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중국읽기] 『추악한 중국인』 사라지나

유상철 입력 2021. 12. 06. 00:29 수정 2021. 12. 0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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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나온 보양의 중국인 비판서 『추악한 중국인』
'장독' 문화 탓에 중국인이 폐병 환자 됐다고 일갈
500만 부 이상 팔렸으나 2024년 절판될 운명에 놓여

중국과 대만의 양안(兩岸) 사이에 바람 잘 날이 없다. 대만해협 위로 중국과 대만의 전투기만이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하는 게 아니다. 문학 작품을 두고도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진다. 자기 민족을 향해 독설을 퍼부은 대만 작가 보양(柏楊)의 작품 『추악한 중국인(丑陋的中國人)』을 둘러싸고서다. 책이 나온 건 1985년의 일이다. 1920년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태어나 49년 대만으로 건너온 보양이 대만 관리의 치부를 파헤치는 글을 써 9년 옥살이를 하는 등 산전수전 다 겪고 환갑이 넘어 65세 때 쓴 작품이다. 책은 중국인의 노예근성을 지적한 루쉰(魯迅)의 『아Q정전』 이래 가장 통렬하게 중국과 중국인, 그리고 중국문화를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만 작가 보양은 1985년 중국과 중국인, 중국문화를 통렬하게 비판한 『추악한 중국인』을 펴내 중국과 대만은 물론 세계 화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인의 치부 들추기에 나선 보양은 중국인의 첫 번째 특징으로 “더럽고 무질서하며 시끄럽다(髒, 亂, 吵)”고 일갈한다. “중국인이 얼마나 더럽고 지저분한지는 부엌을 살피면” 되고 “시끄럽기로 말하자면 천하무적”이라고 꼬집는다. 두 번째 특징은 ‘둥지 안에서 싸운다(窝里鬪)’는 내분이다. 중국인 개개인은 모두 용과 같지만 “세 사람, 즉 세 마리 용이 모이면 돼지나 벌레가 되고 만다”고 탓했다. 또 다른 특징으로 “죽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死不認錯) 태도”를 꼽았다. “잘못을 덮기 위해 중국인은 더 큰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거짓말을 하는 등 더 많은 죄과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보양은 그러면서 중국인을 ‘폐병 3기 환자’에 비유했다.

대만 작가 보양이 쓴 『추악한 중국인』은 1986년 중국 대륙에서 출판됐으나 이듬해 출간이 금지됐다. 이후 2004년 재판이 허용됐다. [중국 베이징청년보망 캡처]

그럼 중국인은 왜 폐병 환자가 됐나. 보양의 진단에 따르면 중국의 ‘장독(醬缸) 문화’ 때문이다. “중국 문화는 춘추전국시대 가장 찬란하게 발전했으나 점차 유교의 통제를 받기 시작했다. 후한시대 이르러 조정은 모든 지식인의 발언이나 문장은 스승의 가르침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이게 ‘사승(師承)’이다. 사승을 넘어서면 학설 자체가 성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법을 어기는 것으로 규정됐다. 이렇게 해서 중국 지식인의 사고력이 말살됐다. 자연히 공자 이후 2000년 넘게 단 한 사람의 사상가도 나오지 못했다. 글자를 아는 사람은 공자의 학설에 주를 달 뿐이다. 그렇게 깊이 고인 물에서 생존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깊은 연못, 즉 죽은 물이 바로 중국 문화의 ‘장독’이다. 장독에서 나는 냄새가 중국인을 못나고 속 좁게 만들었다”는 게 보양의 주장이다.

대만 작가 보양(왼쪽)과 부인 장샹화의 1990년대 모습. 시인 장샹화는 남편의 저작 『추악한 중국인』의 일부 내용이 대만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걸 반대한다. [중국청년보망 캡처]

외부의 물건도 중국에 들어오기만 하면 변질되는 데 예를 들면 중국의 민주는 ‘너는 민(民), 나는 주(主)’ 이런 형태라고 보양은 말했다. 책이 출간되자 보양 인터뷰에 나선 일본 기자들이 빈정거리는 투로 질문했다. “일본인이 중국인을 더 깔보게 됐다. 동포에게 미안하지 않은가”라고. 그러자 보양은 “중국인의 단점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엔 반성할 줄 아는 신세대 중국인이 탄생할 것”이라고 반격했다. 책은 86년 중국 대륙에서도 출판돼 격렬한 문화적 자성 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대륙에선 이듬해 금서로 지정됐다가 2004년에야 해제됐다. 500만 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알려진다.

보양의 『추악한 중국인』은 중국 대륙에서도 큰 인기를 얻어 500만 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 환구망 캡처]

보양은 2008년 사망했는데 그로부터 13년 뒤인 최근 이 책이 다시 양안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발단은 대만에서 책을 출판해온 위안류(遠流)출판사가 책의 일부 내용을 대만 중학교 1학년 교재에 수록했으면 한다는 제안을 받으면서다. 교과서에 내용이 들어가는 건 명예로운 일이지만 보양의 사망 이후 대신 판권을 행사하는 부인 장샹화(張香華)가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역사를 아는 성인을 대상으로 쓰인 책인데 아직 국가관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에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실제는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 정부가 2016년부터 계속해서 이 같은 제안을 해오고 있는데 그 의도가 중국을 비하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시인이기도 한 장샹화는 대만 정부가 ‘중국사’를 동아시아 역사의 관점에서 가르치는 것에 불만이다. 대만 정부가 중국과는 별개라는 입장을 고취하는 것에 남편 보양의 작품이 이용되는 게 싫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보양이 사망한 뒤 『추악한 중국인』의 판권을 갖고 있는 부인 장샹화는 2024년 출판사와의 계약이 끝나면 더는 책을 내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그러자 신이 난 건 중국이다. 신화사(新華社)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이 재빨리 장샹화 인터뷰에 나서며 『추악한 중국인』이 출간 50년 만인 오는 2024년이면 완전히 절판될 것이라는 소식을 내보내고 있다. 장샹화에 따르면 보양은 생전에 “중국이 발전하면 이 책을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하곤 했는데 중국 대륙이 이제 어느 정도 가난 구제(扶貧)에 성공해 먹을 밥이 있고, 뒷일을 볼 화장실이 있는데 더는 책을 발행할 필요가 없지 않으냐는 이유에서다. 현재 책은 대만에선 위안류출판사, 대륙에선 인민문학출판사가 발행하고 있으며 2024년으로 계약이 끝난다. 이후 더는 출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덩치가 커지며 또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모양새다. 그러나 궁금증은 남는다. 책의 절판과 함께 현실 세계에서의 ‘추악한 중국인’도 완전히 사라질까 하는 점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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