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중앙일보

[더오래]'옥공예' 47년 외길인생..서울시 오래가게 가원공방

민은미 입력 2021. 12. 05. 10:00 수정 2021. 12. 06. 09:00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88)

1910년 파리의 패션 거리 캉봉가에 작은 가게가 문을 열었다. 오픈 초기에 가게에 진열되었던 수수하고 심플한 모자는 화려한 것을 선호했던 당시 상류층 부르주아 여성들에게 당연히 외면당했다. 하지만 한 유명한 연극배우가 자신의 연극에 이 가게의 모자를 착용하면서 상류층 여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게 됐다. 모자 가게의 이름은 ‘샤넬 모드(Chanel Modes)’. 지금은 명실상부한 세계적 명품 브랜드인 샤넬로 발돋움했다.

1837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는 문구류와 소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생겼다. 이후 도자기, 실버 등으로 제품을 다양화하고 1853년에는 회사 이름을 바꿨다. 나중엔 보석을 전문적으로 제작하고 판매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문구류 가게의 이름은 ‘티파니, 영 앤드 엘리스(Tiffany, Young and Ellis)’. 지금의 티파니가 되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럭셔리 브랜드 샤넬과 티파니도 111년 전, 184년 전 시작은 작은 가게에 불과했다. 서울시는 30년 이상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킨 생활 문화, 전통공예 분야의 오랜 가게(표기 명칭은 '오래가게')를 선정해서 관광자원으로 홍보하고 있다. 가게에는 개업 연도가 표기된 인증 명판을 비치하고 있다. 서울 레코드, 보헤미안 커피하우스, 한상수 자수박물관, 명신당필방, 하늘물빛 천연염색, 동림매듭공방 등이 대표적이다.

1974년 옥공예 분야에 입문해 47년간 외길 인생을 걸어온 엄익표 옥장. [사진 가원공방]


오래가게에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옥장 엄익평이 운영하는 가원공방도 있다. 옥 공예품, 전통 장신구, 한복 장신구를 만날 수 있다. 엄 옥장은 1974년 옥 공예 분야에 입문하여 47년간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그의 작품과 옥 주얼리를 소개한다.


당초수자 길상문 합


엄익평 옥장의 대표작인 '당초수자 길상문 합'. [사진 가원공방]

엄 옥장의 대표작은 ‘당초수(壽)자 길상문(吉祥紋) 합’이다. 백옥 제품으로 뚜껑이 있는 상자다. 고려 시대 청자투각장방형합(靑磁透刻長方形盒)을 창작 모티브로 하여 제작했다. 윗면과 측면 사방에 보상당초문을 양각하고, 각 면의 중앙에 단수 자를 박쥐 길상문이 받쳐주는 문양을 넣어 장식했다. 전체적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수작으로 1998년 10월 제23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총리상을 받았다.

백옥 문방구류


곡선과 직선으로만 이뤄져 단순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백옥 문방구류'. [사진 가원공방]

옥 벼루, 필통, 붓받이, 인주함, 연적 등 ‘백옥 문방구류’도 있다. 일체 장식을 배제하고 곡선과 직선으로만 처리해 단순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의 백옥 문방구류는 1992년 10월 제17회 전승공예대전에서 문화부장관상을 받았다.

백옥 참외형 주전자 및 옥잔과 잔대


백옥 참외형 주전자 및 옥잔과 잔대. [사진 가원공방]

엄 옥장의 작품을 보면 유려한 곡선으로 표현된, 심취할 만한 단순미가 두드러진다. ‘백옥 참외형 주전자 및 옥잔과 잔대’를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백옥 주전자의 몸통, 손잡이, 뚜껑과 옥잔 모두 곡선 장식이 물 흐르는 듯한 선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고려청자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으로 1995년 전승공예대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백옥 오동상감 보상당초 봉황문합


백옥 오동상감 보상당초 봉황문합. [사진 가원공방]

이 합은 국보 171호 은입사 향합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향을 넣거나 염주를 담는 용도다. 엄 옥장의 상감기법(표면에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겨서 그 속에 금, 은, 보석, 자개 등을 박아 넣는 공예 기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보상당초, 여의두, 봉황무늬를 오동으로 상감하여 은은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금속 선을 박아넣은 다음 홈 바깥으로 넘치는 금속을 줄로 갈아내고 그 금속 부위를 옥 표면과 동일하게 연마 처리하여 광택을 내야 하는 극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이 기법은 그의 특기이기도 하다.

옥가락지·노리개·옥비녀 외 장신구류


브로치를 착용한 모습. [사진 민은미]
옥가락지를 착용한 모습. [사진 민은미]
미니 노리개를 착용한 모습. [사진 민은미]

가원공방에는 엄 옥장의 작품뿐만 아니라 옥으로 만든 주얼리도 있다. 한복을 입을 때 착용하는 노리개, 옥비녀, 옥가락지, 브로치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전통적인 장신구를 현대적인 감성으로 만든 제품들이다. 옥가락지의 경우 과거에는 반지 옆이 두꺼워 착용이 불편했지만 일상생활에서 착용하기에 편안하도록 디자인했다. 노리개 또한 한복과 현대적인 의상에도 착용할 수 있도록 미니 사이즈를 개발했다.
옥비녀. [사진 가원공방]
옥가락지. [사진 가원공방]


엄 옥장이 장인의 길로 들어선 지 47년. 47년간 오로지 옥 공예의 길에 매달리고 있다. 옥에 대한 애정과 기술개발에 대한 집념이 47년 세월의 원천이다. 그의 옥에 대한 애정과 기술은 큰딸과 만나 결혼한 사위 김태완 작가가 맥을 잇고 있다.

서울시 오래가게: 가원공방 [사진 가원공방]


30년이 넘은 서울시 오래가게 가원공방은 47년간 옥 작품을 만들어온 장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더해서 일상에서 착용할 수 있는 장인이 만든 옥 주얼리를 만날 수 있는 드문 장소다. 30년이 지나 100년을 바라보며, 세계적으로 기억될 가원공방이 되길 기원해본다.

엄 옥장의 열정이 100년 전 샤넬, 200년 전 티파니에 부족할까. 100년 전, 200년 전에는 샤넬과 티파니도 작은 가게에 불과했다.

주얼리 마켓 리서처 theore_creator@joongang.co.kr

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