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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갖다 앉혀놔.." 의원도 당직자도 '여성'이면 당하는 공격

장예지 입력 2021. 12. 06. 05:06 수정 2021. 12. 0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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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지방자치발전소 '여성정치인 대상 폭력 실태조사'
게티이미지뱅크

“경선 과정에서 상대 남성 (후보가) ‘누구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려 문제 삼았더니 ‘처녀 아니잖아. 처녀야?’라는 말을 들었다.”(서울시의원) “(유권자가) 정치경력이 오래된 여성의원한테도 (악수할 때) 손을 잡고서 손바닥 안쪽을 긁는 경우 아주 많다.”(국회의원)

정치하는 여성은 남성이 겪지 않는 ‘성적 공격’을 받는 일이 흔하다. 같은 당 정치인조차 그를 동료보다는 성별 고정관념에 근거한 여성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중심적 정치 구조, 이를 여과 없이 전하는 미디어 탓에 지역 유권자 역시 여성정치인을 능력보다는 편견의 틀에 가두는 일이 잦다. 특히 선거철에는 정치하는 여성들에 대한 정신적·상징적·성적 폭력이 늘어난다.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와 지방자치발전소는 정치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여성폭력 및 성차별·성희롱 실태 등을 올해 6~9월, 지난해 6~7월 각각 조사한 뒤 보고서를 발간했다. 5일 <한겨레>가 입수한 ‘정치영역 여성폭력 방지를 위한 외국의 입법례 및 국내 입법화 방안연구’, ‘지방의회 여성의원에 대한 성차별·성희롱·성폭력 실태’ 보고서를 보면 국회의원부터 시의원, 보좌진, 당직자에 이르기까지 권한과 역할의 차이와는 상관 없이 이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의 유형은 비슷했다.

최근 최배근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기본사회위 공동위원장은 이수정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과 사퇴한 조동연 전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나란히 올리고 “차이는?”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처럼 선거철 여성후보자나 선거운동원들은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정신적, 성적 폭력 상황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았다. 한 지방의원은 “선거과정에서 ‘여성공천제 때문에 여자를 갖다 앉혀놓고 난 피해를 봤다’며 떠들고 다니는 (의원도) 있다”고 했다. 한 여성 당직자는 “상대 선거운동원들의 ‘얘는 못생겼는데 왜 나와서 난리야’라는 외모평가는 기본”이라고 했다. 한국젠더법학회와 젠더정치연구소, 한국여성정치연구원 등이 참여한 민주당 보고서는 “여성에 대한 폄하와 멸시를 통해 여성의 정치적 능력과 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유튜브나 에스엔에스, 언론을 통한 성적 폭력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여성정치인 사진에 “역시 영계가 좋지”라거나 “나이 들면 여자도 아님” 등의 표현이 붙고, 낙서나 보정이 가해진 여성의원 사진이 떠도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시의회 여성의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절반에 달하는 의원들이 ‘성차별적이고 혐오적인 표현의 대상이 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여기에는 언론의 왜곡 보도도 한몫을 한다. 한 지방의원은 “(자신에 관한) 기사 중엔 ‘울먹이면서 본회의장에서 뛰쳐나가’ 제목이 달린 적도 있다. 영상이 다 있는데 우는 게 어딨냐고 항의했다. ‘공사 구분을 못하고 감정 컨트롤도 못하는 철없는 어린 여성시의원으로 공격 포인트를 잡았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성정치인이 폭력적 상황에 노출돼도 동료의원의 도움은 소극적이었다. 제도적 장치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한 지방의원은 “한 정당에서 남성-여성 의원간에 (갈등이) 발생하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며 덮으려고 하거나,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방의원은 “언론에 (성비위 사건이) 터지니까 (가해자가) 제명됐는데 (그 이후) 저의 모든 활동이 저평가됐다. 우리 정당에서는 한번도 도와주질 않았다”고 했다. 민주당 보고서는 “(피해 당사자도) 자신의 정치 경력과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이러한 폭력에 침묵하거나 ‘여성정치인의 삶을 사는 것의 대가’로 수용하기 때문에 정치영역의 여성 폭력이 비가시화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회와 지방의회 윤리 규정 재정비를 통해 성폭력 예방부터 고발 처리, 구체적 배상과 징계 등을 명시한 실효성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의원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한 김은경 세종리더십개발원장은 캐나다 사례를 들며 “캐나다 하원의원은 ‘성희롱 없는 근무환경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행동강령 준수를 서약한다. 임기 시작부터 이 행동강령 관련 정보를 의원들에게 제공해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보고서 연구책임자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현재 정치영역에서 벌어지는 성적 폭력에 대한 규모조차 알지 못한다. 정부와 국회 차원의 실태 조사가 있어야 하고, 국회 윤리강령에도 성평등 관련 조항을 넣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당을 뛰어넘는 여성 의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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