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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이제는 '비천한 집안'까지 자랑거리가 된 건가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데스크 입력 2021. 12. 06. 08:01 수정 2021. 12. 0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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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한 성장기가 대통령 요건?
진흙속의 꽃이 그런 욕을 하다니
논란 빚은 것은 꽃이 된 후의 언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토론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흙수저 정도가 아니라 ‘무수저’라고 스스로를 이름 지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제는 ‘비천한 출신’ 명패를 들고 나섰다.

“제가 출신이 비천하다. 비천한 집안이라 주변에 뒤지면 더러운 게 많이 나온다. 그러나 진흙 속에서도 꽃은 피지 않느냐.”

4일 군산공설시장 연설에서 ‘조카 살인’ 등 집안 내력이 문제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그가 한 말이라고 한다.

빈곤한 성장기가 대통령 요건?

“제 출신의 비천함은 저의 잘못이 아니니 저를 탓하지 말아 달라.”

그는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형수 욕설’과 잔혹한 살인에 대한 ‘심신 미약’ 변호로 비난을 받아 왔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으로서는 너무 흠이 크다고 하겠는데, 이에 대한 그의 반박논리가 ‘비천 탓’ ‘집안 탓’이다.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말대로)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는지에 대해 물은 적도 없고 따진 바도 없다. 그건 모두 그 자신이 한 말이다. 선거 때 후보가 스스로 하는 ‘가난’ 토로는 ‘자랑’이기 십상이다. 이 후보는 거기서 더 나아가 ‘비천’ 자랑까지 하고 나섰다. “나보다 더 더러운 곳에서 자란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고 하는 것 같다.


국제사회가 선진국으로 공인한 나라의 집권여당 대선 후보다. 아직도 가난 자랑을 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은 그의 정신세계가 궁금하다. 나라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로 더 망가뜨리고야 말려는가. 가난한 성장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대한민국은 ‘비천한 집안’ 출신의 대통령을 가져야 한다는 건가. 우리 아이들을 가난 속에 던져 넣어 ‘진흙 속의 꽃’으로 만드는 게 그의 국정 청사진인가.


이 후보의 나이에 힘든 성장기를 거친 사람은 수 없이 많다. 그 이전 세대는 더 모진 빈곤 속에서 자랐다. 왜 가난의 보상을 혼자서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듯이 말하는가. 그의 큰 형님 말로는 부친이 법대출신이었다. 그 집안도 유복할 때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가난’이 세상 탓만은 아니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전후사정은 말하지 않는가.

진흙속의 꽃이 그런 욕을 하다니

그는 2016년 2월 4일 “나의 슬픈 가족사…‘이재명 형수 쌍욕’의 진실”이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극빈의 성장기도 이 글에 다 소개됐다). 이제는 고인이 된 그의 셋째 형님이 얼마나 극악한 말로 모친에게 욕설을 퍼붓고 협박을 했는지를 세세히 기록했다. 그래서 자신이 형수에게 그런 모진 욕설로 갚아야 했다는 것인데, 그런 심성도 가난 탓이었는가.


이렇게 말하자면 끝이 없겠다. 어쨌든 그의 ‘탓’과 ‘해명’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궤변’이라는 느낌을 털어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계속 반박거리를 찾을 일도 못된다(가난을 무기, 혹은 세상에 대한 차용증서로 내미는 데는 감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에).


그 모든 해명과 반격을 다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한두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비천한 집안’의 ‘더러운 것’들을 왜 이제 와서 토로하기로 했을까? 진흙 속에서 핀 꽃은 집안의 격을 높이고 더러움을 정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인권변호사를 자처해 온 이 후보는 15년 전의 살인 사건 변호 사실을 김부선 씨가 폭로하고 나서야 시인했다. 조카인데다 변호사 조력을 받을 형편이 못돼서 부득이 자신이 변론을 맡았다고 말했는데 그 이후에도 유사한 사건에 대해 비슷한 논리로 변호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또한 언론 보도 전까지는 함구했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살인범을 변호했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이 후보가 살인자를 변호했다고 해서 그걸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런 전력을 숨긴 채 인권변호사를 자처해 온 점이다. 게다가 잔인한 살인행위를, 그때마다 ‘심신미약’ 탓으로 돌렸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이런 식으로 살인자의 범죄 행위를 호도하는 것도 정당한 변론권인지 잘 모르겠다.

논란 빚은 것은 꽃이 된 후의 언행

홍 의원은 또 “출생의 귀천으로 사람이 가려지는 세상이라면 그건 조선시대 이야기”라거나 “이재명 후보를 출생의 비천함으로 비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의도는 이해가 된다. “그동안의 품행, 행적, 태도 등이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올바른 비판”이라는 부분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그랬다고 여겨지긴 한다. 그러나 출생의 비천함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전제(前提)가 잘못된 것이다.


이 후보가 말 그대로 ‘비천한’ 언사를 쏟아낸 것은 비천한 환경에 있던 때가 아니었다. ‘진흙 속에 핀 꽃’의 폭언이었다. 그러니까 성장기에 형성된 인격은 ‘꽃’이 된 후에도 고쳐지지 않음을 스스로 확인시켜 보인 것이다. 형과 형수의 어머니에 대한 험한 언사를 옮긴 사람도 성장기의 원망이 많았던 ‘소년공’이 아니라 ‘꽃’(성남시장)이었다. 자신의 집안을 ‘비천하다’고 말한 이는 또 누구인가. 성남시장을 거쳐 경기도지사를 역임했고, 지금은 집권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된 그 ‘꽃’이다.


요즘 이 후보는 자기 폄훼에 여념이 없다. 시인(是認)과 반성, 그리고 사과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말과 태도를 바꿨더니 큰 호응이 있었다고 판단 된 모양이다. 이후 아주 재미를 낸 듯 바겐세일을 거듭한다. 유권자들의 판단과 반응이 대선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짐작하기 쉽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이 후보의 이런 행태가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지금 자신의 집안, 그 부모·형제·자매를 모두 ‘비천’의 흙탕물에 밀어 넣으면서 표 계산을 하고 있을 사람을 ‘진흙 속에 핀 꽃’으로 봐도 될까? 만약 독을 품은 꽃이라면? 나를 던져 집안을 구하는 사람은 의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구해내기 위해 집안을 팔고 있는 사람은? “왜 비천의 책임을 내게 묻느냐”면서….

“그래도 그의 사람됨, 그의 말을 믿어야 할까?”

필자의 독백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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