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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양심수'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별세

정성원 입력 2021. 12. 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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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3일 오후 3시께 급성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1980년 5월에는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을 조직했다.

그러다 1981년 전두환 정권 시절 대표적 공안 사건인 '학림사건'에 연루돼 '고문기술자' 이근안(83)씨 등에게 모진 고문을 받은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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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정성원 기자 =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3일 오후 3시께 급성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1950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천북초, 예산중, 서울 성동고, 국민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고려대 노동대학원 석사, 순쳔향대 사회복지학 명예박사 과정을 밟았다.

고인은 1977년 출판사 광민사(현 동녘출판사)를 설립해 '유한계급론', '한국노동문제의 구조' 등 노동 관련 서적들을 냈다. 또 서울 용산 청과물시장에서 지게꾼으로 지내며 노동운동을 연구했다. 1980년 5월에는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을 조직했다.

그러다 1981년 전두환 정권 시절 대표적 공안 사건인 '학림사건'에 연루돼 '고문기술자' 이근안(83)씨 등에게 모진 고문을 받은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86년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고인을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하고, 고 김수환 추기경이 석방 탄원하면서 7년4개월간의 복역을 마쳤다.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학림사건을 조작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재심을 권고한 뒤 고인은 재심을 청구해 2012년 무죄가 확정됐다. 재심 권고 결정이 내려진 당시 고인은 "고문경관, 담당검사 등과 직간접적으로 만나 인간적으로 화해와 용서를 했다"며 "가해자들에 대해 원한과 증오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출소 후인 1989년에 '주간노동자신문', 1999년에 '노동일보'를 창간했다. 1996년부턴 사회단체 '인간의 대지' 대표를 맡았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인 2001년 3월부터 2002년 1월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복지노동수석비서관, 2002년 1월부터 7월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고인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 의약분업 사태 해결 등의 업적을 거뒀다고 평가받는다.

2007년부턴 기름값, 휴대전화비, 카드수수료, 약값, 은행 금리 등 다섯 가지를 '거품'으로 명명하고 인하를 요구하는 '5대 거품빼기 범국민원동본부' 상임대표를 역임했다. 2013년에는 국민석유주식회사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생전 독립운동가 안창호, 윤봉길의 평전을 내는 한편, 2019년부터 사단법인 5·18 윤상원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심복자씨와 형제 이향복, 예복, 건복(동녘출판사 대표), 화복, 영복(문화유통북스 대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고려대구로병원 장례식장 20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7일 오전 5시이며, 장지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 마련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jungs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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