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은마, 여긴 5억 저긴 11억..임대차3법에 '희한한 3중가격'

김원 입력 2021. 12. 5. 17:55 수정 2021. 12. 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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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헬리오시티 아파트(앞)과 올림픽훼미리타운 아파트(뒤) 모습. 2021.4.20/뉴스1


정부가 임차인 보호를 위해 지난해부터 시행한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보증금 증액을 5% 이내로 제한하는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 전체 계약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데다 계약의 형태에 따라 계단식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삼중가격'도 심화하고 있다. 여기에 전세를 월세 낀 반전세로 전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5일 중앙일보가 지난 6월부터 11월(계약 일자 기준)까지 6개월간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올라온 서울 아파트 임대차(전·월세) 거래를 조사한 결과, 전체 신고 계약(5만1187건)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계약은 전체의 4분의 1 수준인 1만2953건(25.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말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한 임대차 2법을 도입한 데 이어 올해 6월 전월세신고제를 시행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전·월세신고제로 수집한 거래정보 중 전체 계약 기간(월 단위), 갱신·신규 계약 구분, 갱신요구권 사용 여부, 종전임대료 등을 새롭게 공개하고 있다.

송파구 헬리오시티 임대차 계약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계약갱신청구권 쓰면 5% 이내, 안 쓰면 19% 증액

정부는 지난해 보증금 증액을 5% 이내로 제한하는 갱신청구권을 도입하면서 임차인의 임대료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 달리 갱신청구권 활용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사는 박모씨는 "지난 8월 집주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 재계약하지 않고 본인이 입주하겠다고 말해 어쩔 수 없이 보증금 30%가량 증액된 가격에 재계약할 수밖에 없었다"며 "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같은 단지, 같은 면적과 (보증금이) 거의 1억원 차이 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박씨 사례와 같이 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은 갱신 계약(전세→전세)의 경우 보증금이 평균 18.8% 증액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성북구가 보증금 증액률 25.3%로 가장 높았고, 용산구(23.5%), 강동구· 종로구(23.3%) 등 순이었다. 송파구(21.9%), 강남구(21.4%), 서초구(19.6%) 등에서도 갱신청구권을 쓰지 않은 보증금이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7억, 11억, 13억원…전세 '삼중가격' 심화

신규 계약과 갱신계약, 갱신청구권 행사 여부 등에 따라 전세 보증금 차이가 벌어지는 '삼중가격' 현상도 심화했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의 2년 전 전세 보증금 시세는 6억원 후반대에서 9억원 정도였다. 이번에 갱신청구권을 행사한 재계약의 경우 2년 전 시세 5% 이내 보증금 증액이 이뤄지면서 2년 전과 큰 차이 없는 7억~9억원 사이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송파구 헬리오시티 삼중가격 현상.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재계약한 경우 9억~11억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신규 계약은 이보다 비싼 보증금 11억~13억원에 거래됐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조사 기간 이 아파트 전용 84㎡의 전세 계약은 31건 이뤄졌는데, 보증금은 5억1450만~11억5000만원으로 최저가와 최고가의 차이가 6억원 이상 벌어졌다.


7억원 전세가 7억+130만원 월세로…"전세의 월세화"

기존 임대차 계약이 전세에서 월세로 변경된 사례도 조사 기간 656건으로 나타났다. 강남구 대치동 대치SK뷰(전용 93.48㎡)의 경우 지난 10월 기존 보증금 16억5000만원이던 전세 계약이 보증금 16억5000만원에 월세 250만원으로 전환됐다. 송파구 헬리오시티(전용 84.98㎡)에서도 지난 10월 보증금 7억원짜리 전세에 월세 130만원이 추가돼 재계약됐다. 이처럼 보증금이 같거나 증액되고, 월세가 더해진 계약은 554건이었고, 이 가운데 100만원 이상 월세가 추가된 사례도 38건이나 됐다.

기존 월세 계약에서 월세가 증액된 경우는 2544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보증금과 월세가 모두 증액된 사례도 460건이었다. 강남구 대치동 동부센트레빌(전용 145.83㎡)의 경우 보증금 16억원, 월세 150만원에서 각각 18억원, 250만원으로 갱신됐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 2019.8.20/뉴스1

잠실엘스 월세 비율 69%…신규 계약도 월세 비중↑

신규 전·월세 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5678가구 규모의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의 경우 지난 6월부터 전·월세 신규 계약이 119건이었다. 이 가운데 월세가 조금이라도 낀 반전세가 전체의 68.9%인 82건으로 나타났다.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도 월세 낀 계약이 전체의 64.1%(25건/39건)를 차지했다.

임대차 3법으로 보증금 증액이 제한되면서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이 늘고 있는 데다 크게 뛴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세입자가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부담이 커지면서 이런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서초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종부세 부담이 커지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고 임대료를 최대한 높여서 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갱신청구권을 행사한 임차인들의 계약이 끝나는 내년 8월부터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내년 상반기 중에 갱신청구권을 한 차례 사용한 전세 이주 수요가 몰리면 집주인들은 4년 치 인상분을 받으려 해 시장을 더 자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산업연구원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전국 주택 전셋값은 6.5% 상승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올해 예상 상승률(4.6%)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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