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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보다 흔한 상속분쟁 피하려면

박중언 입력 2021. 12. 06. 09:06 수정 2021. 12. 0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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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언의 노후경제학
서울시 주최 취업박람회에 참가한 사람이 유언장을 작성하는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집안 다툼은 이혼과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송사까지 발전하면 가족의 울타리가 갈기갈기 찢어진다. 예전에는 이혼소송이 많았으나 지난 10년 사이 상속분쟁이 추월했다. 2020년 사법연감을 보면, 재판까지 간 이혼소송은 2010년 4만5351건에서 2019년 3만5228건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소송으로 번진 상속분쟁은 3만301건에서 4만3799건으로 크게 늘었다.

추세 변화의 주된 이유는 저출생·고령화다. 젊은층은 수도 줄어들뿐더러 취업과 양육 등의 어려움으로 결혼도 잘 하지 않는다. 2015년만 해도 30만 건이 넘던 혼인 건수가 2020년 21만 건 남짓으로 급격히 줄었다. 반면 2020년 사망자가 30만 명을 넘어서는 등 세상을 떠나는 고령자는 늘어나니 상속분쟁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전통적 가족관계의 변화와 1인가구·재혼가정 증가, 혈연보다 가까운 친구·지인 등 빠르게 바뀌는 현실을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상속분쟁이 늘어나는 이유다.

가장 보통의 분쟁

상속분쟁은 재벌가와 같이 재산 많은 사람들의 일로 여기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중견기업 P부장에겐 무려 40년도 더 지난 1970년대 후반 부친과 백부(큰아버지) 사이에 벌어진 유산 다툼의 씁쓸한 기억이 남아 있다. 논밭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백부가 병역 등의 문제로 많은 가산을 탕진하고도 유산 대부분을 물려받은 것에 부친의 불만이 폭발했다. 미우나 고우나 제사를 지낼 장자(맏아들)에게 ‘올인’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관습이었다. 인생이 꼬여버린 부친은 자신의 책임감·성실성 부족까지도 차남으로 태어난 불운 탓으로 돌렸다. 그 송사로 두 집 사이의 왕래는 상당 기간 끊겼다.

요즘 상속분쟁은 노부모가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날 때 주로 발생한다. 물론 민법은 법정 상속분을 합리적으로 규정해뒀다. 상속재산분할에 관한 고인의 유언이 없으면 1순위 공동상속인인 배우자가 1.5, 직계비속(자녀)이 1씩의 지분을 갖는다.

문제는 패악질을 했거나 연을 끊고 지낸 자녀라도 법정 지분 그대로 상속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노부모를 물심양면으로 살뜰하게 돌본 자녀로선 남보다도 못한 사이였던 형제자매가 동등한 재산을 물려받는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질 것이다. 노부모가 살아 있을 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줬거나 유언을 통해 차등 분배를 하지 않으면 분쟁의 여지가 클 수밖에 없다. 민법은 고인의 삶에 ‘특별한 기여’를 한 상속인이 그 ‘기여분’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이것 또한 소송 등으로 인정받아야 가능하다. 인기 걸그룹 멤버였던 구하라를 홀로 키운 부친이 어린 자식을 버리고 떠난 모친과 벌인 ‘구하라 유산 소송’에서 인정받은 기여분은 겨우 20%였다.

또 특정 상속인에게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겨도 일정 부분은 그에게 돌아간다. 유산을 한 사람에게 다 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바로 ‘유류분’이라는 제도 때문이다. 과거 상속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관행을 막기 위해 상속인 누구나 최소한의 몫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 제도가 고인의 뜻과 무관한 유산 배분 결과와 함께 분쟁의 불씨를 낳는 것이다. 배우자와 자녀의 유류분은 법정 상속액의 절반이다.

유류분 또한 소송을 통해 받는다. 유류분반환청구소송 접수 건수는 지난 10년 동안 3배 정도 늘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2020년 9월 ‘두 동생에게만 재산을 물려준다’는 모친 유언장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에서 패한 뒤 동생들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게다가 유류분 계산의 기준이 되는 상속재산가액에는 고인이 생전에 배우자와 자녀 등에게 증여한 것도 포함되기에 소송이 복잡해질 수 있다. 꼴 보기 싫은 자녀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으려 다른 이에게 미리 다 나눠줘버렸다고 해도 유류분 지급은 막을 수 없다. 이 때문에 특정인을 빼놓기보다 유류분까지 고려해 합당하게 나눈 몫을 유언으로 남기는 것이 자녀 사이의 앙금과 불필요한 소송을 줄이는 길이다. 상속분쟁에서 판결 전 조정을 통해 합의에 이르는 것이 10건 가운데 3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개인의 재산 처분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시비가 잇따르는 등 유류분제도는 오랜 논란의 대상이다. 얼마 전 법무부는 고인 직계존속(부모·조부모) 다음의 3순위 상속권자인 형제자매의 유류분(상속가액의 3분의 1)을 없애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1순위 상속권자인 배우자와 자녀의 유류분 또한 없애거나 3분의 1 이하로 줄이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유언장 쓰기

유언의 신뢰성을 둘러싼 소송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치열한 ‘형제의 난’을 겪은 롯데그룹 신격호 명예회장의 유언장은 주소를 쓰지 않아 무효가 됐다. 자필로 유언장을 쓸 때 까먹기 쉬운 ‘3대 요소’가 주소, 날짜, 날인이다. 주소와 날짜를 상세하게 적고, 반드시 날인하거나 손도장을 찍어야 한다. 재벌가에서도 빠뜨릴 정도이니 중요한 유산 배분 내용을 담는다면 특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컴퓨터 프린터로 출력한 문서나 사인은 효력이 없다.

유언은 자필 외에 공증과 녹음으로 할 수 있다. 유언 공증을 받아두면 신뢰성 논란은 사라진다. 공증에는 유언 내용과 이해관계가 없는 증인 2명이 필요하고 비용이 든다. 공증 수수료는 기본 4만4천원에서 상한 300만원까지 상속가액에 비례한다. 갑자기 몸 상태가 나빠지는 등 유언장을 쓰기 어려울 때는 스마트폰 녹음을 활용하는 게 좋다. 역시 이해관계 없는 증인 1명이 있어야 한다.

가족 해체가 가속화하고, 가족 구성 또한 다양해지면서 상속 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정신이 말짱할 때 누가 봐도 명확한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해놓는 것은 바람직한 인생 마무리에 필수 요소가 됐다. 더 현명한 방법은 평소 가족의 대화 테이블에 죽음과 유산 문제를 올려놓고 서로의 이해를 넓히는 것이다. 섭섭해하는 자녀가 있다면 생전에 그 원망이라도 들어주는 것이 사후 갈등을 줄인다.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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