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박상욱의 미래를 묻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핵으로 떠오른 양자과학기술

입력 2021. 12. 06. 00:20 수정 2021. 12. 0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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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체인저’ 양자컴퓨터


박상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시커모어. 구글이 2019년 자체 개발한 53개 큐비트 양자컴퓨터다. 네이처 논문으로 공개된 시커모어는 수퍼컴퓨터로 1만 년 이상 걸리는 연산을 단 200초 만에 풀어냈다. 쭈충즈(祖沖之) 2호. 지난 10월 중국이 발표한 구글을 뛰어넘는다는 66 큐비트 양자컴퓨터다. 중국 양자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판젠웨이(潘建偉)가 이끄는 연구진이 개발했다.

기술 냉전이라고까지 불리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양자정보과학으로 번지고 있다. 양자정보과학이 정보통신산업과 경제, 국가 안보, 나아가 미래 과학기술 발전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는 화웨이의 5G 통신장비에서 발견된 데이터 백도어 논란에서 촉발되었다고 하지만, 실은 G2로 부상하는 중국의 도전에 대응한 것이었다. 미국은 무역 규제를 통해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고,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중국과 치열한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의 산업기술뿐 아니라 미래의 첨단 기초과학에서도 격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 사활 건 미·중의 양자컴퓨터 경쟁
수퍼컴 1만년 계산 200초만에 풀어
구글 시커모어에, 중국은 쭈충즈
“한국 양자과학 기술 턱없이 부족”

양자정보과학은 양자과학과 정보과학이 합쳐진 분야다. 일반적으로 양자컴퓨터·양자암호통신·양자센서·양자물질·양자소프트웨어·양자시뮬레이션 분야의 과학기술을 통칭한다. 과학의 영역인지 기술개발의 영역인지 모호하게 들리는 이유는 양자정보과학의 특징 때문이다. 양자정보과학은 양자 현상에 관한 물리학, 양자 현상을 정보의 단위로 활용하는 컴퓨터과학, 양자를 관측하고 양자상태를 제어하기 위한 전자공학 등이 모두 필요한 융복합 분야다.

지난 201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에서 관람객들이 상업용 양자컴퓨터 ‘IBM Q 시스템 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양자(quantum)란 어떤 물리량의 더 이상 작아질 수 없는 단위, 또는 구별되는 특정한 물리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면 전하량의 기본 단위는 전자 1개의 전하량이고, 빛의 최소 단위는 한 개의 광자(光子)다. 전자의 스핀은 한 쌍의 양자상태를 가진다. 원자 내부의 에너지도 층층이 양자화되어 있다. 양자 수준의 극히 작은 세상에서는 일상 세계와 다른 물리현상이 일어난다. 양자 현상은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를 만들 때 회로의 선폭을 좁히는 것은 집적도를 높이고 전력 소모를 줄이는 데에 필수적이지만 한없이 좁힐 수는 없다. 회로를 타고 흐르는 전자가 터널링(tunneling) 효과 때문에 엉뚱한 곳으로 튀기 때문이다. 광통신·의료기기·정밀가공·조명 등에서 널리 사용되는 레이저도 양자 현상의 결과다.

비트와 큐비트

확률은 양자 현상의 중요한 특징이다. 양자 세계에서는 관측되기 전까지 상태를 알 수 없으며 확률적으로 두 상태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양자 중첩이라고 한다. 기존 디지털 컴퓨터의 정보 단위인 비트(bit)는 0과 1 가운데 한 상태만을 가진다. 반면 양자 중첩은 두 개 상태의 조합 만큼의 정보를 한 번에 다룰 수 있게 한다. 양자컴퓨팅의 기본 정보 단위인 큐비트(qubit)는 양자 중첩된 확률적 상태를 포함해 네 개의 정보를 한 번에 다룬다. 큐비트 수를 n개로 늘리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2의 n제곱개로 늘어난다. 그만큼 연산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진다.

또 다른 양자 현상인 양자 얽힘도 양자정보과학의 모든 분야에 걸친 핵심 개념이다. 한 쌍의 얽힌 양자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얽힌 상태를 유지하는데, 이 중 하나를 관측해 상태가 정해지면 다른 하나의 상태도 정해진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양자 현상을 설명한 이유는, 양자정보과학이 인류가 아직 완전히 알아내지 못한 과학의 영역과, 어쨌든 관측과 부분적인 제어가 가능한 현상을 응용하는 기술의 영역이 겹쳐져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향후 3년내 ‘양자 우위’ 실현될 듯

양자컴퓨터는 물리적으로 구현된 특별한 양자 환경을 필요로 한다. 구글과 IBM이 개발한 양자컴퓨터는 모두 절대온도 0도(-273℃) 근처의 극저온에서 초전도 조셉슨 소자의 양자계를 사용한다. 양질의 양자계를 구현하고 유지하는 것 자체가 극저온 물리학의 도전과제다. 큐비트를 활용해 연산을 수행하도록 하는 양자컴퓨팅 알고리즘, 나아가 양자컴퓨팅 언어를 개발하는 것은 컴퓨터공학의 과제다. 양자컴퓨터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다. 하지만 보안 암호 해독과 같은 특정한 연산 성능에서는 이미 기존 디지털 컴퓨터를 능가하는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기에 이르렀다. IBM은 지난 11월 127 큐비트 프로세서 ‘이글’을 발표했고,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아이온큐도 양자컴퓨터 개발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터가 기존 수퍼컴퓨터의 성능을 능가하는 ‘양자 우위’에 도달하는 시점을 향후 3년 내외로 보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컴퓨터 기술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대규모 연산과 정보처리가 필요한 여러 과학기술 분야의 비약적 발전을 촉발할 수도 있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중국 12개 기업에 대한 양자컴퓨팅 기술 수출 제한을 발표했다. 미 정부는 양자컴퓨팅을 핵심전략기술로 지정하여 기술 격차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양자암호통신은 중국이 세계 최고 수준

양자컴퓨터는 빅테크 기업들을 앞세운 미국이 선도하고 중국이 추격하는 형국이지만, 양자암호통신에서는 중국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양자암호통신은 얽힌 광자쌍을 이용해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암호키를 분배하는 것이 핵심이다. 양자는 복제가 불가능하고 도청이나 감청을 시도하면 양자 상태가 바뀌어 즉시 감지할 수 있다. 그래서 도·감청이 불가능한, 궁극의 보안 통신으로 여겨진다. 중국은 얽힌 광자쌍을 이용한 유무선 양자암호통신 기술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암호를 푸는 것이 특기인 양자컴퓨터가 창이라면 양자암호통신은 방패다. 양자정보과학이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이유다.

중국이 양자정보과학에서 미국을 추격하고 있는 것은 과학기술 전반에 대한 투자가 막대하고, 최근 성과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과학 분야 학술지 논문 수에서 미국을 앞질렀다. 전 세계 논문 다섯 편 중 한 편이 중국 발(發)로, 유럽 전체와 맞먹는다. 국가 연구개발(R&D) 지출은 연평균 17.3% 증가하며 가파르게 상승해 수년 내에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지출 비중은 2.15% 수준인데, 한국의 GDP 대비 연구개발지출이 4.55%(2020년)이고 일본이 3.21%이니, 한국과 일본의 산업구조를 닮아가는 중국은 R&D 투자를 계속 늘릴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논문 수와 연구개발지출은 연구개발활동의 총량을 가늠하는 지표다. 중국은 조만간 세계에서 R&D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최근 중국의 매서운 추격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미·중 패권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전략은 무엇일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간 중국의 추격은 주로 기술 수명 주기가 짧은 산업부문에서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인터넷 상거래, 온라인 게임, 스마트폰과 같은 분야가 대표적이다.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되는 인공지능 기술의 경우, 기계학습에 필수적인 데이터의 양과 기계학습을 돕는 인력의 규모, 그리고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개념이 서구 민주주의 국가와는 다른 국가 체제가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미국혁신경쟁법(USICA)’이라는 수퍼 패키지 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 제목부터 직설적인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법’ 등이 포함됐다. 이 패키지의 7개 세부 법안 중 ‘끝없는 프런티어 법(Endless Frontier Act)’은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막대한 추가 투자와 미국판 국책 원천기술 개발사업이라고 할 만한 정책을 담고 있다.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담당해 온 미국과학재단(NSF)을 과학기술재단(NSTF)으로 개편하는 내용은 미국 과학계 내에서 찬반양론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런 동향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오늘날의 첨예한 과학기술 경쟁에서 기초과학과 첨단기술이 따로따로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양자과학기술 투자 시기 5년 놓쳐”

한국의 양자정보과학기술 현황

양자정보과학으로 돌아가 보자.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11월 16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양자기술특별위원회의 첫 회의가 열렸다. 한국의 양자정보과학 수준은 선도국과 격차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 커뮤니티도 크지 않다. 양자과학기술포럼 의장을 맡고 있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박제근 교수는 한 토론회에서 “국내 양자과학기술 연구개발 투자와 전문 인력은 경쟁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했어야 할 시기를 “5년 정도 놓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양자특위는 ‘2030년대 양자기술 4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양자정보과학 분야는 과거 추격기의 방식대로 응용기술개발을 중심으로 한 ‘빠른 2등’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연구역량을 냉철히 판단하고 중장기적인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제협력 전략도 필요하다. 기초과학과 첨단기술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접근, 그리고 과감한 투자가 필수다.

■ ◆박상욱

「 과학도 출신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다. 서울대에서 화학으로 학ㆍ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으로 건너가 서섹스 대학에서 과학기술정책학으로 다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와 과학사및과학철학협동과정 교수이며 과학기술과미래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등을 지냈다. 과학과 국가정책을 잇는 연구와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상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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