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소방관인 나, 집에 불이 났다 (ft. 말조심)

입력 2021. 12. 5. 10:27 수정 2021. 12. 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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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소방관 심바씨 | 마음은 UN, 현실은 집나간 가축 포획 전문 구조대원

화재는 늘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난다


화재는 늘 예상치 못한 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시기별로 일어나는 빈도수가 달라서 통계상 여름엔 화재가 많지 않다는 걸 예측할 수는 있다. 그런 예측과 실제 화재 출동 건수가 맞아떨어지는 날엔 방화복에 검댕이가 묻지 않는 날이 며칠 이어진다. 한 번은 친한 동료들끼리 모여서 이런 얘기를 했다.

"근데 요즘엔 불이 잘 안나지 않아요?"

"글쎄~ 그러고 보니까 지금 한 열흘째 불은 구경 못했네요."

"워이~ 워이~ 그런 소리 마요. 그러다 큰일 나요!"

"아이고 내가 말실수했네. 그 말 취소 취소.

점심식사를 마치고 구조대 사무실에 들어와 커피 원두를 갈았다. 다른 팀은 몰라도 우리 팀은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려 마신다. 아무래도 교회 오빠로 자라서 교회 아빠가 되신 팀장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그 덕에 우린 술 마시는 회식 대신 산이 보이는 브런치 카페에서 와플을 썰거나 꽃구경을 다닌다. 커피도 하루에 의무적으로 3잔 이상은 마시게 된다. 며칠 전 모기가 내 팔뚝에 앉아 주둥이를 꽂고 피를 빨더니 심봉사처럼 눈을 번쩍 뜨는 걸 목격했다. 내 피 속에 카페인 때문인지 그날 모기가 잠도 안 자고 밤새 날아다녔다.

구조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여기저기서 손님들이 몰려와 커피 내리기가 한창일 즈음 화재출동 명령이 내려졌다.

"화재출동 화재출동! 주택에서 검은색 연기가 나오고 있고, 위치는 남원 OO중학교 쪽으로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식정 펌프, 식정 물탱크, 남원 구조, 남원 지휘, 용성 펌프, 용성 구급.."

깜빡거리는 출동벨을 누른 후 출동지령서를 뽑아보니 눈에 익은 주소가 보였다.

"어?! 이거 우리 집 근처인데요!! "

"반장님 설마 현장 도착했는데 반장님 집 불타고 있는 거 아닙니까? 하하"

급박한 순간이지만 막내의 농담에 긴장을 조금 내려놓고 구조차에 올라탔다.

"우리 동네는 길이 좁아서 펌프차랑 물탱크랑 못 들어갈 텐데.. 일단 구조차는 네비에 표시된 길보다는 옆골목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팀장님. 위치가 정확하게 어디냐면.. 음.."

지령서에 표기된 위치가 우리 집과 매우 가까웠다. 집과 번지수 하나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았고, 지령서엔 '옆 집이 불타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단다. 옆집에서 옆집이 불타고 있다고 하면 우리 집 아니면 다른 옆집일 텐데.. 내가 사는 층에는 두 가구밖에 없는데.. 장난전화인가?

동네에 도착하는 동안 방화복으로 갈아입고 하늘을 바라보니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구조차 뒷 셔터를 열고 문 개방 도구들을 챙겨 연기가 보이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매우 익숙한 건물로 펌프차 호스가 뻗어있고 이미 많은 소방관들이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불을 끄고 있었다. 건물 앞에 도착해서 보니...우리 집이었다...

순간 눈앞은 까맣고 머리 속은 하얬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그냥 익숙한 계단을 따라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 검은 연기에 벽지와 천장은 온통 까맣게 물들었고, 바닥은 아침에 미쳐 개고 나오지 못한 이불이 소방관들의 발자국으로 빼곡했다. 냉장고 옆엔 내가 껴안고 자는 애착 배게가 뒹굴고 있었고, 그 중앙엔 보란 듯이 발자국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어.. 저건 밟으면 안 되는데.." 빽빽한 연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10명 가까운 소방관 동료들이 주인 없는 집에 초대되어 있었다.

"불 다 꺼졌어. 나가. 나가."

어느 팀장님의 나가라는 손짓에 떠밀려 집을 나왔다. 내 집인데 누가 나가고 말고 하는 것도 조금 웃겼지만 난 이미 생각의 기능을 잃었기에 개의치 않았다. 우리 집 계단 하나하나가 이렇게 거리가 멀었나 싶을 만큼 긴 시간과 공간에 놓였다. 방화 헬멧을 벗고 터벅터벅 내려오니 옆집 아주머니께서 나를 향해 소리쳤다.

"저깄네!! 저깄어! 저 소방관 집이에요!! 아이고 어찌해쓰까잉."

출동 받고 달려간 화재 현장, 우리 집이었다....

"소방관 집에 불이 났다"


그 일이 있고 한 달간 남원소방서에서 슈퍼스타급 인기를 누렸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이전에 몰랐던 사람도 오가며 나의 거처와 안부를 물었다. 생일도 아닌데 느닷없이 치킨 쿠폰이 날아오는가 하면 여기저기 밥 한 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예전이었다면 내가 사나이가 체면이 있는데 어찌 공짜밥 넙죽넙죽 받아먹겠냐 했겠지만, 집이 없는데 체면이 무슨 소용인가. 집이 안정이 되면 집들이 한번 하겠다 말하고 먹을 수 있을 때 뱃속을 채웠다.

모텔을 전전하며 다니는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의례 편한 점도 있었다. 웬만한 일이면 이만큼 좋은 핑곗거리도 없었다.

"최반장, 이번 달까지 제출하는 동영상 얼마나 했어?"

"아 예.. 지금 한 15% 정도?"

"아니 왜 아직 그것밖에 못했지?"

"제가 집이 없어서요.."

"최반장 출근 복장 너무 편한 거 아닌가?"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신발이 불타서요.."

"최반장 요즘 수영장 다니고 있어? 하반기에 인명구조사 시험 봐야지."

"집이 불타서 수영할 여유가 없네요."

이전에 이런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들으면 뒤통수가 구멍 나도록 긁다가 제대로 답도 못하고 얼굴만 벌게졌을 텐데, 한동안 이 무지개 반사급 핑곗거리는 나를 슬기로운 소방생활의 길로 인도하였다.

다만 문제는 퇴근하고 일상으로 되돌아가 화재 피해민이 되었을 때였다. 새카맣게 탄 집은 봐도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화재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하여 창문을 부수고 들어온 센터 팀장님께서 서랍장 위에 놓인 내 사진을 보고 너무 놀랐단다. 그리곤 최대한 물건들이 파손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집안 대부분의 물건들은 사망해있었다. 옷과 이불만 빼고는 불에 탔거나 검은 연기를 먹어서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불이 꺼진 방 한쪽에 물건들을 밀어놓고 요가 매트 위에 누웠다. 천장을 보니 어쩜 이리도 내 마음처럼 새카맣던지 먹먹함이 밀려와 눈물도 났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계속 질문을 해보는데 돌아오는 건 깊은 한숨밖에 없었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솔직히 아주 잠깐이지만 화재현장에 도착해서 집 계단을 올라갈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혹시 몰래카메라인가? 누군가 케이크 들고 박수치면서 나오는 거 아니야? " "나 심사 진급했나 혹시?"

잠깐이었지만 만약 그렇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도 했었다. 인생사 뭐 그리 생각대로 돼간.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었다. 출동지령서 받아 든 순간부터 스멀스멀 들었던 불길함은 곧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역시 드라마와 같은 서프라이즈 한 장면들은 드라마일 뿐이었다. 이참에 드라마를 좀 줄여야지 안 되겠다. 인생이 드라마인데 뭐 더 볼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질문을 바꿔서 "이런 일이 나한테만 일어난 건가?" 싶은 생각에 소방관 선배들한테 물어봤다. 어느 소방관 소유의 비닐하우스에 불이 났었다는 건 들었지만 나처럼 본인 집에 불이 나서 본인이 불 끄러 출동한 케이스는 듣도 보도 못했다고 했다. 나와 같은 일을 겪은 불운의 동료가 생기면 조언도 얻고 위로도 좀 받을까 했는데 괜히 말을 꺼냈다가 더 우울해졌다.

여러 생각들 중에 한 가지 내 가슴을 푹 찌르는 일이 생각났다. 여름날 모여서 화재출동이 없다고, 마치 '불평'하듯이 얘기했던 것.

"나한테 익숙한 일이라고 남의 불행을 너무 쉽게 이야기했구나. 그 말을 돌려받은 건가?.."

쉿, 말조심.


화재 피해민이 되어보니 이만큼 고생스럽고 불편한 일이 따로 없었다. 당장 살 집이 없다는 막막함이 너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동안 집이 있어 가능했던 모든 생활이 한 번에 꼬이게 되었다. 수면, 식사, 운동, 빨래 심지어 바닥에 휴지 펴놓고 맘 편히 손발톱을 깎고 싶어도 그에 맞는 공간이 없었다. 모텔 생활을 마치고 잠시 들어살게 된 동기 집에서 손톱을 깎고 발톱으로 넘어가는 찰나에 동기가 불편하게 째려봤다. 발톱은 사방으로 튀니 나중에 집이 생기면 거기서 깎으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매정한 놈. 이런 크고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모이니 개인에게는 엄청난 재앙이었다. 그 외에도 당장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를 답답함, 재물과 추억을 동시에 잃은 상실감, 먹먹함, 두려움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어두운 감정들을 동반하는 게 바로 이 화재였다.

세상 일을 다 인과응보나 뿌린 대로 거둔다 식으로 생각을 하진 않았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도 아무 이유 없이 넘어져서 크게 다치곤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확실히 말조심은 해야 되겠다 생각은 들었다. 설령 내가 했던 말과 화재가 연관성이 없다 해도 내 머릿속은 이미 그 일 때문에 불이 났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불행의 씨앗이 될만한 일들은 입에 담지 말아야겠다.

사건이 있기 얼마 전에 동네 공원 놀이터에서 교복 입고 담배 피우는 학생들이 있길래, 소방관 아저씨라는 명분을 내세워 훈계하고 불조심하자는 약속까지 받아서 집으로 돌려보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니 창피함에 낯이 뜨겁다. 그때 아이들한테 "얘들아 담뱃불로도 큰불 얼마든지 난다. 나중에 어른 돼서 담배 피우면 꼭 비벼서 꺼라잉. 불조심하자." 라며 보냈는데, 요즘 그 일을 자주 곱씹게 된다. 보일러실 콘센트 스파크로도 큰 불이 나는구나. 마지막 인사는 하지 말걸.

소방관 집에도 불이 난다. 말조심하고 불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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