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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추픽추'.. 파스텔 톤 감성마을 탄생 비화 [해안선 1만리, 두 바퀴 여행]

김병기 입력 2021. 12. 05. 12:00 수정 2021. 12. 0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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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 1만리 : 동해안편] 해운대달맞이공원부터 을숙도②

[김병기, 권우성 기자]

 부산 감천문화마을.
ⓒ 권우성
 부산 송도해수욕장.
ⓒ 권우성
  
송도해수욕장에서 하루 밤을 묶었다. 오메가 형태로 육지쪽으로 폭 들어앉은 모래사장이 예뻤다. 1913년 일본인들이 송도유원주식회사를 설립해서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설해수욕장이다. 거북선 위쪽으로 해상케이블카가 지나갔다. 앞바다에는 화물선 등이 정박한 '묘박지'다. 뒤쪽은 해운대처럼 빌딩들이 들어섰다.

다음날 아침 커피숍에서 샌드위치로 때우고 찾아 간 곳은 감천문화마을이다. 감천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고갯길은 걸어서 올랐다. 옥녀봉과 천마산 사이에서 감천항을 바라보면서 하늘에 닿을 듯 아래로 이어진 형형색색의 지붕들. 흰여울길처럼 6.25 피난민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산복도로 마을이다.

"50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죄다 지붕이 시커먼 루핑 집이었어. 바람에 지붕이 날아갈까 봐 돌을 올려놓고 양쪽으로 새끼줄로 잡아놨었지. 제비집 같은 오두막집에 피난민들이 살면서 다 기어들어가고 기어나가는 흙집이었어. 대부분 태극도 믿으러 온 사람들이었지. 자갈치시장에서 김밥장사하고 엿장수 하고, 껌 팔고, 고물장수하고... 예전엔 다 거지들이었어."

손녀를 등에 업고 나온 홍 아무개 할머니(80)의 말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현기증이 나서 별이 보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 '별 보러 가는 계단', 작은 박물관, 행복발전소도 있었다. 등대 포토존과 북카페, 하늘마루 전망대, 카툰공방, 낙서갤러리, 빛의 집 등 사람 한 명 지나가기도 힘든 곳에 문을 연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많았다. 옆으로 서서 걸어야 통과할 수 있는 골목도 있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 권우성
 
 감천문화마을 골목길을 내려가는 할머니.
ⓒ 권우성
 
 감천문화마을 방탄소년단(BTS) 벽화.
ⓒ 권우성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길에서 쉬고 있는 할머니들.
ⓒ 권우성
 
 감천문화마을주민협의회 손판암 회장(82)
ⓒ 김병기
 
"한국의 마추픽추로 불립니다. 60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100% 판잣집이었죠. 태극도 신앙촌이었어요. 1975년에 주택보수 허가를 받아서 지은 집이 지금 모습입니다. 6평 집에 3대에 걸친 7식구가 산 집을 '빛의 집'으로 꾸며놨죠. 근대 역사 유물입니다. 2009년부터 진행된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코로나 이전까지는 한해 30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명소였는데...."

감천문화마을주민협의회 손판암 회장(82)은 말끝에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됐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감촌문화마을의 전경 사진은 사람의 심성을 따뜻하게 하는 감성적인 파스텔 톤이다. 그에게 예쁜 색채를 띠게 된 이유를 물었다.

"청색으로 벽과 지붕을 칠했는데 3분의 1이 남았다면 어떻게 할까요? 달라는 사람 주겠지요. 처음엔 원색이었는데, 물을 많이 섞어 더 연한 색이 되고... 이렇게 '정'으로 만든 마을입니다. 초등학생들도 이 마을을 만드는데 일조했죠. 밑에서 모래를 갖다 주면 5원을 받았어요. 벽돌 하나는 3원, 블록은 10원. 이 돈을 받고 학생들이 자재를 옮겼죠."

이렇게 일군 마을은 유물이 됐다. 한 명이 지나가기도 버거운 계단과 골목길에 새겨진 피난민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은 이 동네의 희망이 됐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신)

[을숙도] 회귀에 대하여
 
 부산 다대포항.
ⓒ 권우성
 
다대포항은 국가어항이라고 하지만, 규모는 예상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다. 낙동강 하구에 있어서 수심이 얕아 소형 선박을 정박시키고, 피항하기 좋은 항구이다. 작은 배들이 많이 정박한 포구 한쪽 급유소에서 긴 호스를 이용해 배에 기름을 넣는 모습이 신기했다. 큰 냉동공장 건물에선 커다란 크레인 같은 기구로 배에 직접 얼음을 쏟아 넣었다.

낙동강 하구를 거슬러 올라 동해안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을숙도 생태공원으로 향했다. 자전거 도로 군데군데 아름다운 조형물을 설치했다. 입을 쩍 벌린 커다란 물고기 몸에 알록달록한 꽃이 그려진 조형물 앞에 멈춰 섰다. 검게 빛나는 맑은 눈동자. 젊은 시절, 자취방에서 세상에 갈구하면서 읽었던 유진오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불빛조차 없는 방
그리움이 한결 짙어간다
보채며 설레이며 잠들어 누운 자리
쪽지 한장 써 놓고
살랏이 다녀간 이

아픈 숨결이
상한 벌레처럼
왼 몸에 꿈틀거리면
맥없는 팔길을 가슴에 얹고
몸을 틀어 돌아 눕는다

눈이 멀도록 기두리마
눈이 멀도록 기두린다
(유진오 시인 / 눈이 멀도록)

안내판에 써진 작품명은 눈이 멀도록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대구의 '회귀'였다.
 
 낙동강 하굿둑으로 가는 길에 만난 조형물 '회귀'.
ⓒ 김병기
 부산 을숙도 4대강 국토종주 낙동강 자전거길 종점.
ⓒ 권우성
 부산 사하구 낙동강하굿둑.
ⓒ 권우성
   
낙동강 하굿둑을 지나 을숙도 생태공원 앞에 도착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시점'이라고 적힌 팻말 앞에 '낙동강 자전거길'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안내판이다. 그 앞에는 큰 탑이 서 있다. '복지의 새 기지 낙동강 하굿둑'이라고 적힌 기념탑엔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익숙한 곳이었다. 4대강사업을 취재하면서 열 번 넘게 다녀간 곳이다.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산 강과 죽은 강을 기록했고, 어부의 배에 올라타 수차례 탐사를 했던 곳이기도 했다. 4대강으로의 귀환, 잠시 잊고 지냈던 4대강 살리는 일을 다시 시작하라는 뜻일까?

[두 바퀴, 동해안 여행을 마치며] 숨표와 쉼표... 다시 길이다

사실 길의 시작과 끝은 없다. 마음만 먹으면 그 어디서건 시작할 수 있다. 길이 아니라 마음을 접는 곳이 끝이다. 한 발짝만 떼면 도착할 수 있는 두 개의 지점, 이것을 잇는 길은 오만가지가 넘는다. 바로 갈 수 있고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갈 수도 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길은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다. 아니, 공간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다.

17박 18일 동안 3차례에 걸쳐 동해안 800여km를 자전거로 달렸다.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라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부산 을숙도까지 하루, 또는 3박 4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간 길로, 내비게이션이 지시한 대로만 가지 않았다. 때로는 마음 내키는 대로 빈둥거리며 '해찰'하듯 달렸다.

'업힐 지옥', '폭우 라이딩', 펑크, 막다른 길... 예상치 못한 상황도 속출했다. 처음엔 오르막길이 두려웠다. 동해안 자전거 여행을 계획할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도 했다. 이게 익숙해지자 나중에는 내리막길이 더 두려웠다. 페달을 한 번도 밟지 않고 1~2km를 무임승차하듯 이동하면 언젠가는 오르막이 시작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새옹지마 같은 삶이 그렇듯.

나는 혼자였지만 홀로 페달을 밟지 않았다. 새벽 항구에 자전거를 세워둔 채 어시장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어부와 잠수부들에게 다가가 말도 걸었다. 민박집, 식당 주인에게 시답지 않은 농담도 건네면서 동네 풍경, 음식 맛의 비결도 물었다. 그 말이 역사이고 문화였다.

숨표와 쉼표가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누각, 이름 없는 정자, 솔밭에 덩그러이 놓여 있는 바윗돌 위에 앉아서 바람을 쐬며 쉬어갔다. 기암괴석 해변길, 어떤 솔밭길은 2~3번 되돌아가 페달을 밟기도 했다. 해안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도 오래된 군상들이 남긴 명문장과 절창이 화석처럼 새겨진 역사문화 공간을 찾았다. 시간여행을 하며 쉬고 싶었다.

동해안 자전거 길을 달리면서 내 옆을 추월해가는 수많은 라이더들을 만났다. 그들의 속도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여행은 달리기가 아니었다. 내 마음 풍경을 살피는 시간이자 다른 사람을 응시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자전거를 세워둔 채 가파른 어촌 마을을 거슬러 오르면서 과거에 그 길을 올랐던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내 삶도 반추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부산터미널에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차창 밖으로 자전거 속도보다 더 빠르게 산이 지나갔다. 흑백필름처럼 구름에 떠 있듯 산이 흘러가는 모습은 신령스럽기까지 했다. 서울에 올라가면 다시 안개 속 같은 일상을 시작할 것이다. 강원도 고성에서 달려왔던 것처럼 어떻게 해서든 두 바퀴가 쓰러지지 않게 페달을 밟고 있겠지.

다시 길이다. 여행이 시작됐다.

 
[내가 간 길]
해운대달맞이공원-해운대해수욕장-동백섬-25의용단-자갈치시장-흰여울길-태종대-송도해수욕장-감천문화마을-다대포항-을숙도 생태공원

[인문·경관 길]
동백섬 :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 서쪽 끝에 있는 육계도. 겨울부터 봄까지 동백꽃이 많이 핀다. 해운대 이름의 유래가 된 '해운' 최치원의 시비가 서 있다.

25의용단 : 부산 수영사적공원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왜군에 항전한 25인의 의병을 모신 제단이다.

흰여울길 : 바산 영도다리를 건너 태종대에 오르는 고갯길에 나오는 마을이다. 절벽에 붙박히듯 살아갔던 6.25 피난민들의 삶을 추억할 수 있다.

태종대 : 부산 영도구에 있는 명승지이다.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을 보며 바다를 관망할 수 있다. 맑은 날에는 대마도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감천문화마을 : 부산 사하구 감천2동 일대에 태극도 신도들이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2009년 문화관광부의 '마을예술 프로젝트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낙후됐던 주거지가 문화마을로 바뀌었다.

[사진 한 장]
파스텔 톤의 감천문화마을 전경

[추천, 두 바퀴 길]
영도대교에서 흰여울길을 거쳐 태종대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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