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휘, 뮤지컬 번역과 작곡·작사 사이를 쉼없이 달렸다

장지영 2021. 12. 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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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 및 공동작사 맡은 '작은 아씨들', 7~2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공연
작곡가, 작사가 그리고 번역가로 활동하는 박천휘가 6일 세종문화회관 내 서울시뮤지컬단 연습실에서 '작은 아씨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은 150년 넘게 사랑받는 고전이다. 아버지가 남북전쟁에 참전한 후 어머니와 꿋꿋하게 살아가는 네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1868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연극,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됐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아씨들’이 영화, 연극, 뮤지컬로 각각 선보여졌다. 영화는 할리우드산이지만 연극과 뮤지컬은 국내 창작진이 만든 것이다.

서울시뮤지컬단이 선보인 뮤지컬 ‘작은 아씨들’은 작가 한아름, 작곡가 박천휘, 연출가 오경택 등 국내 최정예 창작진과 손잡고 만든 것이다. 소설 원작의 세 버전 가운데 가장 마지막인 12월에 나왔다. 개막 이후 호평받았지만 서울시의 코로나19 방역 긴급조치에 따라 세종문화회관이 2주간 문을 닫으며 공연 횟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7~2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다시 오르는 뮤지컬 ‘작은 아씨들’은 지난해의 아쉬움을 풀어줄 전망이다. 올해 재공연을 위해 다시 뭉친 창작진 가운데 박천휘 작곡가 겸 작사가를 만나 작품 이모저모를 들어봤다.

지난해 초연 당시 호평에도 코로나19 여파로 공연 기간 단축

“연말 가족극이지만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나는 등 반응이 좋던 상황에서 공연이 단축돼 아쉬웠어요. 올해 재공연은 캐스팅에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작품 자체는 지난해와 다르지 않습니다.”

박 작곡가는 서울시뮤지컬단이 지난해 연말 가족극으로 ‘작은 아씨들’을 정하게 된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년 전 서울시뮤지컬단이 창작진을 꾸린 뒤 작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박 작곡가가 ‘작은 아씨들’을 제안한 것이다.

“2년 전 서울시뮤지컬단이 새로운 가족극을 위한 창작진을 꾸렸을 때 작품은 확정되지 않았어요. 그즈음 제 아내가 작품 소재로 소설 ‘작은 아씨들’은 어떠냐며 묻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연말 가족극으로 딱 맞았죠. 최근 국내 공연계의 트렌드가 된 여성 서사로서도 매력적이고요. 그래서 서울시뮤지컬단과 한아름 작가 등 다른 창작진에게 살짝 제안했더니 다들 너무 괜찮다는 거예요.”

지난해 초연된 서울시뮤지컬단의 '작은 아씨들'. 세종문화회관 제공

그런데, 서울시뮤지컬단에서 ‘작은 아씨들’ 공연을 준비한 지 얼마 안 돼 할리우드 동명 영화의 국내 개봉 소식이 들려왔다. 원작 소설이 7번(6번째는 현대적 각색)이나 영화화될 정도로 인기 있는 고전이지만 하필이면 같은 해에 먼저 개봉하는 바람에 두 사람을 비롯해 창작진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레타 거윅 감독, 시얼샤 로넌·엠마 왓슨·티모시 샬라메 등 스타들이 출연한 영화 ‘작은 아씨들’ 국내외에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할리우드 영화 개봉했지만 창작 뮤지컬 매력으로 승부

“솔직히 영화를 보고 ‘우린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잘 만들었더라고요. 현대적 감성으로 원작을 재해석한 것이 우리 콘셉트와 비슷했거든요. 그래서 작품을 준비하는 내내 부담을 느꼈는데, 관객들이 영화와는 다른 뮤지컬의 매력을 알아주셔서 기뻤습니다.”

‘작은 아씨들’은 영화만이 아니라 브로드웨이에서 2005년 뮤지컬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다만 겨우 4개월 반 공연하고 막을 내릴 정도로 성공적이진 못했다. 박 작곡가의 경우 혹시라도 영향을 받을까 봐 (영상으로 남은) 뮤지컬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은 아씨들’ 넘버들은 알고 있었지만, 전체 공연을 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작품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면서 “우리 작품은 한국 관객에게 맞게 현대적인 재해석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작은 아씨들’의 분량이 방대한 데다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다 보니 무대화가 쉽지는 않았다. 특히 전형적인 해피 엔딩 대신 열린 결말로 끝내는 것에 대해 그는 한아름 작가와 한동안 줄다리기를 하기도 했다.

“여운을 주는 결말로 끝내려면 마지막 넘버를 빼야 했어요. 하지만 작품을 마무리하며 가장 정성을 쏟아부은 곡이라 빼기가 쉽지 않았어요. 여러 차례 회의 끝에 제가 마지막 넘버를 빼니 모두들 기뻐하더라고요.”

수많은 라이선스 공연의 번역가로 먼저 주목

박천휘가 번역한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정동극장 제공

박 작곡가는 그동안 ‘마라, 사드’ ‘필로우 맨’ ‘트레인스포팅’ 등 30여 편의 연극 음악을 담당했으며 뮤지컬 ‘토킹’ ‘52blue’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무성영화 변사 공연 ‘청춘의 십자로’ 등의 음악을 작곡했다. 다만 공연계에는 그동안 ‘쓰릴 미’ ‘빅 피쉬’ ‘넥스트 투 노멀’과 연극 ‘필로우 맨’ 등 수많은 라이선스 공연의 번역가로 먼저 이름을 떨쳤다. 특히 국내에 미국 뮤지컬계의 거장으로 최근 타계한 작곡가 겸 작사가 스티븐 손드하임과 그의 계승자로 손꼽히는 마이클 존 라키우사를 국내에 소개한 일등공신이다.

“국내 뮤지컬계에선 대본을 쓰는 작가가 작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본을 쓴 작가가 가사를 자신의 영역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외 뮤지컬계에서 작가와 작사가의 영역은 다릅니다. 가사의 경우 음악과의 밀접성 때문에 좀 더 전문적인 작사가의 영역으로 봅니다. 제가 뮤지컬 번역을 시작한 것도 드라마를 다듬으면서 가사를 더 많이 써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커리어를 보면 문학이나 음악을 전공했을 것 같지만 박 작곡가는 연세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학과 공부보다는 학내 동아리인 노래패 ‘울림터’ 활동에 몰두했다. 울림터는 김민기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 등의 영향으로 ‘한국적 뮤지컬’인 노래극에 관심이 많았고, 박 작곡가는 자연스럽게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대학교 2학년 때 아는 선배 누나가 당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면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LP 원판을 사 왔어요. 클래식 애호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음악을 많이 들었지만 ‘레미제라블’ 음악은 새로웠습니다. 너무 좋아서 선배 누나에게 빌린 뒤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당시 저희 노래패는 5.18 광주 이야기를 노래극으로 만들려고 했었는데, 제가 작곡을 맡았어요. 대학에 와서 기타를 배운 뒤 취미로 노래를 만들곤 했거든요. 하지만 대학 동아리에서 작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아서 제대로 진척되지 못했죠.”

‘공연계 전설’이 된 뮤지컬 창작집단 변주

박천휘가 작곡을 맡은 첫 대극장 뮤지컬인 서울예술단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울예술단 제공

비록 노래극을 만들지 못했지만, 그는 독학으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하는 한편 외국 뮤지컬 CD와 자료를 구해 독학으로 뮤지컬 공부를 이어나갔다. 어린 시절 외국 회사에서 근무한 아버지를 따라 2년 반 미국에서 살다 온 그에게 언어의 장벽은 없었다. 특히 카투사로 서울 용산에서 근무하면서 그는 부대 내 메릴랜드대학 용산 분교 도서관에서 있는 뮤지컬 관련 자료를 섭렵할 수 있었다. 제대하고 얼마 안 됐을 때인 1995년 12월 그는 노래패 선배들과 아마추어 뮤지컬 창작집단 ‘변주’를 결성했다. 변주에는 노래패 멤버였던 이동선(연출가), 최도인(메타컨설팅 본부장)를 비롯해 PC통신 뮤지컬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이수진(극작가&공연 칼럼니스트), 안경모(연출가), 김보경(어린이극 프로듀서) 등 훗날 공연계에서 맹활약하게 되는 20대 중후반의 젊은이들이 다수 모였다. 1997년 3월 이들이 선보인 뮤지컬 ‘X라는 아이에 대한 임상학적 보고서’는 적은 제작비와 경험 부족 등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뮤지컬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며 매진을 기록했다. 이 작품은 박천휘가 뮤지컬계에서 본격적으로 일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X라는 아이에 대한 임상학적 보고서’를 삼성영상사업단에서 근무하던 박용호 프로듀서가 보고는 제게 이듬해 올라가는 라이선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가사 작업을 맡겼습니다. 당시 공연계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상황이었는데, ‘X라는 아이에 대한 임상학적 보고서’가 결과적으로 제 삶의 방향을 확실히 알려준 셈이 됐습니다.”

공연계에서 번역가 겸 작곡가로 일하면서 그는 영어 교재 출판사가 제작한 어린이 영어연극 및 뮤지컬에 작곡가로 잇따라 참여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한동안 영유아 교육 시장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전통을 연결한 영어 뮤지컬 교재들을 제작했다. 그는 “한국 공연계의 경우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음악 저작권으로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영어 뮤지컬 교재로 경제적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공연계 작업에 더 몰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서울예술단 ‘다윈 영의 악의 기원’으로 첫 대극장 뮤지컬 작곡에서 성공을 거두자 그에게는 ‘뮤지컬 성덕(성공한 덕후)’이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20대 초 뮤지컬에 매료돼 30년 가까이 치열하게 살아온 그에게 적절한 표현일까. “아직 성공이라고 보긴 어렵죠.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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