간 [출처: 와우갤러리 인스타그램]
신문선 공간 [출처: 와우갤러리 인스타그램]

신문선씨는 최근 자신이 살던 상수동 집을 전시장으로 바꿨다. 각층에 변시지, 서용선, 권순철 화백 그림을 전시해 프라이빗하게 운영 중이다. 갤러리는 가족 사업이 됐다. 신문선씨가 와우갤러리 명예관장이고 명지대학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 중인 두 아들이 갤러리 운영을 돕고 있다.

Q 앞으로 계획과 포부가 궁금하다.

A 미술관을 하나 남기고 싶다. 젊은 친구들이 홍대에 많이 몰린다.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세계적으로 명소 홍대에 한국적인 멋을 느낄 수 있는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국가 이미지를 재고하는 건 결국 문화다. 문화의 힘이 그만큼 강력하다.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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