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추픽추'.. 파스텔 톤 감성마을 탄생 비화 [해안선 1만리, 두 바퀴 여행]
[김병기, 권우성 기자]
▲ 부산 감천문화마을. |
ⓒ 권우성 |
▲ 부산 송도해수욕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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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해수욕장에서 하루 밤을 묶었다. 오메가 형태로 육지쪽으로 폭 들어앉은 모래사장이 예뻤다. 1913년 일본인들이 송도유원주식회사를 설립해서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설해수욕장이다. 거북선 위쪽으로 해상케이블카가 지나갔다. 앞바다에는 화물선 등이 정박한 '묘박지'다. 뒤쪽은 해운대처럼 빌딩들이 들어섰다.
다음날 아침 커피숍에서 샌드위치로 때우고 찾아 간 곳은 감천문화마을이다. 감천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고갯길은 걸어서 올랐다. 옥녀봉과 천마산 사이에서 감천항을 바라보면서 하늘에 닿을 듯 아래로 이어진 형형색색의 지붕들. 흰여울길처럼 6.25 피난민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산복도로 마을이다.
"50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죄다 지붕이 시커먼 루핑 집이었어. 바람에 지붕이 날아갈까 봐 돌을 올려놓고 양쪽으로 새끼줄로 잡아놨었지. 제비집 같은 오두막집에 피난민들이 살면서 다 기어들어가고 기어나가는 흙집이었어. 대부분 태극도 믿으러 온 사람들이었지. 자갈치시장에서 김밥장사하고 엿장수 하고, 껌 팔고, 고물장수하고... 예전엔 다 거지들이었어."
손녀를 등에 업고 나온 홍 아무개 할머니(80)의 말이다.
▲ 부산 감천문화마을. |
ⓒ 권우성 |
▲ 감천문화마을 골목길을 내려가는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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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천문화마을 방탄소년단(BTS) 벽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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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길에서 쉬고 있는 할머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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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천문화마을주민협의회 손판암 회장(82) |
ⓒ 김병기 |
"한국의 마추픽추로 불립니다. 60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100% 판잣집이었죠. 태극도 신앙촌이었어요. 1975년에 주택보수 허가를 받아서 지은 집이 지금 모습입니다. 6평 집에 3대에 걸친 7식구가 산 집을 '빛의 집'으로 꾸며놨죠. 근대 역사 유물입니다. 2009년부터 진행된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코로나 이전까지는 한해 30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명소였는데...."
감천문화마을주민협의회 손판암 회장(82)은 말끝에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됐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감촌문화마을의 전경 사진은 사람의 심성을 따뜻하게 하는 감성적인 파스텔 톤이다. 그에게 예쁜 색채를 띠게 된 이유를 물었다.
"청색으로 벽과 지붕을 칠했는데 3분의 1이 남았다면 어떻게 할까요? 달라는 사람 주겠지요. 처음엔 원색이었는데, 물을 많이 섞어 더 연한 색이 되고... 이렇게 '정'으로 만든 마을입니다. 초등학생들도 이 마을을 만드는데 일조했죠. 밑에서 모래를 갖다 주면 5원을 받았어요. 벽돌 하나는 3원, 블록은 10원. 이 돈을 받고 학생들이 자재를 옮겼죠."
이렇게 일군 마을은 유물이 됐다. 한 명이 지나가기도 버거운 계단과 골목길에 새겨진 피난민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은 이 동네의 희망이 됐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신)
▲ 부산 다대포항. |
ⓒ 권우성 |
다대포항은 국가어항이라고 하지만, 규모는 예상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다. 낙동강 하구에 있어서 수심이 얕아 소형 선박을 정박시키고, 피항하기 좋은 항구이다. 작은 배들이 많이 정박한 포구 한쪽 급유소에서 긴 호스를 이용해 배에 기름을 넣는 모습이 신기했다. 큰 냉동공장 건물에선 커다란 크레인 같은 기구로 배에 직접 얼음을 쏟아 넣었다.
낙동강 하구를 거슬러 올라 동해안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을숙도 생태공원으로 향했다. 자전거 도로 군데군데 아름다운 조형물을 설치했다. 입을 쩍 벌린 커다란 물고기 몸에 알록달록한 꽃이 그려진 조형물 앞에 멈춰 섰다. 검게 빛나는 맑은 눈동자. 젊은 시절, 자취방에서 세상에 갈구하면서 읽었던 유진오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불빛조차 없는 방
그리움이 한결 짙어간다
보채며 설레이며 잠들어 누운 자리
쪽지 한장 써 놓고
살랏이 다녀간 이
아픈 숨결이
상한 벌레처럼
왼 몸에 꿈틀거리면
맥없는 팔길을 가슴에 얹고
몸을 틀어 돌아 눕는다
눈이 멀도록 기두리마
눈이 멀도록 기두린다
(유진오 시인 / 눈이 멀도록)
▲ 낙동강 하굿둑으로 가는 길에 만난 조형물 '회귀'. |
ⓒ 김병기 |
▲ 부산 을숙도 4대강 국토종주 낙동강 자전거길 종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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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사하구 낙동강하굿둑. |
ⓒ 권우성 |
낙동강 하굿둑을 지나 을숙도 생태공원 앞에 도착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시점'이라고 적힌 팻말 앞에 '낙동강 자전거길'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안내판이다. 그 앞에는 큰 탑이 서 있다. '복지의 새 기지 낙동강 하굿둑'이라고 적힌 기념탑엔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익숙한 곳이었다. 4대강사업을 취재하면서 열 번 넘게 다녀간 곳이다.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산 강과 죽은 강을 기록했고, 어부의 배에 올라타 수차례 탐사를 했던 곳이기도 했다. 4대강으로의 귀환, 잠시 잊고 지냈던 4대강 살리는 일을 다시 시작하라는 뜻일까?
[두 바퀴, 동해안 여행을 마치며] 숨표와 쉼표... 다시 길이다
사실 길의 시작과 끝은 없다. 마음만 먹으면 그 어디서건 시작할 수 있다. 길이 아니라 마음을 접는 곳이 끝이다. 한 발짝만 떼면 도착할 수 있는 두 개의 지점, 이것을 잇는 길은 오만가지가 넘는다. 바로 갈 수 있고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갈 수도 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길은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다. 아니, 공간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다.
17박 18일 동안 3차례에 걸쳐 동해안 800여km를 자전거로 달렸다.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라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부산 을숙도까지 하루, 또는 3박 4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간 길로, 내비게이션이 지시한 대로만 가지 않았다. 때로는 마음 내키는 대로 빈둥거리며 '해찰'하듯 달렸다.
'업힐 지옥', '폭우 라이딩', 펑크, 막다른 길... 예상치 못한 상황도 속출했다. 처음엔 오르막길이 두려웠다. 동해안 자전거 여행을 계획할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도 했다. 이게 익숙해지자 나중에는 내리막길이 더 두려웠다. 페달을 한 번도 밟지 않고 1~2km를 무임승차하듯 이동하면 언젠가는 오르막이 시작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새옹지마 같은 삶이 그렇듯.
나는 혼자였지만 홀로 페달을 밟지 않았다. 새벽 항구에 자전거를 세워둔 채 어시장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어부와 잠수부들에게 다가가 말도 걸었다. 민박집, 식당 주인에게 시답지 않은 농담도 건네면서 동네 풍경, 음식 맛의 비결도 물었다. 그 말이 역사이고 문화였다.
숨표와 쉼표가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누각, 이름 없는 정자, 솔밭에 덩그러이 놓여 있는 바윗돌 위에 앉아서 바람을 쐬며 쉬어갔다. 기암괴석 해변길, 어떤 솔밭길은 2~3번 되돌아가 페달을 밟기도 했다. 해안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도 오래된 군상들이 남긴 명문장과 절창이 화석처럼 새겨진 역사문화 공간을 찾았다. 시간여행을 하며 쉬고 싶었다.
동해안 자전거 길을 달리면서 내 옆을 추월해가는 수많은 라이더들을 만났다. 그들의 속도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여행은 달리기가 아니었다. 내 마음 풍경을 살피는 시간이자 다른 사람을 응시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자전거를 세워둔 채 가파른 어촌 마을을 거슬러 오르면서 과거에 그 길을 올랐던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내 삶도 반추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부산터미널에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차창 밖으로 자전거 속도보다 더 빠르게 산이 지나갔다. 흑백필름처럼 구름에 떠 있듯 산이 흘러가는 모습은 신령스럽기까지 했다. 서울에 올라가면 다시 안개 속 같은 일상을 시작할 것이다. 강원도 고성에서 달려왔던 것처럼 어떻게 해서든 두 바퀴가 쓰러지지 않게 페달을 밟고 있겠지.
다시 길이다. 여행이 시작됐다.
[내가 간 길]
해운대달맞이공원-해운대해수욕장-동백섬-25의용단-자갈치시장-흰여울길-태종대-송도해수욕장-감천문화마을-다대포항-을숙도 생태공원
[인문·경관 길]
동백섬 :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 서쪽 끝에 있는 육계도. 겨울부터 봄까지 동백꽃이 많이 핀다. 해운대 이름의 유래가 된 '해운' 최치원의 시비가 서 있다.
25의용단 : 부산 수영사적공원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왜군에 항전한 25인의 의병을 모신 제단이다.
흰여울길 : 바산 영도다리를 건너 태종대에 오르는 고갯길에 나오는 마을이다. 절벽에 붙박히듯 살아갔던 6.25 피난민들의 삶을 추억할 수 있다.
태종대 : 부산 영도구에 있는 명승지이다.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을 보며 바다를 관망할 수 있다. 맑은 날에는 대마도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감천문화마을 : 부산 사하구 감천2동 일대에 태극도 신도들이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2009년 문화관광부의 '마을예술 프로젝트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낙후됐던 주거지가 문화마을로 바뀌었다.
[사진 한 장]
파스텔 톤의 감천문화마을 전경
[추천, 두 바퀴 길]
영도대교에서 흰여울길을 거쳐 태종대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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