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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34주 태어난 아이 질식사시켜..낙태죄로 처벌 못하는 이유

이가영 기자 입력 2021. 12. 06. 07:27 수정 2021. 12. 06.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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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재현의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합니다.

정부가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지난해 10월 7일 오후 서울 국회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이 시위하고 있다./연합뉴스

병원의 행정원장이자 실질적인 경영자 A씨는 2019년 3월 임신 34주째인 산모의 태아를 제왕절개로 출생하게 한 뒤 태아를 물에 담가 질식사하게 하고, 이후 시체를 의료폐기물과 함께 소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재판부는 아기가 살아서 태어날 것을 알고도 분만을 유도한 뒤 살해하라고 지시했다고 보고 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낙태죄 폐지됐다고 알고 있는데, 이번 사건은 왜 처벌받았나요?

본 사건은 임신중단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을 살해한 살인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임신 34주째인 산모의 태아를 제왕절개로 출생하게 한 후 살아있는 생명을 물에 담가 질식시킨 명백한 살인이죠.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세상에 첫 숨을 내뱉은 생명을 무참하게 살해한 용서받을 수 없는 살인입니다.

◇낙태와 살인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우리 대법원은 임부에게 규칙적인 진통이 수반되는 순간부터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40주가 되어도 진통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가 의료적 방법으로 임신중절 수술을 하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하면서 낙태죄에 대한 개정입법을 시한을 정해 촉구했는데, 국회가 입법을 하지 않아 현재는 임신주수에 관계없이 임신중단이 적법하게 가능합니다.

◇낙태죄에 대한 헌재판결,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먼저 헌재는 자기 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으므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임신·출산·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헌재는 왜 개정입법을 촉구했나요?

헌재가 단순위헌 판단을 하면 해당 조항은 그 즉시 효력을 잃습니다. 그러나 헌법불합치는 국회가 관련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법적 효력을 인정해줍니다. 자기낙태죄 조항, 조항에 대해 각각 단순위헌결정을 할 경우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고 보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습니다. 모든 낙태를 불법으로 보는 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만, 낙태 가능 기간의 제한을 두어야 한다고 본 겁니다.

헌재는 여성의 임신중단 결정 가능 기간을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결정 가능 기간 중 일정한 시기까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관한 확인을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등과 같은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에 관해 국회가 입법재량을 가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럼 현재는 낙태죄, 어떤 상태인 건가요?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낙태죄 조항이 적용되는 것이었는데, 이 시기를 지나도록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재 낙태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민 생명 보호는 국가 제1의 존재 이유입니다. 여기에 시작되지 않은 생명이지만 분명히 태어날 수 있는 생명을 언제부터, 어떤 조건에서 보호할지도 국가가 책임져야 할 몫입니다. 여성의 임신중단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서도 완벽하게 태어날 준비가 된 생명에 대한 보호에 관해서도 논의할 시점입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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